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앨리스가 되는 순간 [문화 전반]

외국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글 입력 2023.11.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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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가 만든 ‘이상한 나라’


 

“스미마셍. 아이스 코-히 후타츠 구다사이.” (실례합니다. 아이스 커피 두 잔 주세요)


무더운 대낮, 나는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더위를 피하려 카페로 피신하는 것, 그리고 한여름에 얼음이 든 음료를 시키는 것. 둘 다 그렇게 유별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들어간 곳은 우리에게 친근한 ‘투썸플레이스’나 ‘이디야’가 아닌 ‘툴리즈 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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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곳은 일본이었다. 간단한 단어만 몇 개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에다, 그마저도 히라가나나 가타카나 같은 문자는 읽지도 못하는 내게 일본은 동화 속 앨리스가 방문한 ‘이상한 나라’와도 같았다.


익숙한 장소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치는 나지만, 낯선 장소에 가면 주눅이 들게 된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저절로 수그리게 된다고 해야 할까. 긴장해 굳은 제 등을 스스로 밀어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라도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유튜브를 통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본어를 익혔다. ‘코’는 약간 늘리고, ‘히’를 말할 땐 보다 높은 음으로. 화면 속 일본어 강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이제 그 결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때였다.


“하잇, 아이스 코히 후타츠.” (네, 아이스 커피 두 잔이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점원분께서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천천히 되물어 주셨다. 어설플지언정 주문이 먹혔으니 성공이었다. 뒤에 있는 손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 게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드린 금액과 주문 번호까지 되뇌어 주신 친절 덕에 무사히 커피를 받아 갈 수 있었다.


뜻 모를 말이 적힌 음료에 쩔쩔매다, 그걸 마신 후에야 마침내 문을 통과하게 된 앨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다못해 무인카페서 버튼 몇 개 두드리기만 해도 쉽게 나올 커피가 그 순간 무척이나 귀하게 보였다. ‘앨리스’가 된 그때, 문득 내가 거쳐 왔던 다른 어린 앨리스들이 떠올랐다.

 

 

 

영어가 만든 ‘이상한 나라’


 

예전의 나는 첫 아르바이트를 영어 도서관에서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자격을 얻기 위한 테스트는 어찌어찌 통과했지만, 작문이며 회화며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 주눅이 들었었다.


‘선생님’이라는 친근하고도 무거운 이름에 고민하던 때, 내게 힘을 준 이들은 아르바이트 중 가르쳤던 아이들이었다. 나에게도 영어를 공부했던 때가 있었고, 아이들이 읽는 책 중 대다수가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의 나는 만화 영화 ‘슈렉’,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등 다양한 선생님을 통해 영어를 배웠다. 그렇게 재미 위주로, 좋아하는 부분만 쏙쏙 골라서 배우다 보니 스스로 ‘영어 좀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나는 개구리였고, 내가 있는 곳은 넓고 깊은 우물이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뛰어 봐도 다리 더 긴 개구리, 힘 더 센 개구리가 나타나 나를 앞질렀다. 너무 지친 나머지 한때는 더는 뛰지 않고 그대로 앉아 위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일 저 하늘이 오히려 천장 같다고 느껴졌을 때, 영어는 더는 재미있는 언어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에게


 

주인공 앨리스의 첫 목표가 흰토끼를 따라잡는 것이었을지언정, 그녀가 작품 내내 토끼를 잡으러 뛰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앨리스는 모자 장수의 티파티에 참여하기도, 장미 정원에서 트럼프 병정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한다. 행동의 제약 없이, 풍부한 경험을 했을 때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굴 앞질러야 한다거나, 현재 위치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부담감은 재미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영어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런 부담감을 이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스스로 이런 규칙을 세웠다. 영어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편하게 질문하게끔 하고, 최대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


일이 밀려 우왕좌왕하는 때도 많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이끌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오늘 본 단어가 어려워도, 당장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좋은 선생님’을 지향했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는 아이들이 나에게 준 것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놀라웠던 점이라면, 아이들에게는 어른인 나보다도 더 쉽게 털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울던 아이도, 공부하기 싫어 책상에 앉아 버티고 있던 아이도, 어르고 달래면 어느새 가만히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영어에 다시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공부했고, 더 대화가 잘 통할 수 있도록 공부했다. 우물 속에 머물러 있던 나는 이제 위가 아닌 앞을 보게 되었고, 비로소 본연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앨리스가 갖은 고생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문을 찾아냈던 것처럼.


길 잃는 일 없이 무사히 귀국한 지금, 앞으로 내 앞에 얼마나 더 많은 이상한 나라들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더 많은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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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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