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잃어버린 시간 감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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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10월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지난달에도 나는 ‘왜 벌써 9월이지?’라는 생각을 품으며 새로운 달을 맞았는데, 그런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10월이 온 것이다.
내가 계절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온도도, 풍경도 아닌 냄새였다. 계절의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이맘때가 되면 문득 외출을 했다가 느껴지는 차갑고 맑은 향에 고개를 들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지금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가을 아침만이 가진 특유의 향.
그러나 마스크를 쓰면서 이 감각이 둔해졌다. 그 말은 곧, 나의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날씨에도 원체 둔한 편이라 계절에 안 맞게 옷을 입고 다닌다는 잔소리를 듣던 나에게, ‘이 시국’은 더 큰 혼란을 주었다. 1년간의 휴학 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참고할 여지도 없애버렸다.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고서 지내니 지루함만 커지고 시간은 오히려 빠르게 흐른다.
또 다른 부작용은 2020년과 2021년을 헷갈린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여름 즈음, 봄이었나, 하는 생각은 들어도 그것이 올해였는지, 작년이었는지 종종 잊어버린다. 그전의 기억을 떠올릴 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과거였음을 알아낸다. 그만큼 조용한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이겠지.
외향적인 타입인 나는, 주기적인 이벤트로 시간의 흐름을 기억한다. 봄에는 벚꽃을 보러 다녔고, 나가서 피크닉을 했고, 여름엔 꼭 여행을 떠났었다.
가을에만 걸칠 수 있는 예쁘고 얇은 아우터들을 그 짧은 기간 동안 많이도 입고 나갔었다. 좋아하지 않는 겨울이 찾아와 잠시 시무룩해지면,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석양을 보기 위해 차가운 공기를 뚫고 바다에 다녀왔다.
정말로, 밖에 나가지 않으면 시간을 알 수 없다. 요즘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집에 있기 싫어 죽을 맛이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몇 달이 지났다고 하니 억울한 기분까지 들 때가 있다. 나름 내 삶의 모든 시간들을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완전히 반대였기 때문이다.
마음은 조급하고 되는 건 없는, 탓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밤에 나다니기를 좋아하던 내 모습은 지워졌다.
6시 이후엔 두 명 이상의 모임도 불가능하고, 모든 곳이 10시 이후면 문을 닫는다. 새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던 내 모습도, 바에 앉아 책을 읽던 내 모습도 이젠 없다. 가끔 이태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던 밝고 유쾌한 면도 흐릿하다.
기대되는 하루가 없으니 낮을 더 멀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18시간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서는 헛웃음을 쳤다. 그저 계속되는 밤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렇게 나는 내 시간의 일부를 잃어간다.
이제는 새벽에 마스크를 쓰고 홀로 산책을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귀찮아서 잠옷에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가도, 돌아오기가 싫어 발이 까져도 한참을 걷다 온다. 잠깐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도 질질 끌 때가 있다.
그 아무도 없는 정적의 순간들에, 나는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크게 쉬어 본다.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계절을 느끼는 동물적인 생(生)의 감각, 잃어버린 시간 감각을 되찾기 위해, 혹은 단순히 한숨을 쉬는 걸지도.
[황인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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