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계 없는, 경계에 대한 실험극이 던지는 의문들 - 보더라인 [공연]

공연 <보더라인>을 보고 나서, 5가지 의문을 파헤치다
글 입력 2021.11.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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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2.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경계에는 공통적으로 ‘기준’이 존재하고, ‘구분’이 지어지며, 그래서 ‘한계’가 존재한다. 동시간대에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생기기도 한다. 이미지조차 뚜렷하기도 흐릿하기도, 또 모호하기도 한 ‘경계’를 주제로 한 연극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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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인’은 단어 그대로 ‘경계’를 의미한다. 포스터에서는 실선, 점선, 그리고 독일어와 한글이 줄을 이룬 선들이 이리저리 뒤엉킨 모습으로 ‘경계’의 이미지를 표현했는데, 참으로 직관적이었다.

 

 

 

들어가기 전



 

코로나 직전 뮌헨으로 이사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인 동독 출신의 배우 플로리안 야르. 서울 집에서 고양이 달래와 함께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한국 배우 나경민. 도시의 공터에서 야영하고 있는 우범진. DMZ에서부터 선을 그리며 어딘가로 향하는 장성익, 그리고 작가가 만나 온 경계 위의 사람들.

 

배우들은 때로는 경계를 넘나드는 극중 인물을 연기하고, 때로는 배우 본인으로 돌아와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국 배우 소현에 의해 극장에서 연결되고 새롭게 직조된다.

 

코로나 전과 후, 독일과 한국, 도시 곳곳을 오가며 타자와 만나기 위해 분투하는 개인의 시공간이 무대를 통과하여 극장 밖 현실로 확장된다.

 

- 연극 <보더라인> 줄거리

 

 

<보더라인>은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VaQi, 프로듀서 그룹 도트, 그리고 독일의 레지덴츠테아터가 공동제작한 연극으로, 통독 이후 독일 사회의 모습, 한국의 분단 현실, 그리고 난민 이슈를 통해 ‘경계’에 대한 감각을 확장한다.

 

이를 위해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온 사람, 정치⋅환경적 이유로 난민이 되어 타국에 온 사람 등, 물리적⋅정치적⋅사회문화적⋅심리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에 들어와 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매개로 하여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말하는 ‘경계’란 무엇인가.

 

흥미로운 점은 이 극의 창작 배경인데, 독일의 연극평론가 겸 작가인 위르겐 베르거가 수년간 독일, 한국, 태국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 탈북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인터뷰의 결과로 탄생한 작가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2년간 한국과 독일 양국을 오가며 난민, 난민 지원시설 관계자, 탈북민, 탈북민 지원 단체, 정부 관계자 등과 진행한 인터뷰와 워크숍을 통해 수집한 실제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그 자체로 대단한 자료가 아닌가.

 

다만,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그들의 대화 및 텍스트들을 어떻게 공연의 형태로 옮겨와 연출할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이다.

 

공연 관람 15분 전 넉넉히 극장에 도착했고 덕분에 프로그램북을 열람해서 볼 수 있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는데, 대개 프로그램북은 종이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원하는 사람에 한해 구매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더라인>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인쇄물을 최소화하여 프로덕션을 진행하며, 이러한 이유로 QR코드 스캔을 통해 프로그램북 PDF 파일을 온라인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파일을 확인해 보니 공연 소개부터 연출에 기여한 각 인물들의 소개 및 글은 물론,  무대/영상/조명/음향 콘셉트 소개까지 해당 공연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관람 후 다시 프로그램북을 보니 왜 무료로 모든 관람객들이 보게끔 했는지 이해가 됐다. 공연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해되는 장치 및 연출 방식이 있었기 때문.

 

 

 

공연 <보더라인> 속으로



 

일상과 거대담론, 픽션과 논픽션,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경계’의 감각을 새롭게 확장시키는 작품 <보더라인>

 

 

보도자료에서도 밝히듯 경계를 주제로 한 이 공연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경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관람하고 나면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 남는다. 이는 영상, 무대, 그리고 온라인을 넘나드는 실험적 연출 방식 때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바로 아래에서 관람 후 생긴 의문을 풀어가며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본문에서는 연극 <보더라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문 1. 공연은 시작됐고, 그제서야 무대 장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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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암전이 되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로 마스크를 쓴 사람 2명과 유일하게 쓰지 않은 사람, 지현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무대 위로 긴 나무 수레를 끌고 오더니 그 안에서 돌돌 말아져 있는 흰색 물체를 꺼냈다. 그러더니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만든다. 위에 매달려 있는 투명줄에 걸고 나서 조금씩 위로 올린다. 스크린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은 흰색 물체를 꺼내온다. 그리고 또 만들기 시작한다. 무대 준비가 생각보다 길어졌고 사람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집중을 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더 지체될수록 하나둘씩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조금 긴장했던 움직임을 이내 쪼그라들어 있던 작은 흰 물체에서 조금씩 형체가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텐트다.

