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을 사랑한 삼성 家와 메디치 家 [문화전반]

글 입력 2021.10.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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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2만 3천여 점의 미술품 기증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하게 미술품을 기증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건희 컬렉션”의 규모와 수준이 국보급 작품을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시대와 국경을 넘어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양과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삼성가는 선대 이병철 회장부터 미술품 수집과 예술의 후원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재력과 예술에 대한 안목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을 후원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는 수 백년 동안 모은 컬렉션을 피렌체에 기증한 우피치 미술관과 삼성 가의 호암 미술관, 리움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 미술관으로의 기증으로 인해 비교 대상이 되곤한다.


 

메디치가와 삼성가의 부의 축적

 

삼성 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삼성 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설립 전 정미소와 운송업 등을 하다 “삼성상회”라는 이름으로 청과물과 건어물 무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이 쌀과 곡식 등을 수탈해 가면서 식량이 부족해져 그 대안으로 국수 생산을 생각하여 별표 국수를 만들게 된다. 이후 제일제당, 제일 모직 등 제조업에 뛰어 들어 삼성 그룹의 육성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건희는 이병철의 셋째 아들로 사업을 물려받아 경영하는 30여 년 동안 한국의 반도체 산업으로 연 매출 40배 가까이 늘려 삼성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끌어올리며 삼성전자 회장과 총수를 겸하였다.

 

메디치가는 처음 부유하거나 두드러진 집안이 아니었다. 메디치 가문이 은행으로 성공했지만 처음에는 형제 사촌들이 공동 운영하던 소규모 대부 업자 형태였으며 대부업은 당시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편견을 내딛고 메디치 가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조반니 데 메디치는 삼촌인 비에리 데 메디치가 교황청 환전 업무를 하던 메디치 은행을 인수하고 후에 피렌체로 이주하여 교황청의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주거래 은행이 되어 피렌체의 최대 은행이 되어 승승장구 한다. 후에 ‘피렌체의 국부’라고 불리우는 코시모는 아버지 조반니의 금융업을 바탕으로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한 직물 제품을 유럽 등에 수출하고 향신료 등을 수입해 큰 이윤을 남기는 상품교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예술품의 수집

 

이병철 회장에서 시작된 삼성가의 수집과 예술 후원은 이건희 회장으로 인해 2대에, 그의 가족들을 통해 3대째로 이어지고 있다. 코지모 데 메디치로 시작된 예술품의 수집과 예술가의 후원은 후에 예술 후원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삼성가의 이병철 회장은 청자, 고서화 등 골동품 수집에 밝아 가야금관, 청자진사주전자, 군선도 병풍 등 국보에 해당하는 고미술품에 애착을 많이 보였다. 이건희 회장은 도자기 감정에 전문가 실력을 갖춰 백자 뿐만 아니라 국내 전문가들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로댕의 에디션을 처음 들여왔으며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직접 구매하는 열의를 보였다. 국내 작가들로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등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수집했다.

 

삼성가는 이건희 회장의 젊은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라는 지휘 아래 1980년대 말에 당시에 무명이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열어주는 등 예술가들의 후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내년 미국 순회전을 앞두고 있는 수묵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 화백은 23년 전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으로 월급을 받고 작품을 그리는 이른바 전속 화가의 역할도 했으며 호암 미술관에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이 일로 후에 세계적인 미술관과 컬렉터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현대 미술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 최근 생존 작가 중 최고의 작품가를 자랑하는 이우환은 1960년대부터 이병철, 이건희 회장과 인연을 쌓아 호암 갤러리, 로댕 갤러리에 개인전을 열어 주었다. 후에 파리 주드폼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삼성이 후원을 하며 이우환 개인전을 기획 하였으며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도 후원을 하는데 아끼지 않았다.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과의 인연은 일본산 소니 대신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1003대의 브라운관으로 제작한 대표작 “다다익선”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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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

 

 

