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미술/전시]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글 입력 2021.11.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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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한 번에 그대의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스크롤 바의 압박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손쉽게 문을 열어 그대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한 대상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파워 블로거가 남긴 정보는 유익했으나 빼곡한 활자와 약간의 사진은 마치 수험생의 필기를 보는 듯했다. 한 번의 클릭으로 지루함을 쉽게 안기는 게시물을 끝까지 읽노라 다짐하며 애꿎은 스크롤 바를 빠르게 내렸다. 대신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Youtube)의 연관 동영상은 익히 보았던 것 같은, 지루함이 예상되는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뉴미디어(New media)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오래된 대중매체)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대상의 사이에서 중간을 매개하는 미디어의 어원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어딘가로 연결되기는 한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알고리즘은 철저히 전지적 사용자 시점이기 때문이다. 발전된 기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탈피하지 못한 새로움을 찬양케 한다. 이로써 타인과의 연결이 보다 용이해졌다는 착각에서 다름을 이야기하는 화자와 단절된다. 미디어의 재정의가 필요하기에,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는 도피주의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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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8일 토요일부터 11월 21일 일요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진 출처=윤하정)

 

 

주어진 답에서 도피하려는 작가가 있다. 홍진훤(1980-)은 설치 작품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v2.0>을 통해 대형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사용자 위에 시각 권력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와 과도한 상업주의가 점철될 때 사용자는 매체의 순기능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개인의 선택이 곧 기업의 수익이기에 구조적으로 개인의 편협한 사고로의 정착을 막을 재간은 실현되기 어렵다. 작가는 대안 영상 구독 서비스 를 제시해 플랫폼의 권력을 분산시키려 한다.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영상을 발굴하고 무작위로 추출해 사용자의 메일로 전송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강제 및 통제가 선사하는 편리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관객이 도달할 수 있는,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지점들을 그려보고 그 사이사이 나는 어떤 장치들을 놓아둘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죠.” 홍진훤 작가는 『사진에 관한 대화(2019)』에서 관객이 결국 마주할 대상을 설정하기보다는 그들의 헤맴에 내재된 변수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만든 대안 구독 영상 서비스를 사용하고 이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검색 행위는 알고리즘의 분석 대상에서 배제될 수 없다. 즉, 검색은 또 다른 검색으로 향한 에움길이 되는 것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기에 그는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견 미봉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의 도전은 주어진 답을 굳이 피하고 싶지 않은 사용자들의 동기를 자극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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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훤, DESTROY THE CODES, 2021, 웹사이트

Copyright. 2021. 홍진훤.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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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v.2.0, 2021, 복합 매체 설치

Copyright. 2021. 홍진훤.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답을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도피한 작가 하오징반(Hao Jingban, 1985-)은 영상 작품 <나도 이해해...>를 통해 내적 거리 두기를 시사한다. 작가는 자신이 팬데믹과 인종 차별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당사자이며 동시에 SNS로 이를 목격하는 관찰자라고 전했다. 그녀는 개인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도 진정한 이해는 달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우리가 이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공감을 이루려면 타인의 상황에 몰입하는 한편 그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상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어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다른 누군가의 근육과 살의, 촉각의, 온도의 경험이라는 거야.” 하오징반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타인을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감각의 책임으로 갈음했다.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인간은 분노를 보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하오징반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이 같은 대상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 양상은 다를 것을 전제로 이성적 대처의 당위성을 상대적으로 격상시킨다. 그러나 감정의 폭발은 문제에 대한 제3자의 관심을 유발한다. 작가 자신이 플랫폼을 유영하던 영상을 시청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2003)이 음악 ‘미시시피 고담(Mississippi Goddam, 1964)’으로 흑인의 민권 신장을 부르짖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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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징반, 나도 이해해..., 2021, HD 비디오

Copyright. 2021. Hao Jingban. All rights reserved.

가수이자 시민운동가인 니나 시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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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징반, 나도 이해해..., 2021, HD 비디오

Copyright. 2021. Hao Jingban. All rights reserved.

미국 켄터키 주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여성 브레오나 테일러(Breonna Taylor) 사건 관련 시위대

 

 

내부자가 아니라 하여 외부자라고 확언할 수 없다. 광화문 집회 당일 현장 인근 역에 정차하지 않는 지하철에 발이 묶인 적 있다. 버스로 이동하면 되겠지 싶었으나 웬걸 차량 정체가 대단했다. 결국 약속에 늦어가며 도보를 이용할 수밖에 없던 필자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서 공익과 사익에 대해 읊조렸다. 푸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행동보다 관조를 우선시한 하오징반과 연대와 동참으로 거대 플랫폼의 권력을 연성화하자는 홍진훤 모두가 봉착한 난관이 있다. 바로 ‘경계의 모호성’이다. 어느 선에서, 어떤 방향으로, 개인은 어디까지 침투하여야 하는 것인가. 개인은 미디어 내 공급자와 수요자의 지위를 송두리째 갖고 있다.

 

“예술이 제의에 바탕을 두었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982-1940)은 회화에서 영상으로 흐르는 기술복제시대로의 전환이 기존 예술의 아우라(Aura)를 희석한 한편 대중의 예술적 지위를 높였다고 보았다. 사용자 창작 콘텐츠(UCC·User Created Contents)가 상업적 의도 없이 대중의 다양성을 표방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무한히 발전한 기술에게도 전치된 목적은 존재했다. 어느덧 주류 중에서도 주류가 된 뉴미디어는 창작물 판매의 시장이 되었고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져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을 조장할 수 있을 정도다. 어김없이 관건은 ‘경계’이다. 무엇을,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에 의해 미디어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경: 《하루하루 탈출한다》 전시 엿보기'

 

 

이하 게시물의 내용이 같을 것이라는 무의식의 기대가 잔존하기에 오늘도 플랫폼을 이용한다. 사용자의 행동 양식을 정확히 명중시키는 작금의 기술은 기시감(déjà vu)을 편안함으로 치환시킨다.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일보다도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피로를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이미 본 것 같은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를 상당히 필연적으로 보여준다. 뇌 질환 환자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스트레스, 심리 불안,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한 피로에 젖은 현대인은 지각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고 이는 기시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맞춤형’ 웹의 시대이다. 기업은 인공지능을 통해 사용자와 관련된 빅데이터를 수집한다. 기술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개인은 더욱 착각할 것이다. 자신이 원한 것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기업이 안내한 길을 따라갈 것이다. 개인은 양산되는 정보 속 믿을 건 나밖에 없고 기계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미디어의 역기능은 개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개인을 겨누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누구는 한 번쯤 제동을 걸고 점검해야 한다. 미디어아트의 소명도 이와 궤를 같이하여 미디어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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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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