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즐거운 놀이동산 같은 순간, 서울국제음악제 실내악 시리즈 3

글 입력 2021.10.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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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정취가 완연한 10월, 올해에도 서울국제음악제가 개최되었다. 놀이동산이라는 테마로 개최된 이번 서울국제음악제는 10월 23일 개막하여 10월 30일까지, 짧지만 굵은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번 다양한 편성과 구성으로 무대를 기획해 온 서울국제음악제는 올해에도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인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흥미가 가는 무대는 실내악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무대인 '신비로운 놀이동산' 무대였다. 이 무대에는 올해 서울국제음악제의 위촉 작품이 함께 오른다. 바로 작곡가 남상봉의 '기묘한 놀이공원'이 이 무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초연될 '기묘한 놀이공원'을 현장에서 함께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에 10월 28일 공연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음원으로도 들을 수 없는 작품인 만큼 현장에서 듣는 이 작품의 유일무이한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드뷔시의 가곡과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작품이 함께 선곡된 것도 너무 좋았다. 다만 두 작품이 놀이동산이라는 테마로 어떻게 함께 엮일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은 상상해볼 필요도 있었다. 드뷔시의 가곡에서는 회전목마가 제목인 노래가 포함되어 있으니 맥락을 찾을 수 있지만, 사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2번은 어떻게 놀이동산이라는 주제와 잇닿아 있는 것인지 명확히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1부에서 드뷔시와 남상봉으로 피워낸 꽃을 2부에서 브람스로 더욱 화려하게 만개시키는 느낌이기에 놀이동산에 천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현대 음악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상주의의 드뷔시와 현대 음악의 극치를 보여줄 남상봉으로 1부가 종결되면, 2부는 후기 낭만이면서 그 누구보다 고전적인 브람스로 대응되어 서로 완전히 다르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 28일의 무대는 실로 그러했다.


 



PROGRAM

 

드뷔시 잊힌 노래들(편곡: 고덕인)

C. Debussy Ariettes oubliées

I. 이것은 황홀감 C'est l'extase langoureuse

II. 내 마음에 눈물이 흐르네 Pleure dans mon coeur

III. 나무들의 그늘 L'ombre des arbres

IV. 목마 Chevaux de Bois

V. 초록 Green

VI.우울 Spleen

Sop. 이명주, Vn. 박규민, 윤동환, Va. 김재윤, Vc. 김민지


남상봉 기묘한 놀이공원(위촉초연)

Sangbong Nam Mysterious amusement park

Fl. 조성현, Cl. 세르지오 페르난데스 피레스, Prc. 심선민, Vn. 송지원, Vc. 마야 보그다노비치, Pf.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INTERMISSION


브람스 현악6중주 제2번

J.Brahms String Sextet No.2 in G Major Op.36

I.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Allegro non troppo)

II. 스케르초–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매우 빠르고 활발하게(Scherzo – Allegro non troppo – Presto giocoso)*

III. 느리게(Adagio)

IV. 조금 빠르게(Poco allegro)

Vn. 엘리나 베헬레, 송지원, Va. 김상진, 이한나, Vc. 드미트리 쿠조프, 안드레이 이오니처

 




