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로운 시작과 열망, 바우하우스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0.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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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바우하우스.jpg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 감성’ 카페에 방문하면 위와 같은 느낌의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실제로 카페 인테리어를 검색하면 이러한 포스터와 인테리어 용품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미술 사조에 속한 것인데, 사실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학교의 이름이었다. 그 역사는 1919년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처음에는 미술공예 운동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산업 세계와 결합하여 디자인과 미술의 결합이라는 분명한 자기 색채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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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슬로 모홀리 나기(Lazlo Moloy-Nagy)의 모습

 

 

 

바우하우스의 역사


 

바우하우스는 1923년 헝가리 미술가인 라슬로 모홀리 나기(Lazlo Moloy-Nagy)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산업 세계의 수용’이라는 특징을 분명히 했다.

 

모홀리 나기는 기계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관심사를 따라 바우하우스는 산업디자인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기조 아래 건축학 밑으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혼합해 새로운 총체예술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바우하우스는 이를 위해 실습과 이론을 더불어 겸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예 공방의 과정은 공방 마이스터(Meister, 장인)가, 자연과 재료에 대해 탐구하며 이론을 배우는 과정은 형태 마이스터가 맡아 가르쳤다.

 

모홀리 나기는 기계를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주장하며, 자연 속 재료나 명상적인 훈련보다는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와 산업 속 기술을 구축주의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작품을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작업했으며, 이러한 성격은 바우하우스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1928년 모홀리 나기가 교수에서 물러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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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우하우스는 정치적 관계로 인해 1932년 나치에 의해 강제 폐교하게 된다. 이후 바우하우스는 미국으로 넘어가 그 이념을 이어가는데, 초대 교장 그로피우스가 하버드대학교 건축부장, 마지막 교장이었던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일리노이공과대학교 건축학부장으로 부임하고, 모홀리 나기가 시카고에 뉴-바우하우스를 개설하여 그 명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단순한 역사 연표처럼 몇 년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니다.

 

바우하우스는 시간을 거치며 산업디자인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외부적으로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 등 다방면의 변화를 겪었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어떤 이유에서 기인했으며,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크기변환]모홀리 나기 작품.jpg

 

 

 

그들이 보여준 의미


 

사실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 미술의 한계를 폭로하는 존재였다. 바우하우스는 당시 모더니스트들이 강조했던 순수 시각을 넘어 비예술적인 영역인 대중의 삶, 대중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즉, 바우하우스는 회화, 건축, 도시 계획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순수한 모더니즘 미술과 키치적인 측면이 혼용되는 모더니즘의 양상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바우하우스를 단순히 모더니즘이라고 학습하지만, 이런 바우하우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모더니즘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우리가 배워왔던 제도화된 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비판을 떠올리게 된다.

 

이와 같은 모더니즘의 파열과 불균등성은 곧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예상하게 한다. 실제로, 바우하우스를 기점으로 1930년대까지 이어진 기하추상의 시대가 지나고 세계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1939년 발발된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세계의 힘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고, 새로운 미술 사조와 권력이 등장하며 온갖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예술가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상상의 세계는 변함없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어떤 것을 원하고 새롭게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이기 때문이다.

 

 

 

조소연 Nametag.jpg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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