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광휘와 같은 음악적 한 때: 제3회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 2021

글 입력 2021.10.3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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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어텀실내악페스티벌 포스터 최종 .jpg

 


올 10월 말이면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이 세번째로 개최된다. 2019년과 2020년의 무대는 미처 몰라서 놓쳤지만 올해 개막 전에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 개최소식을 알게 되어 이번 무대는 다녀오게 되었다. 매달 음악회를 찾아다니긴 하지만 특히나 10월 말에는 항상 음악회를 꼭 다녀오는 게 개인적인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물색하게 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을 통해 그 필요가 온전히 충족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올해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의 주제는 빛이다.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개최되는 음악제지만 프로그램 구성을 보면 아주 놀랍다.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레퍼토리들을 뛰어난 연주자들의 손끝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니 말이다. 예술감독이자 첼리스트인 박유신은 이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을 두고 '규모의 페스티벌보다는 순수하게 음악 본질을 쫓아가는 페스티벌'이 되고자 한다고 프로그램 북을 통해 소신을 밝히고 있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했다. 기간이 짧고, 규모가 좀 작은 게 뭐가 중요한가.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이 기획한 이 구성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 음악당까지 오게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음악당까지 찾은 발걸음이 아쉽지 않게 풍부한 감성과 뛰어난 표현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연주자들의 비르투오소다. 예술감독 박유신은 이번 무대의 주제를 빛으로 표현하며, 이것이 코로나로 인해 제한된 일상을 힘겹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미래의 희망의 빛처럼 와닿기를 바란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번 음악제의 무대는 그저 미래를 희망하는 빛 한 줄기가 아니었다. 은은하게 비쳐오는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을 바라며 무대를 찾은 관객들을 일순에 휘어잡은 찬란한 광휘였다.


 



Part 1. Program


Erich Wolfgang Korngold / Suite for two violins, cello and piano left hand Op.23

코른골드 / 왼손을 위한 피아노 4중주 모음곡, 작품23


George Gershwin / An American in Paris for two pianos

거슈윈 /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파리의 미국인


-Intermission-


Antonín Dvorák / String Quintet No.3 ‘American’

드보르작 / 현악 5중주 제3번 내림마장조, 작품97 "아메리칸"

 




이번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의 포문을 연 곡은 코른골드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4중주'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김영욱, 첼리스트 박유신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무대에 나섰다. 만일 어느 관객이 이 작품이 왼손을 위한 피아노라는 걸 모르고 들었다면 왼손만으로 피아노가 연주된다는 걸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피아노가 왼손만으로 친다고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나믹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피아노의 독주로 시작하는데, 김태형의 몰입도 높은 연주로 관객들도 순식간에 집중하게 되었다. 서주의 피아노 카덴차가 끝나고 현악과 함께 앙상블을 이루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곡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음악제의 첫 무대, 첫 곡이 하필 이 곡인 게 굉장히 궁금했다. 희망의 빛을 객석에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있는데, 첫 날 공연의 주제는 American Night이고 거기서도 첫 곡이 거슈윈을 제치고 코른골드의 작품이 선곡되어 있는 맥락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북을 보니 이해가 됐다. 오른손을 잃은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코른골드가 작곡해준 이 작품은 비트겐슈타인에게 한 줄기 빛과 희망이 되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배경이 이해되자 다른 좋은 작품들을 넘어서 이 대곡이 이번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의 포문을 열게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김영욱과 첼리스트 박유신까지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한없이 보여줘 너무나 압도적인 첫 곡이었다.


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곡은 American Night이라는 첫 날 주제와 가장 부합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가 거슈윈의 작품이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파리의 미국인'을 위해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박종해가 무대로 나섰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았던 피아니스트 김태형, 박종해의 연주는 항상 진중하고 사려 깊은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익살스럽고 유쾌한 거슈윈을 두 피아니스트가 연주한다는 게 Part 1 공연의 기대되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뛰어난 연주자들이니만큼, 거슈윈의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면모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연주였다. 변화무쌍한 곡이라 앙상블을 맞추기 쉽지 않았을 텐데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이 피아노 듀오에게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2부는 드보르작의 '현악5중주 3번 내림마장조 아메리칸'이었다. 이 무대를 위해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이지혜,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이수민 그리고 첼리스트 강승민이 나왔다. 코른골드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는 이번에 2주자로 나섰고 김재영이 이번 연주의 1주자가 되었다.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로는 이미 비할 데가 없는 두 바이올리니스트와 안정적으로 허리 역할을 수행하며 든든한 존재감으로 음악을 완성해준 두 비올리스트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을 예술감독이자 든든한 첼리스트 한 명까지. 이 조합으로 어떻게 연주가 실패할 수 있을까. 그저 첨언할 게 없는 앙상블이었다. 원주민 음악에 영향을 받은 드보르작의 느낌과 미국 땅에 대해 설레는 듯한 감정과 그가 가졌던 애정어린 시선, 고국에 대한 향수까지 그 일련의 감정들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연주였다. 개인적으로 너무 환호하고 싶었는데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박수만 쳐달라고 안내를 했었기에 박수밖에 보내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로 인상적인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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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Program


Sergei Rachmaninoff / Trio elegiaque No.1 in G Minor for Piano, Violin and Cello

라흐마니노프 / 슬픔의 3중주 제1번 사단조


Anton Dvorak /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Op.87

드보르작 / 피아노 사중주 2번 내림마장조, 작품87


-Intermission-


Franz Peter Schubert / Fantasie for four hands Piano in f minor. D.940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바단조, 작품940