이번 무대의 첫 곡은 드뷔시의 '잊힌 노래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가곡 작품을 들어본 것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이 작품을 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악 작품에서는 항상 드뷔시만이 가지고 있는 그 오묘함이 충만한데 가곡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성악 작품에서도 역시 드뷔시는 그다웠다. 드뷔시는 그만의 오묘한 화성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음악의 진행이 어떻게 될 지 감히 예측할 수 없도록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음악이 이어질 것 같은 순간에 끝나기도 하고, 음악이 끝날 것 같은 순간에도 노래가 더 이어지기도 했다. 절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을 찾아보고 음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원으로만 이 작품을 들었을 때에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달랐다. 우선 첫 곡 '이것은 황홀감'의 도입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과 윤동환의 부드러운 첫 음에 그야말로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신비로운 놀이동산' 무대는 IBK챔버홀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로 관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연 직전에 홀이 굉장히 어수선했는데,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름다운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 그 모든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되었다. 순식간에 아름다운 드뷔시의 세계로 환기되는 동시에, 소프라노 이명주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조성을 알 수 없는 와중에도 나른함, 기쁨,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던 소프라노 이명주는 마지막 곡 Spleen에서 폭발적인 우울감을 표출하며 객석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 절정에 다다른 뒤, 읊조리듯이 그 모든 음율이 끝나는 순간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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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봉의 '기묘한 놀이공원'은 피에로 앙상블이라는, 처음 보는 구조의 앙상블이었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기준으로 왼쪽부터 플루트,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 순으로 앉고 왼쪽 뒷단에 피아노가 그리고 오른쪽 뒷단에 퍼커션이 있었다. 보통 앙상블을 생각할 때 보이는 편성과는 정말 다른 구성과 순서였다.


가장 먼저 피아노와 현악기들의 음으로 음악이 시작되었다. 1도와 3도의 음이 나와서, 왠지 모르게 5도 음이 나와서 1도화음을 완성할 것 같은 분위기로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이 유니즌으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으뜸화음은 완성되지 않고 완성될 것 같았던 화음은 불안정한 음으로 이어져버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묘한 음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퍼커셔니스트 심선민이 마림바를 두드리며 둥둥 거리며 잔상처럼 내는 소리를,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클라리네티스트 세르지오 페르난데스 피레스가 모방하여 단일음을 끊어가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소리를 끊어서 낸다는 느낌이라기보다 그것은 마림바에서 나는 소리의 리듬감을 모방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즉 퍼커션에서 나는 소리의 잔상을 목관악기들이 모방과 반복함으로써 더욱 극대화하여 앙상블 전체가 마치 하나의 큰 타악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현악기들이 주를 이뤄 앙상블의 선율을 주도하는 것과 다르게, '기묘한 놀이공원'에서는 이처럼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리고 피아노가 동조하여 주된 분위기를 형성해가고 첼로와 바이올린은 베이스에 가까운 소리와 리듬, 그리고 효과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위주로 냈다. 술 폰티첼로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인지 아주 금속성이 강한 소리들이 났다. 그 효과음에 가까운 소리들은 마치 기계들이 움직이면서 나는 금속성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놀이공원의 분위기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놀이공원 속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놀이기구들의 여러 부분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짚어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연상시켰다. 반복적이면서 때론 날카롭기도 하고, 때론 다소 느슨하게 이완되기도 하는 이 일련의 흐름들은 굉장히 기계적이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피아노의 분위기 환기와 함께 플루트의 극적인 카덴차가 터져나왔다. 높고 낮은 음역대를 무한히 넘나들면서 보여주는 소리의 풍성함과 리듬감, 그리고 이것을 이어받은 클라리넷의 짧은 카덴차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도입부의 재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따라가기 바빴는데, 작곡가 남상봉은 이 작품을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했던 걸까? 그렇다면 이 재현부에는 코다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도-3도 음에서 으뜸화음으로 이어지지 않던 그 불안정한 선율이 재현된 뒤, 앙상블은 바이올린의 주도로 화려한 마칭밴드의 선율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퍼커션도 작은북과 심벌즈 위주로 퍼레이드 하는 듯한 3박자의 리듬감을 살려냈고, 이 코다에 대응되는 결미부에 이르러 현악기들이 드디어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작품이 말미에 다다르자, 이 작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어린 놀이공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순간이 도입부의 1-3도 음으로 형상화되었고, 다시 찾은 놀이공원이 코로나로 인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임을 자각한 순간에 5도가 아닌 다른 음으로 음이 전개되기 시작한 게 아닐까. 그러면서 이 음악 속 주인공인 화자의 시선은 놀이공원을 낱낱이 살피게 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와 달라진 현재의 텅 빈 모습들, 그 속에 남아있는 기구들. 그리고 그 기구들이 원래 움직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 음악이 전개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말미에 이르러 나타나는 퍼레이드 선율은, 공허한 놀이공원 그리고 기계적인 일상의 삶을 자각한 이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그 일상 속에 다시금 기쁨과 행복, 충만한 그 모든 것들이 소생하기를 기원하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따뜻하게 내 마음을 다독여주어서 코끝이 찡했다.


