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나 (1)

글 입력 2021.11.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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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극장에서 4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할까?’ 이제는 극장에서 하루 서너 편 보고 나오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매월 쏟아지는 개봉작을 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영화관을 찾는다. 개중에서 특별히 기대를 품었던 작품이라면 –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 용산 IMAX와 같은 특별관을 찾아가기도 한다. 혹 바쁜 일정으로 당월에 극장을 자주 드나들지 못할 것 같으면, 하루에 3편에서 많게는 6편의 영화를 연달아 몰아보기도 한다.

 

또 저마다의 차별성과 매력을 지닌 여러 영화제를 방문하고, 영화제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며 영화인들의 현장 속에 함께 녹아든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고가의 빔프로젝터를 장만한 것은 물론, 영화에 대한 글도 지속해서 쓰고자 노력 중이다.

 

무언가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 새삼 축복 같으면서도 – 번번이 놀랍기만 한 요즘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도대체 왜 영화라는 예술을 좋아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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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의 만남은 오래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부모님 아래서 자란 덕에 일찍부터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유치원생일 당시 우리 가족이 동네에서 가장 자주 드나들던 곳은 ‘비디오방’이었다. - 이는 '비디오 대여점'이라고도 불린다 - 운 좋게도 온갖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빌려볼 수 있는 장소가 집 앞에 마련되어 있었으니 부모님과 나는 습관처럼 매주 이곳을 찾아 영화 테이프를 빌려 가곤 했다.


당시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던 비디오방은 동네의 다른 점포들에 비해서도 제법 큼직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비디오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30분,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비디오테이프 위에 도난 방지 뚜껑이 씌워져 있었으므로 비디오 겉면에 그려진 포스터와 문구만을 보고서 해당 작품을 빌릴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다시 말해 눈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단 몇 개의 영화만을 골라봐야 한다면, 무엇보다 표지가 끌리는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 내가 오늘날에 와서도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포스터와 표지만을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이 비디오방에서 처음 시작된 버릇이 아닐까 싶다.

 

애당초 테이프 겉면에 영화 줄거리와 같은 짤막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고 한들, 책장에 들어찬 무수한 영화의 사설을 하나하나 읽어볼 여유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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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도 비디오방에 곧잘 드나들었다. 테이프를 빌리고, 빌린 테이프를 반납하고, 혹은 그저 심심풀이로라도 이곳저곳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꼭 비디오방에 들렀다. 손에는 부모님이 쥐여준 몇천 원가량의 돈을 꼬깃꼬깃 들고서 말이다.

 

이따금 까치발을 들고 책장에서 꺼내어 보고는 도로 넣어둔 작품만 이미 수백 편은 될 터였다. 고심 끝에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테이프를 빌리면 보통 3일에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말해 일주일 내로는 해당 영화를 무조건 관람해야 했다. 연체도 물론 가능이야 했지만, 그만큼의 추가 비용이 따로 들었기 때문에 대여 기간 내로 영화를 보고 곧장 반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렇게 비디오방에서 테이프를 빌려 자유시간에 영화를 보는 일은 초등학교 때까지 내리 이어졌다.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들은 이 시기 즈음에 대부분 섭렵했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유치원 때 비디오방에서 빌려온 영화 중 유독 깊게 본 작품이 있다면 바로 2005년 개봉작 <킹콩>이다.

 

당시에는 대여 기간에 쫓겨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돌려봤을 만큼 내게는 제법 감동적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결말 부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 한낱 유치원생의 눈물까지 앗아간 영화 <킹콩>은 지금 생각하여도 좌우간에 대단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비디오방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와 더불어 내가 이곳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다름 아닌 M&M 때문이었다. 당시 비디오방 입구에는 M&M 초콜릿이 가득 담긴 뽑기 기계가 놓여 있었다. 주인분의 너그러운 인심 덕에 – 비디오방을 이용하는 고객이라면 따로 동전을 넣지 않고도 레버를 돌려 언제든 원하는 만큼 초콜릿을 가져갈 수 있었다. 비디오를 빌리고 나가는 길목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손 가득 초콜릿을 챙겨나오는 일은 당시의 유치원생에게 소소하고도 큰 행복 중 하나였다.

 

다만 뽑기 기계가 데스크 바로 주변에 놓여 있던 탓에 이따금 주인분의 눈치를 보며 – 양손 가득 담아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선 – 조금씩 받아가곤 했지만 말이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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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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