Reinhold Gliere / String Sextet No. 3 in C Major, Op.11

글리에르 / 현악 6중주 3번 다장조, 작품11

 




제3회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의 두 번째 공연은 헌정이라는 주제로 무대가 기획되었다. 이 날은 원래 라흐마니노프, 글리에르, 슈베르트, 드보르작의 작품 순으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장에 가니 글리에르와 드보르작의 작품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즉 1부에 라흐마니노프와 드보르작으로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 작품들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피아노만으로 앙상블을 구성한 작품과 현악만으로 이루어진 실내악 작품을 연주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도 꽤 좋은 변화인 것 같았다. 드보르작의 피아노 4중주도 좋지만 글리에르 작품도 대미를 장식하기에 잘 맞는 작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3중주 1번'은 바이올리니스트 정영욱과 첼리스트 강승민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조합으로 무대가 꾸며졌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섬약한 소리 사이로 강렬한 존재감을 뿜으며 치고 나오는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터치가 시작부터 심금을 울렸다. 슬픔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차가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면 이 무대가 그 답이 될 것 같다. 뜨겁고도 차갑게 슬픔의 역설을 보여준 무대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답게 아무래도 피아노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가 강하게 부각되었는데, 김태형의 터치여서 더더욱 그 슬픔의 깊이가 극대화되었다.


드보르작의 '피아노 4중주 2번'이 그 뒤를 이어 연주되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가 교체되어 박종해가 무대에 나섰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비올리스트 김상진 그리고 첼리스트 박유신이 함께 오른 무대였다. 사실 연주자들의 조합만 보아도 그냥 음악이 흐르는대로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풍부한 음색과 더불어 탄탄한 현악기들의 풍성한 사운드가 어우러져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공연 당일 예술의전당 내외부에 곱게 단풍이 져서 가을의 정취가 완연했는데, 그 풍경이 눈앞에 다시 그려지는 듯 아름다운 연주였다. 완벽한 호흡이 돋보여 뜨겁게 환호하게 된 무대였다.


짧은 인터미션 뒤 맞은 작품은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바단조'였다. Part 2 공연 바로 전날에 두 피아니스트가 듀오로서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슈베르트에서는 서정적이고 서글프면서도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잔잔하게 시작해서 점차 긴장감이 고조되어 가는 동안 느껴지는 그 밀도 있는 연주는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코 피날레였다. 네 손으로 연주되는 그 엄청난 푸가는 압도적이었다. 슈베르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낭만이라는 정서와 대위법적인 구조적 완결성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보여준 연주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리에르의 '현악 6중주 3번'이 페스티벌 2일차의 대미를 장식했다. 여섯 명의 연주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무대에 나섰다. 이 무대는 정말 기대가 컸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이지혜, 비올리스트로는 김상진과 이한나 그리고 첼리스트로 강승민과 박유신이 나선 무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이한나가 함께 무대에 선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이 비올라 파트를 맡은 실내악 무대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두 사람의 조합이 성공적이라는 것은 Part 1 공연과 Part 2의 1부에서도 확인했으니 첨언할 필요가 없고, 첼리스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앙상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이 날의 마지막 연주는 "안 될 수가 없는" 그런 조합이었다.


글리에르의 현악 6중주 3번은 들어보면 시종일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여섯 연주자의 손끝으로 이 작품을 들으니 그저 아름다운 게 아니라 환상적이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러시아 민요풍이 느껴지는 1악장은 활기가 넘쳤다. 생동감 있는 1악장을 거쳐 맞은 2악장은 감성이 충만하다. 우수어린 정서가 슬라브 민족 특유의 감성을 상기시키는데, 흐드러진 이 가을날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3악장의 스케르초도 러시아적인 서정성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4악장은 사운드의 화려함이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이 일련의 흐름을 비르투오소들이 한 유기체처럼 호흡하며 전해주는데, 어찌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 음이 끝맺어지자 마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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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긍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찾은 공연장에서 빛 한 줄기가 아니라 찬란하게 눈부신 광휘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하게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걸 왜 미처 몰랐을까. 가지 못했던 2019년과 2020년의 무대까지 아쉬워졌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기획하는 곳이라면, 1회와 2회 페스티벌 때에도 아주 풍성한 작품들로 관객들을 찾았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도 올해에나마 이 귀한 음악제를 알게 되고, 또 무대를 찾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비록 총 3회의 공연 중 마지막 3회차 무대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Part 1 American Night 그리고 Part 2 헌정 무대만으로도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의 화려한 연회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는 매년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 무대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특히 이번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을 주최한 목프로덕션은 실내악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국내 무대에 끝없이 실내악 무대를 기획해서 올리며, 국내 관객들에게 실내악 무대의 중요성과 입지를 제고시켜 온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목프로덕션에서 기획한 실내악 공연들은 매번 기대를 품고 무대를 찾게 되었고, 무대가 끝난 후에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귀납적으로, 목프로덕션이 주최한 실내악 공연은 믿고 봐도 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목프로덕션의 내년 기획공연을 보니 2022년에는 10월 21일, 22일 이틀간 페스티벌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 구성을 즐기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일상의 상황을 고려한 메시지까지 선사하면서 연주자들의 도전정신과 탐구욕까지 충족시키는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이 내년에는 어떤 뜻깊은 의도로 무대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다시금 관객들을 찾아줄까? 생각만으로도 내년 이맘 때의 설렘이 벌써부터 느껴지는 듯하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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