메디치 가는 미술 후원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코지모 데 메디치에 의해 고전 문헌 수집과 수도원, 성당, 궁 등의 건축물 건립 투자로 당시에는 사회적 위상이 높지 못한 장인으로 일컬어지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들에게 작업을 맡기며 그들을 예술가의 반열에 올리는데 공헌을 했다. 특히, 피렌체 세례당 문에 걸릴 “그리스도전, 천국의 문”의 청동 조각을 로렌초 기베르티에게 맡기며 건립을 후원하였다. 코지모의 손자이자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위대한 로렌초’로 불리우는 로렌초 데 메디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품을 수집했다. 피렌체에는 뛰어난 손재주로 피렌체 부호들의 기호에 맞는 잡다한 물품을 만드는 공방이 성행을 했다. 이 중 몇몇 공방에서 수련을 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가 있었는데 이들은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 궁과 별장 장식을 위한 작품 의뢰와 후원으로 주옥같은 미술 작품들을 많이 남기게 되었다. 이 중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에 수집한 고대 조각을 보수하는 일을 하던 스승 조반니 문하에 있었는데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로렌초가 미켈란젤로에게 월급을 주고 아버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후원을 하며 미켈란젤로가 예술가로서 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로써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 불리우는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탄생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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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조반니 세례당 <천국의 문>

 

 

걸작이 가득한 미술관의 건립

 

미술에 심취해 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많은 미술품을 수집하고 소장하다가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말년에 자신이 30여년 동안 수집한 고미술품 천 2백여 점을 기증하여 자신의 호를 딴 호암 미술관을 개관한다. 이곳에서는 고서화, 도자기, 금속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도자기와 민화는 수준 높은 구성으로 유명하다. 이건희 회장도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유물들을 수집·보강하고, 한국의 근·현대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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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미술관과 내부

 

 

삼성미술관 Leeum은 호암 미술관, 호암 갤러리, 로댕 갤러리를 운영해 온 삼성 문화재단이 호암 갤러리를 한남동으로 이전 하면서 리움 갤러리를 개관한다. 리움 갤러리는 한국의 고미술과 현대 미술, 외국의 현대 미술을 소장하고 있는데 고미술품은 금속공예·불교미술·도자기·고서화로 구분하며 금동미륵반가상(국보 118), 가야금관(국보 138), 태환이식(보물 557), 금제환두태도(보물 776) 등 다수의 국보와 보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우리 미술의 본격적 세계화를 이끌어온 화가 및 서양화의 기법을 체화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표현한 서양화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외국 미술품은 마크 로스코, 데미안 허스트, 아니쉬 카푸어,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추상미술 작가의 작품에서 오늘날 세계 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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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과 내부

 

 

박물관의 시초라 일컬어지는 우피치 미술관은 코지모 데메디치 1세가 사무실로 쓰기 위해 만든 건물이었다가 후대에 물려지면서 메디치가가 수집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코지모 데 메데치 1세 때부터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메디치가와 연관되어있는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하여 200여 년간 미술품 제작을 예술가들에게 의뢰하고 수집된 작품들이 총망라 되어 메디치가가 숭배했던 인물들의 조각과, 초상화, 고대와 당대의 예술품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와 17~18세기의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가들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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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과 내부

 

 

경제적 효과와 사회 공헌

 

메디치가가 몰락하면서 후사가 없던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가 사망하면서 가문이 소장한 모든 예술 작품들을 ‘피렌체 밖으로 소장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피렌체에 기증했다. 가문은 없어졌지만 그들이 축적한 문화적 작품들은 유지되며 오늘날 피렌체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되었으며 도시의 사람들은 이로 인해 생계유지를 하며 긍정적인 경제 효과도 낳고 있다.

 

삼성가도 전국의 공공 미술관에 기증하며 이 기증품을 보려는 투어 족들로 인해 그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미술품들의 기증은 이건희 미술관의 건립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이 되면 국가 기관에 조건없는 기증으로 우피치 미술관처럼 국민들과 전 세계인들이 수준 높은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사랑받는 미술관으로 발돋움과 동시에 국가의 격을 높여 문화 예술의 강국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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