 

스크린과 텐트 모두 다 형체가 제대로 갖추어지고 나서야 무대가 서서히 암전이 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극이 끝나고 나서야 왜 굳이 공연 시간 동안 스크린과 텐트를 만들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프로그램북 속 ‘무대 연출’의 설명에 따르면, <보더라인>의 무대는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극장이라는 공간을 대지 삼아 모든 이야기가 가능한 형태로 세우고 허물며 이동하는 노마드의 삶을 모티브로 삼는다.

 

그렇다면 공연 시작 후 스크린과 텐트를 만드는 행위는 단순히 무대장치를 세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동 가능하며 쉽게 모양을 허물고 다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스크린은 저 멀리 경계로 나누어져 떨어진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이며, 텐트는 본래 삶의 터전을 떠나 경계를 넘어 새롭게 정주할 곳이자 이동 가능한 공간을 빗대어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들로 본격적인 극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경계(보더라인)에 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의문 2. 경계를 주제로 하는 공연, 공연의 구성에도 경계가 없다?

 

진짜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에는 소현만이 남아있고, 스크린에 하나둘씩 등장한다. 현재 독일에 있는 배우 플로리안 야르, 실제 본인 집에 있는 배우 나경민, 도시의 공터에서 야영하는 우범진, DMZ에서부터 긴 막대기로 선을 그리며 어딘가로 향하는 장성익까지. 각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 자체로 경계에 선 사람들이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바로 눈앞에 보이는 흰 스크린을 통해 우리 모두는 다시 연결되었지만 말이다.

 

분명 ‘경계’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많았다. 통독 이후 독일 사회의 모습과 동독 출신의 사람의 삶,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온 탈북민의 삶, 정치 및 환경적인 이유로 난민이 되어 타국에 온 사람의 삶 등등.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비추어 본 사회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편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닌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텍스트들을 모아 한꺼번에 보여주는 느낌이 강해 아쉬웠다. 다시 말해, 내용과 내용 사이에 연결고리가 불친절했다.

 

 

해당 극은 창작 과정을 순차적으로 반영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 인터뷰: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당사자의 이야기들

- 텍스트: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썼던 텍스트들

- 리허설: 배우들이 작가의 텍스트에 반응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덧댄 과정들

- 퍼포먼스: 지금 여기의 만남과 행위들

 

 

분명 이야기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확실한 구분이 있었다. 바로 검은 화면에 흰 글씨로, ‘인터뷰’, ‘텍스트’, ‘리허설’, ‘퍼포먼스’ 와 같이 공연 구성의 네 마디를 언급하는 것으로 내용의 경계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보았다면 혼돈 그 자체였다.

 

다시 말해, 해당 극은 이미 이야기된 것, 현재 무대에서 이야기 중인 것,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 미래의 이야기를 포괄한다. 극의 형식도 모자라, 내용도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혼란 그 자체다.

 

 

◈의문 3. 하필 연극이어야 했을까?

 

프로그램북에서도 설명되어 있듯, 해당 극은 영상, 무대, 그리고 온라인을 넘나들며 연극과 영화, 다큐멘터리를 오고 간다. 정말 그렇다. 전달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구성을 띄는 만큼 장르도 형식도 넘나든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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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극이 끝나고 나서 가장 의문이었던 부분은, 바로 연극의 형식이었다. 본디 오프라인 형식을 갖추고자 한 목적에는 분명한 ‘현장성’과 ‘연결됨’이 있다. 즉, 무대와 관객이 연결되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오프라인 콘텐츠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왜 굳이 관객을 앞에 두고 연극의 형식을 취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데에는 연출 방식에 있었다.

 

줄거리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가 유일하게 무대 위에 서서 ‘연기’를 하던 사람, 소현에 의해 극장에서 연결되고 새롭게 직조된다고 말한다. 소현이 한 행동은 대개 독일어 텍스트를 읽고, 바이올린을 켜서 연주하고, 스크린 너머 인물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행동들이 은연중에 스크린 너머의 배우들과 관객을 이어주는 연출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이 극은 ‘연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배우들이 말하는 와중에 입으로 내는 ‘컷’소리와 함께 과거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선 독일 배우와 한국 배우가 소현의 도움을 받아 즉흥적으로 질문을 주고받을 때,   ‘우리가 지금 경계를 넘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라는 것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 몇 마디의 질문 시간 동안뿐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면 소현조차 관객에 몸을 아예 등지고 스크린을 향해 그 너머에 있는 다른 배우와 소통하고 행동하는 비중이 훨씬 더 많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또다시 무대와 멀어졌다. 이후로도 소현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몇 번을 무대와 분리되었다 연결되었다를 경험했다.

