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는 진실을 담아낼 수 있을까?

글 입력 2021.10.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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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미학은 그 리얼리티에 있다고들 말한다. 진실에 닿고, 이를 포착하고, 또 전달하려는 노력은 영화 기술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눈 앞의 것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카메라의 발명은 인간의 진실 추구에 대한 욕망을 자꾸만 부추겼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것이 진실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영화를 끝없이 실험한 두 다큐멘터리 제작 경향성이다. 동시에 쉽게 혼돈하는 두 개념, 바로 미국에서 시작된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와 프랑스에서 출발한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이다.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테의 공통적인 목표는 영화를 통해 세계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일 테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닐 수 있는 진실성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경향성의 차이점은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1963년장 루슈와 리처드 리콕 사이의 다큐멘터리 형식에 대한 라디오 토론에서 이 경향성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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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실을 포착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카메라의 존재이다. 현실을 담긴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담는 것을 방해하는 중요 요소가 카메라라는 의미이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카메라의 눈에 의한 감시 상황을 가장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경우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의 존재를 객체가 인지하고 있다면 진실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카메라는 그 자리에 그저 현장을 담는 매체로서만 존재하고, 촬영하는 대상의 그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면 안된다. 이는 앙드레 바쟁의 아이디어를 영화 제작에 적용한 것으로, 카메라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목격'하게 하여 그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 <티티컷 풍자극 Titicut Follies>을 통해 다이렉트 시네마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은 영화의 배경이 된 메사추세츠 정신 병원 내에서의 생생한 사건이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흘러가도록 대상을 내버려두고, 카메라를 그 관찰자로 세워놓는다. 이는 카메라 앞의 모든 인공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나레이션, 질문을 통해 특정 답변을 이끌어내는 인터뷰, 자막 등의 요소를 모두 제거해 사건의 객관성을 최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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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도는 인간 존엄성을 배제한 조심성 없는 접근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이 작품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중 하나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예시로 환자들은 의료진들과 다르게 모두 옷이 발가벗겨진 채로 등장하는데, 감독은 이에 대한 어떠한 검열도 하지 않고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의료진이 노인 환자의 코에 억지로 튜브를 끼워넣는 끔찍한 장면에서도 제작진은 의료진에게 행동 동기를 묻거나, 환자에게 당시의 감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잔혹한 행위를 제지하려는 시도 역시 사건에 대한 외부적 개입이기 때문에 다이렉트 시네마 정신에 위배되고, 이를 배제한다.

 

다이렉트 시네마가 추구하는대로 <티티컷 풍자극>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그저 '관찰자'가 되어 그들을 건조하게 훑을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화 제작자로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해 전달할 의무와, 그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제지할 의무가 충돌해 딜레마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드릭 와이즈먼이 추구한 다이렉트 시네마의 방식은 확실한 비판 지점을 남기면서도, 관객들에게 사건의 무게에 대한 가장 현실과 유사한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다. 후에 이 다이렉트 시네마의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는데, 나레이션을 첨가하는 등의 변형을 거치기는 했으나 카메라를 관찰자로 설정하고 대상에게 카메라를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등의 제작 방식이 그것이다. 최근 인기를 끈 숱한 다큐멘터리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시네마 베리테는 어떠한 방식을 추구할까? 다이렉트 시네마와 가장 큰 차이는 카메라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카메라를 비롯한 제작진은 사건에 뛰어들어 직접 촉매제가 된다. 이는 인터뷰 장면의 활발한 등장, 나레이션의 사용, 연출된 장면의 삽입 등을 동반한다. 카메라가 담는 대상들은 제작진의 촉매에 의해 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의무이자 권한을 부여 받는다. 시네마 베리테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의식 아래에, 혹은 무의식적인 버릇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특정한 촉매에 의해 자극되었을 때 발현되는 것이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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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것은 카메라로 인한 인위성을 배제하기 위해 오히려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다소 모순적이게 들릴 수도 있겠다. 이는 대표작 <어느 여름의 연대기 Chronicle of Summer>의 몇몇 장면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카메라 앞이니까 긴장된다', 혹은 '이젠 익숙해져서 긴장이 덜 된다'는 식으로 직접 카메라의 존재를 언급하는 장면이 숱하게 등장한다. 이것은 오히려 동반자로서의 카메라 위치를 공고히 하는 시네마 베리테만의 진실 추구 방식이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 Chronicle of Summer>는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로 이뤄져 있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마이크를 들고 직접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반응을 확인한다. 대상들의 말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기 보다는 감독 역시 대화에 참여하고, 때로는 특정 방향으로 흐름을 이끌어 가기도 하는 것이다. 당대 프랑스의 정치 사회적 논란을 직접 대화 주제로 제시해 토론하게끔 요구하기도 할 정도로 감독의 태도는 적극적이다. 단연코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에서는 완성된 영화를 본 후 이 영화가 정말 진실성이 있었는지, 혹은 진실을 가장한 허위를 보여주고 있을 뿐인지에 대해 토론한다. 영화 안에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감상과 비판 내용까지를 한꺼번에 담는 독특하 방식이다. 이는 시네마 베리테의 방식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진실에 다가서는 영화적 형식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겠다는 감독들의 솔직한 성찰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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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다큐멘트(document)'로 이뤄져 있다. 그 자체로 기록이자 역사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그 핵심을 이루는 요소 역시 '진실됨'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척도만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나뉠 정도이다.


필자는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테의 방법적 차이는 '진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다이렉트 시네마의 경우 '자연적인 상태'를 진실로 본 것 같고, 시네마 베리테의 경우 '자연에 의해 영향을 받아 특정 방향성을 취하게 된 상태'까지를 진실로 아우른 것이 아닐까.

 

만약 필자가 다큐멘터리 영화 미학의 최대를 이끌어내야 하는 감독이라면, 시네마 베리테의 방식을 취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카메라와 제작진에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배제된 경우의 '완전히 자연적인 상태'를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인간이나 인위적 세태가 아닌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해도 현장에 있는 인간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인위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는 그 현장에 카메라가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진실로 채택하고 그 위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시네마 베리테의 대표작 <어느 여름의 연대기 Chronicle of Summer>는 다소 극적으로 연출된 장면들을 통해 진실의 허위를 두르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타당한 말이지만, 필자는 이 작품의 가치가 다른 곳에 있다고 느낀다. 등장인물들의 대답이나 삶이 얼마나 진실성 있는가를 떠나 그들이 질문 앞에 짓는 표정, 세세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들, 걸음걸이, 반복되지만 매번 조금씩 다르게 뻗치는 일터에서의 손길 같은 것들을 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성취할 수 있는 진실성의 최선을 달성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네마 베리테는 감독이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는 대상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진실을 끌어낼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길을 걷다 우연히 들은 음악에서, 우연히 풍겨온 향취에서, 일상적인 대화에서 때때로 생각치도 못한 진실을 깨닫기도 하니 말이다. 따라서 소통의 가능성은 대상과 제작자 사이의 신뢰를 증진시키고, 이런 관계가 진실에 가닿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촬영되는 대상에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표현할 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티티컷 풍자극>의 진실성 뒤에는 분명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부조리의 진실을 폭로하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태도는 결국 인류애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진실의 추구와 전달은 저널리스트의 위치를 겸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 최상의 가치임을 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적 연구 역시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도. 그러나 우리는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들이 아니라, 숨 쉬고 말하고 생각하는 '인간'과 그를 담고 있는 세계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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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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