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플리컨트는 양의 꿈을 꾼다 [영화]

SF 마스터피스, <블레이드 러너 2049>
글 입력 2021.10.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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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시리즈(프랭크 허버트)는 그 방대한 세계관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컬트의 왕’ 데이비드 린치마저 <듄>(1984)으로 원작 설정을 크게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듄>을 2021년 새롭게 탄생시킨 신 SF 거장이 바로 드니 빌뇌브다. 그의 이번 영화 <듄>(2021)은 원작을 충실히 계승하며 압도적 영상미와 음악을 보여줬다. 특히 전작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연출과 흡사한 면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듄 개봉을 기념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톺아보며, 빌뇌브가 선보이는 사이버 펑크의 세계 속으로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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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속 디스토피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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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뇌브는 2049년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 삼아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특징답게 고도로 발달한 사회가 등장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나무나 풀 등의 자연환경은 찾아볼 수 없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사회 구성원의 모습도 살펴보자. 인조인간 ‘레플리컨트’들은 우월한 힘을 지녀 이상적인 노예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폭력 사태와 함께 반란이 발생하면서 이들의 생산은 금지되고 만다. 그러다 기아 문제를 해결한 천재 과학자가 ‘웰레스 사’를 만들고 이들을 개량한 신모델 레플리컨트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 신모델 레플리컨트에겐 그 이전 세대의 레플리컨트를 파괴하는 임무가 주어졌고 이러한 역할을 맡은 형사들을 ‘블레이드 러너’라고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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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는 LA에서 근무하는 블레이드 러너 형사로서 신모델 레플리컨트다. K는 초반엔 자신이 레플리컨트라는 정체성에 대해 뚜렷한 자각을 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도 그를 ‘껍데기’ ‘boy'라고 차별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일과 집이라는 매우 단조로운 일과를 살고 있으며 집에 오면 ‘조이’라는 인공지능 홀로그램이 그를 맞이한다. 인공지능 홀로그램과 ‘사랑’이라고 불릴 만한 정서적 교류를 느끼면서도 K는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며,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한편, K는 임무 도중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존재인 레플리컨트가 아이를 가진 것에 성공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아이를 없애라는 형사국 과장의 말에 K는 태어난 레플리컨트는 영혼이 있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의 본격적인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분하는 것이 영혼의 유무이고, 그 영혼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출생의 여부라 믿어 왔던 그의 신념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것이다. K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며, 몇 가지 증거로 인해 자신이 출생을 통해 태어난 레플리컨트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K는 자신의 존재에 관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작의 주인공이자 태어난 레플리컨트의 아버지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K는 사랑하는 인공지능 조이를 잃고 크게 다치고 만다. 정신을 잃은 K를 데려온 건 레플리컨트 저항군 세력이었다. 저항군 세력은 출생한 레플리컨트의 기억이 이식된 평범한 레플리컨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항군은 실망한 K에게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라고 말하며 저항군에 대한 정보가 새지 않기 위해 데커드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결국 K는 월레스 사로부터 데커드를 빼내지만, 죽이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고 그를 딸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데커드의 물음에 K는 웃어 보이며 눈 내리는 풍경에서 눈뜬 채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과 과학기술의 경계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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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후 우리가 답해야 할 첫째는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이다.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레플리컨트들은 우주 개척을 위해 개발된 새로운 기술에 불과하다. 영화 속 월레스 사를 비롯한 도구주의자들은 기술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에 의해 통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처럼 기술을 단순히 우리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도구주의적 시각’을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 기술은 종종 인간의 목적과 통제를 벗어날뿐더러 인간을 변화시킨다. 작중 K는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감정을 느끼고 자신만의 목적과 방향성을 지니기까지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 혹은 기술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은, 사용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행위자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주창한 ‘브뤼노 라투르’에 따르면 기술도 인간과 동일한 행위자이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듯 인간과 기술도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영화에 적용해 본다면 인간, 인조인간(레플리컨트), 인공지능 홀로그램은 예외 없이 동등한 행위자로 대우해야 한다. 인간과 기술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연결망 안에서 존재하는 만큼 둘은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 관계일 수 없으며, 동등한 행위자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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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은 어떨까? 먼저, 벤담의 전통적 공리주의 이론에 따라 문제를 살펴보자. 전통적 공리주의 이론에 따르면 인조인간의 학대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안이다. 인조인간을 인간과 동일하게 볼 것이냐는 문제를 차치하고서도, 레플리컨트보다 인간이 사회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쾌락이 우선되는 전통적 공리주의에서 레플리컨트는 다수를 위해 희생되는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칸트는 이 이론에 반기를 든다. 칸트의 이론에서 도덕적 주체의 기준은 ‘이성적 존재’인지 아닌지의 여부이다. 따라서 그는 합리적 의사 판단이 가능한 이성적 존재인 ‘인조인간’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일은, 그 존재가 다수인지와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물음만이 남는다.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을 이야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테지만, 감독은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슬며시 그 물음에 응답한다. 영화 속에서 조이의 파괴로 인해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경험한 K는 자신을 희생하며 데커드와 그 딸의 재회를 성사시킨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기 죽음을 감수하는 K의 모습은 ‘사랑’을 좇으려는 ‘아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였다. 감독은 이러한 연출을 통해 ‘사랑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믿음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었다.


 

(영상을 통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영상 미학을 체험해보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탄탄한 세계관과 독창적인 스토리로 ‘속편은 실패한다는 속설’을 뛰어넘은 영화였다. 더불어 촬영에는 <1917>로 유명한 로저 디킨스, 음악에는 한스 짐머가 참여해 압도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실제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며 2017년 최고의 비주얼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과학철학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연을 뛰어난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SF 영화계의 진정한 마스터피스’이다.

 

[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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