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파리 청년들의 얼굴 - 오페라 라보엠

글 입력 2021.10.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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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청년의 경제적 자립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의 구직단념자, 비자발적 실업자 등을 모두 합쳐 계산한 확장 실업률은 21.7%에 달했으며, 올해 1월에는 27.2%까지 상승하였다. 사실 실업률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계약직 형태라는 것도 문제가 된다. 우리 세대의 공무원에 대한 비정상적인 선호 역시 안정적이지 않은 노동시장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사실 이는 기술 발달과 노동환경의 변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결과다. 재택근무로 인해 고정된 `시간`의 개념이 변화하고, 기술 발달로 인해 `인간 노동의 형태`가 변화했다. 이에 따라 정규직인 계약직으로, 특정 전공이 선호되는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다양한 전공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학은 취업의 관문으로서 대부분 그 기능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노동 수입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세계정세는 청년층의 불안감을 심화시킨다. 주거 독립이 불가능해진 부동산 가격과 국제적 자유주의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책에 근거한 민족주의의 유행은 경제체계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청년층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급되어 청년 문제가 해결될 기미 역시 보이지 않는다.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서 생존 논리를 벗어난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불안정한 세계정세와 흔들리는 노동가지 속에서 생존 논리에서 벗어난 가치를 찾는 것은 우둔하고 위대한 일이다. 남아있는 자원을 끌어당겨 이뤄야 하는 과정이지만 현실에서 보상받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비극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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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오페라 `라보엠`에는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시대의 얼굴들이 보인다. 라보엠이 만들어진 시기는 1830년대쯤으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다시 루이 필립을 중심으로 왕정이 군림하였다. 금융 귀족은 자본 귀족을 몰아내고, 노동자, 농민, 시민들을 권력에서 배제하였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새로운 형태의 자본가가 출현하고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격정적인 정치적 변동, 경제체계의 변화, 새로운 사상의 발표. 예술은 새로운 형태를 부여받고, 정치사상은 새로운 단계로 발돋움했다. 시대의 허리인 청년들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지만 혼란스러움 속에서 고통받는다. 라보엠에서 나타난 청년의 얼굴은 오늘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라보엠이 이상하리만치 나의 입맛을 쓰게 했다면 과장일까, 비루한 생활 속에서 이상과 슬픔을 하나씩 주워 먹는 모습은 시대적 자화상으로 느껴져 외면하기 어려웠다.


작품은 로돌프와 미미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로돌프는 가난한 시인으로서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너스레를 떨며 자기 작품을 장작으로 태우며 농담을 치고, 마음에 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재치를 발휘하는 자유로운 인물이다.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의 병이 깊어지자 자신이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특별히 책임지지도 않고 헤어지는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마음껏 울부짖는 감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미미는 로돌프에게 촛불을 빌리러 온 가난한 청년으로, 수를 놓으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순진해 보이지만 사랑을 시작한 직후에 연인의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조르고, 연인 앞에서 죽는 것을 선택하는 등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후반부에는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하여 이별을 먼저 고하고 남은 물건의 처리를 이야기하는 단호한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로돌프와 미미의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 간 우정도 라보엠의 주요 소재가 된다. 마르첼로는 로돌프와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친구로, 가난한 화가다. 그는 인기 많은 전 연인인 무제타를 잊지 못하고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무제타는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하고 사치를 즐기지만, 인간에 대한 우정과 연민을 가진 따뜻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외에도 배를 곯는 친구들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 나누어주면서도 괜히 거들먹거리는 가난한 음악가 쇼나르, 죽어가는 미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아끼는 외투를 포기하는 철학가 콜리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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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엠은 자유로운 행동거지를 한 사람을 의미하는 보헤미안적 특성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라보엠`은 전체적으로 이들의 자유로움을 유쾌하게 그리기보다, 이들이 겪는 비극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생활상이 진중하게 그려지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어 도입부의 아리아에서 마르첼로와 로돌포는 시원시원하고 짧게 대화 형식으로 노래한다. 이 노래는 극 중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며, 이 아리아 뒤에는 쇼나르가 경쾌한 리듬으로 자신이 알바했던 곳에 대해 노래한다.


로돌포는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친구들을 내보내고, 미미가 촛불의 불을 빌리기 위해 방문한다. 여기서 로돌포와 미미가 부르는 아리아는 친구들과 함께 부른 아리아와 비교해 감미롭다. 특히 음악 전반에 깔린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은 미미 성악가의 목소리를 좀 더 아름답게 살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테너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은 창백한 미미의 손을 잡고 사랑을 고백하는 루돌포의 마음이 담겼다. 이어 둘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난간에서 달빛을 받으며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이중창을 끝으로, 마임 전담 아티스트가 등장한다. 마임 아티스트는 다음 배경인 `크리스마스 거리`를 준비하도록 시간을 끈다. 연출적으로는 극에서 묘사되는 사랑을 하나의 몸짓과 시로 다시 표현한다. 마임은 다시 무대가 바뀌는 루돌프와 미미의 이별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화면 전환 이후로 다소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친구들은 술을 마시고, 미미와 루돌포는 함께 데이트한다. 그때 무제타와 알친도르가 나타나 전 연인 마르첼로가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 장면에서는 다양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빙하는 웨이터, 장난감을 파는 상인과 상인을 따라다니는 아이들, 과일을 판매하는 사람 등, 관객의 시야에서는 주인공 일행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에 여러 성악가의 선율과 이야기가 섞이면서 왁자지껄한 크리스마스 거리가 재현된다.

 

개인적으로 양옆에 있는 자막들을 번갈아 보고 대사를 화면에 적용하느라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크리스마스 거리가 잠깐 잠잠해진 때에는 무제타가 등장하는 씬이다. 이 장면에서 미미는 무제타가 마르첼로를 여전히 잊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챈다.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막에서는 `이별`이 주제다. 전체적으로는 무거운 음악이 흐른다. 새벽을 배경으로 음악은 강한 음이 깔리며, 미미가 루돌포의 집착과 자신의 병으로 인해 이별을 고할 때는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가 겹친다. 두 사람은 이전 사랑의 기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이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미는 폐병으로 죽어간다. 죽어가는 미미를 치료하고 따뜻하게 하려고 무제타는 자기 귀걸이를 판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에서 들었던 아리아는 `낡은 외투여 안녕`이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존재감이 옅었던 콜리네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가난한 삶의 애환과 진정한 연민의 감정이 함께 뒤섞인다. 콜리네가 아끼는 외투를 팔아 돈을 마련하지만, 미미는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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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체적으로 `라보엠`은 그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자 주인공들은 가난하지만 활기찬 예술가적 면모가 있으며, 미미는 순종적이고 가련한 여인으로서, 오페라의 흥행을 위해 희생당하는 역할로 묘사된다. 전형적인 남성 여성 캐릭터보다는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작품이 내게 어떤 인상을 준 것은, 이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성별을 떠나 오늘날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시기, 친구들과 너스레를 떨고 삶의 가치에 집중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고, 미래를 희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의 끝에서 미미는 죽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별 후에도 자기 작품을 그리고 글을 쓰고, 친구와 너스레를 떨었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이 복잡한 아이러니가 그러한 청년 중 하나인 나에게도 이상한 안정감을 줬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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