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에 대하여 [사람]

글 입력 2021.10.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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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여성의 사회 진출이 당연시되는 요즘, 이들은 종종 가정과 일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한다.

 

그리고 굳은 의지로 가정과 일 두 개를 모두 병행하는 여성이라도 한 번쯤은 자신이 가정에서도 일에서도 완벽할 수 없음을 탓하게 될 때가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기른다고 하면 여전히 엄마의 역할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크기변환]영어유치원.jpg

 

 

여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러나 동시대에 이를수록 보다 그 기준이 엄격해지는 듯한데, 마치 사회 전반의 엄마들이 맞추는 어떤 선을 자신도 맞추지 않으면 금세 ‘나쁜 엄마’로 낙인이 찍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프지 않게 잘 키우면 좋은 엄마라면, 이제는 영어 유치원에 각종 발달 장난감까지 개월 수대로 빼놓지 않고 챙겨야만 좋은 엄마가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있다. 과연 이러한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성과 어머니로서의 자질은 언제부터 대두된 것일까?

 

 

 

조금 다른, 18세기 유럽의 이야기


 

놀랍게도 18세기 유럽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기엔 매우 당혹스러운 부모의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18세기의 전통적인 가족이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어머니, 아버지, 자식의 단출한 구성이 아니었다.

 

당시의 가족이란 하인처럼 가족이 아니더라도 남자가 부양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 가계를 의미했으며, 세대라는 개념은 피로 맺어지기보다는 아버지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특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식의 연쇄를 뜻했다.

 

따라서 부유층 사이에서는 독신이 자주 애호되었으며, 하층민들도 같이 살더라도 법률적으로 인정받는 결혼을 하는 것은 드물었다. 사랑 없이 결혼하여 남편의 아이를 하나 둘 정도 낳으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기에 불륜이 자연스러웠으며, 곳곳에는 사생아가 넘쳐났다.

 

요컨대 18세기 유럽에서의 결혼은 결코 개인적인 행복과 만족의 수단이 아니었다.

 

나아가 이때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도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 당시의 갓난아이나 어린아이는 무관심하게 취급받았다. 아이들이란 곧 귀엽고 제멋대로인 존재 정도였으며, 어린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확립되지 않았기에 미성숙한 성인의 취급을 받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유모나 하인의 손에서 키워지다가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생이 될 무렵 학교나 도제 교육으로 맡겨져 부모를 잘 모르면서 자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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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같은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은 당시 프랑스의 경직되고 부도덕한 문화가 이와 같은 가족 개념에서 기인했다고 보았다.

 

그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의 도덕적, 심리적인 성질이 어린 시절의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데, 부모들이 제대로 된 양육을 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가족 개념을 도입하기를 원했고, 결혼을 가장 행복하며 문명화된 자연의 상태로 간주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이나 교육에 대한 개념을 강조했다.

 

물론 아이들의 양육이 중요하고, 그것이 성인기의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대부분 증명된 이야기다. 그러나 발생한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부모의 조건’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는 부모는 다른 이들이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만족감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개념은 지지를 얻어, 계몽된 중산계층을 넘어 점차 귀족 계급에까지 퍼져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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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가족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아내이며 어머니인 여성이었다. 여권이 떨어지던 18세기인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 시기 요구되던 어머니의 자질은 다소 당혹스럽다.

 

당시 글을 쓰던 사람들은 아내에게 남편에 대해서는 요염하고, 가정에 있어서는 검소하며,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적절한 양육환경을 제공하는 어머니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임신부터 모유를 줄 때의 기쁨과 같은 과정들을 찬양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굳이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사랑으로 낳은 아이에 대해 기쁨과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때때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겹친 무수한 개인적인 사정들,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복잡한 개인의 역사에 의해 어떤 여성들은 모성을 느끼기 힘들고, 어떤 여성들은 자식을 기르는 기쁨보다는 자식을 기르는 우울이 더 커지는 사람도 있다.

 

만일 사회가 여성에게 무조건적으로 임신한 기쁨, 자식을 기르는 기쁨, 남편을 챙기는 기쁨만을 강요한다면 이는 곧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는 명제를 만들어내며 ‘이상적인’ 여성상을 고착화할 것이다. 마치 18세기 유럽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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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동시대의 워킹맘(working mom)들도 너무나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어디선가 훌륭한 엄마, 동시에 능력 있는 직원이 되기를 요구받고 있지만, 그것이 녹록지 않은 것이 당신의 탓은 아니다.

 

우리는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지는 시대보다는 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여성의 찬란한 기쁨을 논하는 것은 고리타분하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며 할 수 있을 때는 하고 할 수 없을 때는 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출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여성과 모성에 대한 이야기는 떼어놓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18세기 유럽의 사회를 보며 이 시대의 엄마들이 결국 자신이 할 일들이 하늘에서 내려준 무조건적인 법이라기보다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졌던 것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모성에 대한 요구는 때로는 없어졌다, 때로는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200년 후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보고 당혹스러워하지 않기 위해.

 

 

 

조소연 Nametag.jpg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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