화려하게 마지막 음이 맺어지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와 함께 브라보가 연호되었다. 뜨겁게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뛰어난 작품은 누군가가 굳이 나서서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작곡가 남상봉도 객석에서 함께 듣다가 커튼콜 때 일어나서 인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는 무대 뒤에서 나왔다. 객석에서 함께 이 뜨거운 감동을 느꼈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그 역시 분명 벅찼을 것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동시에 위로가 되는 앙상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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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브람스 현악 6중주 2번에 온전히 할애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현악 6중주 1번이 완성된 뒤 5년 후에 나온 브람스의 현악 6중주 2번은 선율의 아름다움, 대위법을 활용한 풍부한 구성 그리고 정서의 심화가 느껴져 보다 더 브람스의 매력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현장에서 듣게 되는 작품이라 기대가 큰 작품이기도 했다.


브람스의 고전주의적인 토대가 잘 느껴지는 이 작품 속에서, 여섯 연주자의 앙상블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 중에서 1부와 2부에 모두 출현한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뿐이었다. 1부 남상봉의 작품에서 유일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오다 말미에 이르러 주선율로 화려하게 끝맺은 그는 이번 브람스 현악 6중주에서는 2바이올린 주자로 나섰다. 1바이올린으로는 엘리나 베헬레가 나섰다. 이에 대응되는 비올리스트는 이한나와 김상진이었다. 현악 6중주 앙상블에서 허리의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은 다시금 나뉘어 비올리스트 이한나는 주로 바이올린 파트와,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첼로 파트와 대응되어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음원으로만 들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브람스 현악 6중주 2번은 뭐라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아름다웠다. 1악장부터 4악장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선율적으로는 풍부한 화성과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고, 구성적으로는 대위법과 다양한 변주가 있어 풍성했으며 정서적으로는 공허함과 멜랑꼴리에서부터 기쁨과 애정, 밝음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첨언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여섯 명의 연주자들이 뛰어난 합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베헬레와 송지원이 만드는 선율과 화음 속에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함께 합을 맞추며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었고, 무게감 있게 중간에서 비올리스트 김상진이 고음부와 중저음부의 중간자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리고 첼리스트 드미트리 쿠조프과 안드레이 이오니처는 그 속에서 깊이감 있는 풍부한 사운드를 연출해주면서 앙상블의 무게감을 완성해주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이한나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브람스여서일까, 아니면 그가 말했던 것처럼 브람스의 곡이 본인의 연주와 잘 맞기 때문일까.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앙상블을 아름답게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함께 보여주는 그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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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없이 본 프로그램만으로 마무리 지어진 이번 서울국제음악제 실내악 시리즈 3, '신비로운 놀이동산' 공연은 정말 즐거운 요소들로 가득했다. 1부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드뷔시의 가곡 작품과 위촉초연된 남상봉의 작품으로 조성음악을 넘어 현대적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고, 2부의 브람스를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에 뿌리를 두고 피어난 낭만의 정취가 얼마나 사람을 매료시키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순간이 놀이동산에서 즐기는 기쁨의 순간들 같았다.


코로나 시국이 2년 가까이 이어져 일상생활에 제약이 여전히 심한 이 시기에, 서울국제음악제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함께 즐거운 기억들을 되새기고 추억할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해 주었다. 때론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말 없이 건네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언어적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는 음악회에서도, 우리가 얼마든지 위로받고 힘을 얻고 다시금 일상을 헤쳐나갈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이렇듯 매번 뛰어난 무대 기획과 작품 구성, 그리고 뛰어난 연주자들을 통한 놀라운 전달력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서울국제음악제가 내년엔 과연 어떤 주제로 우리를 찾아올까. 올해 서울국제음악제 폐막을 앞둔 상황에서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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