[Review]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글 입력 2021.12.2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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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 <타임>지가 평가한 <파리 리뷰>의 가치이다. 1953년 당시,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는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며 재기 발랄한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글들을 담아오고 있다.

 

창간사를 썼던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말을 빌려 파악한 <파리 리뷰>의 정체성은 다음과 같다: <파리 리뷰>는 요란한 선동가나 음모꾼이 아닌 좋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환영한다.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는 총 15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다. 15명의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들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 소설을 골라달라고 요청한 후 그 소설들을 엮여낸 책이라고 한다.

 

작가와 단편 소설의 수가 일치하는 만큼, 각 작가들의 취향이 담긴 개성 넘치는 단편 소설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_표지.jpg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소설 중 대표적인 것이 모파상의 <목걸이>이다. 청소년기에 읽었던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곱씹게 된다.

 

짧은 문장들로 주제를 말해야 하는 단편 소설에는 시와 같은 매력이 있다. 따라서 곱씹고 곱씹을수록 진짜가 느껴진다. 진짜를 느낄 수 있다.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을 천천히 음미해야 느껴지는 진짜가 있었다.

 

사실 나는 그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때로는 해당 소설을 평한 작가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믿는 절대적인 철학이 있으니, 어디에나 내 마음에 닿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틀리지 않았다.

 

제임스 설터의 <방콕>. 남자와 여자의 대화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이다. 어느 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찾아온다. 남자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저돌적으로 말을 붙인다. 남자는 다소 놀란 듯 보인다. 여자를 그리 반기지 않는 것 같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기 바쁘다.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헤어진 사이인 것 같다. 남자에게는 다른 가족이 있는 것 같고 여자도 그 사실을 아는 것 같지만, 둘은 과거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슬 아슬 수위를 넘나드는 여자를 밀어내지 못하는 건지, 밀어내기 싫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했다. 아직도 여자가 꺼내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방콕>은 대화를 통해 이야기 한 편을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서사 없이 오직 대화만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화 속에 담겨 있는 적절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 배어있는 긴장감.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인물 사이의 관계, 심지어 두 인물 중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100%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대화만으로 필요한 모든 부분들을 충족시킨 것이다. 심지어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이 지었을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데이브 에거스는 소설 <방콕>을 평하며 최고의 대화는 말하는 두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거기 있기를 원하지 않아야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했다. 다소 역설이 가득한 이 말이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이라는 상황 속에서 훌륭한 대화라 하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하고, 이야깃거리가 있기 위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 둘의 대화는 결코 평범할 수 없다.

 

물론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자체로 재밌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세계적인 잡지에 실린 유명 작가들의 빼어난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어렵더라도, 읽어내려가보길 권한다.

 

어디에나 내 마음에 닿는 것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니까!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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