 

프로그램북을 보면, 공연화에 대한 고민이 적혀있는데 그중 ‘어떻게 자료의 차원 너머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눈에 띄었다. 나름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이 창작의 결과물에 녹아있는 듯했다. 극의 안팎에서 ‘경계’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이를 구분해서 가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적혀있기 때문.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끊어짐과 이어짐’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으로 또 ‘경계’에 대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이 또한 창작자들의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극 관람 후 생긴 여러 의문점들을 비롯하여 당황스러움과 찜찜함을 감내하면서 단번에 극의 연출 방식과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의문 4. 퍼포먼스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걸까?

 

이는 앞서 말한 연극 <보더라인>이 연극의 형식이어야 하는 이유와 직결된 부분이다. 바로, 퍼포먼스. 공연의 마지막 파트인 ‘퍼포먼스’에서는 지금 여기의 만남과 행위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이때 DMZ로부터 선을 그리며 어딘가를 향하던 장성익과의 ‘극적인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영상 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장성익은 영상 그대로의 옷차림새로 무대 입구에서부터 등장하여 무대 위로 올라서더니 둥글게 선을 그리고선 그길로 그대로 퇴장했다. 또다시 극장의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이다.

 

무대 위에 그려진 선 위를 따라 소현은 반복해서 달린다. 아주 힘차게. 달리고 또 달린다. 스크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씩 각자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차츰 다양한 목소리가 켜켜이 쌓인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걸까.

 

 

◈의문 5. 번역투의 자막과 연기는 의도한 것일까?

 

해당 극 사이사이에서 누군가는 선을 그리고 누군가는 독일어를 연습한다. 그러니 곳곳에서 독일어가 들리고 보인다. 이때 관객은 화면 상에 등장하는 자막을 보거나, 또는 소현이 직접 뜻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면서 독일어 내용도 눈과 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막에서 직독직해를 한 듯한 번역투의 단어들 때문에 텍스트 자체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게다가 소현이 독일어를 abcd부터 처음 배운다는 설정은 이해했지만 입을 크게 벌려 발성을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하려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의도로 그렇게 연출한 것인지 궁금하다.

 

*

 

여전히 위에 서술한 의문들이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어떤 것들은 필자의 상상력과 사유의 끝으로 결론지은 추측일 뿐이며, 그 밖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들 투성이다.

 

혹여, 해당 공연을 관람하고서 필자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면, 또는 다른 의문이나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주길 바란다. 언제든 공연 관람 후 나누는 격렬한 뒤풀이는 환영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더욱이.

 

 

 

관람 후의 이야기



관람 직후에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포스터에 그려진 무수한 복잡한 선의 형태대로 머릿속은 뒤엉켰고 복잡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관람 시작부터 끝까지 난해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곱씹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공연이었다. 바로 공연 직후 생겨난 의문들을 바탕으로 프로그램북을 정독하며 하나씩 풀어나가보니 시선도 생각도 달라졌다. 뒤늦게서야 인상적인 장면들도 생겨났고 새로운 감상이 덧붙여졌다.

 

 

“이것은 만남의 시도이자,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은, ‘연극’에 대한 시도이다.”

 

 

프로그램 북의 마지막 페이지에 구불거리는 선의 형태로 적혀있는 구절이다. 어떠한 말보다 이것이 공연의 기획의도와 후기를 동시에 가장 잘 표현하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무대의 형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연극의 공간이라는 고정적인 틀을 벗어나 과감한 연출 시도가 돋보였다. 동시에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전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많았던 만큼 극의 연출 의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한 것은 <보더라인>은 우리가 ‘경계’라고 칭하고 제약을 두었던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경계에 갇힌 이들은 실질적으로 그것의 테두리를 제대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 대개 무심하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익숙하게 느끼는 경계의 울타리를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고 체감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바로 해당 극을 보고 ‘난해하다’,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필자는 <보더라인>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가 그저 난해하고 복잡한 극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닌, 여전히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경계에 갇힌 모든 이들을 향해 건네는 힘찬 목소리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다.

 

연극 안에서 다루어지는 난민, 탈북자, 통독 이후 동독 출신의 사람들의 삶이 그저 그 사람만의 개별적인 이야기로 머무르는 것이 아닌, 누구나 ‘경계’를 가지고서 끊임없이 안과 밖을 넘나들기도, 아니면 그저 머물기도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 공연을 경험하며 일상과 거대담론의 경계를, 극장 안팎의 경계를,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끊임없이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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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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