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푸르름을 초월한 '나'의 의미,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도서]

글 입력 2021.12.2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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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할 때 매번 문장을 분석하려는 습관이 있는 나는 속독과는 꽤 오래 거리두기를 해왔던 것 같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내용을 습득하며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감, 그 쾌감을 느끼고자 여러 번 시도해봤으나 여전히 나는 속독과 가까운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인상깊은 문장을 한번, 또 한번 다시 들여다보는일이나 그 문장들에 함축된 서사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일을 늘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읽은 단편소설 모음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고난이도의 책, 혹은 풀리지않는 미스터리 같은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몇몇 작품에서 서사를 시적인 묘사로 전환시키는 듯한 멋진 문장들을 봤을때, 평소의 습관처럼 한 문장을 곱씹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분석했다. 마치 레드와인의 향기와 달콤씁쓸한 맛에 여러 번 취하고자 하는 사람처럼 좋은 문장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고나 할까. 그랬기에 당연히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느려졌고, 이에 일조한 더 큰 이유는 책속의 작품들이 내게는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떤 스토리를 읽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들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쉽지않았고, 소설을 다 읽고난 후에도 그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했던 걸까라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기도 했다. 단편이기에 짧은 스토리안에 이야기의 서사와 작품의 메시지를 굵직하게 남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작품을 더욱 미궁 속 미스터리로 변화시켰으며, 풀리지않는 수수께끼 같은 결말이 은근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빗방울 도서.jpg

 
 
<타임>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파리리뷰>. 실제로 <파리리뷰>는 창간이후 70년 가까운 시간동안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이고 과감한 편집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탄생시킨 주력자이기도 하다. 바로 해당도서가 열다섯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파리리뷰>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에 대해 서술해달라는 부탁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러 작가와 작품세계를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으며, 그 중 내게 인상깊었던 작품은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와 메리베스 휴즈의 <펠리컨의 노래>였다. 두 작품은 여러 작품 가운데 제목만으로 내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고, 홀린듯한 관심을 환심으로 바꾸는데 역시 성공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대한 감상을 끄적이기전 먼저 작품의 아름다운 도입부를 소개하고 싶다.
 

 

어린 시절 기나긴 여름이 오면 우리의 놀이는 갑자기 불이 붙어 밝게 타오르다가 영원히 사라지곤 했다. 여름은 길고 길어 한 해 전체보다 점점 더 길어졌고, 우리 삶의 가장자리를 넘어 천천히 뻗어나갔지만 그 광활한 순간마다 결국 끝을 향해 다가갔다. 그게 주로 여름이 하는 일이었다. 여름은 금세 끝날 것처럼 감질나게 우리를 놀려댔고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뒤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여름은 언제나 끝이 있었고 그러면서 영원히 이어졌다.

 

-193p

 

 

도입부를 읽으며 ‘여름’의 의미에 대해 색다르게 조명해 볼 수 있었다. 여름은 늘 가을, 봄, 겨울의 매력에 짓눌려 내게 있어선 늘 4순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계절이었지만, 여름을 묘사하는 이 도입부는 그런 내게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을 선사했다.
 
작품 속 소년은 양탄자를 타고 어디든 떠난다. 정원의 백일초 위로 떠올라 당근밭과 옥수수밭 위를 날아가기도 하고, 집안의 부엌과 거실을 누비기도 하며 때론 푸른 밤하늘을 누구보다 자유롭게 여행하기도 했다. 양탄자 여행을 하는 도중 다른이들의 여행 이야기도 들으며,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가 더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소문에 따르면 푸르름 영역 위에는 미지의 흰구름 마을, 무지개 꼬리가 달린 새들이 날고 얼음 산과 눈의 도시가 존재하는 신비한 마을이 있다고 했다.
 
소년의 이야기는 내게 어린시절 여름의 추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시절 너무나도 뜨거웠던 태양과 나무그늘이 건넸던 시원한 포옹의 기억을 잠시나마 되살려주었다. 나에게도 어릴적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양탄자가 있었다면 어디를 여행했을지, 또 지금 내게 그 양탄자가 있다면 어디로 떠나고 싶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대답을 생각하는 과정만으로도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는듯한 신비한 힘이 있다.
 
 

양탄자.jpg

 
 
양탄자가 내게 목적지를 물을 때, 너무나 많이 좋아해서 그만큼 내 마음을 많이 아프게도 만들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나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여전히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을까? 아니면 멋쩍은 웃음과 함께 고마움과 미안함에 복받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삐죽 튀어나오진 않을까? 양탄자를 타고 행복했던 우리 과거의 추억들, 가슴 설레던 매순간을 소중히 하며 다시 여행해보고 싶었고, 외로웠던 내 작은 심장에게 용기내어 다 괜찮을거야라고 다독여주고 싶었으며, 서로의 마음에 더욱 따뜻한 온기를 심어주고 오고 싶었다.
 
미지의 것에 대한 탐닉은 호기심 많은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에, 양탄자가 내게 묻거든 그 어느때보다도 자유롭게, 세상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그때의 자유로움이 동반하는 행복은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정도로 경이로울 것이다. 작품 속 소년은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나는 마당에 서서 푸르름 너머로 사라져가는 양탄자를 올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내가 푸르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양탄자 밑으로도 오직 푸르름만 보였다. 푸르름 너머 푸르름 속에 있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204p

 

 

매번 마음 내킬때마다 타던 양탄자가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은 어떨까? 양탄자와의 추억이 많아서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도 같이 사라지는듯한 기분이 들진 않을까? 늘 함께였던 양탄자가 어느날 사라지고 나홀로 온전히 남겨졌을 때, 나는 여전히 나일수 있을까? 소년의 생각을 읽으며 나도 생각에 잠겼다.
 
소중했던 존재의 상실 혹은 부재는 우리의 마음에 상처로 남기도 하지만, 상실의 의미를 회고하는 과정에서 때론 우리는 더욱 값진 것을 얻기도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했던 기억에 속박되지 않으며 그것을 흘러가는대로 지켜보는 일,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우뚝 설 수 있는 내면의 강인함,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객관적이고 긴밀한 시야로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
 
단편소설 한 작품이 이렇게 내 마음을 감성적으로 만들며 토닥여 줄거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내 가슴에 작은 별빛을 꽂아두고 떠났다. 달밤에 양탄자를 타고 푸른 밤하늘을 여행하며, 그 속의 수많은 별 사이에서 나도 하이얀 미소를 짓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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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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