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의 일

글 입력 2021.09.28 00: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일이라는 단어를 정의함에 있어 반드시 경제적인 가치가 뒤를 따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영역이지만, 과연 그것이 '일'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속, 이 세상에는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가치라는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매기는 그 과정에 개입하는 또 다른 가치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가의 일은 자본의 영역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고유한, 나아가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책 <예술가의 일>은 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책을 통해 알게 된 이름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의 결과물을 생산해 내었다. 그 모양과 색은 각기 달랐음에도 '예술'이라는 단어 아래, 그들은 하나같이 반짝이고 있다.

 

*

 

다이앤 아버스, 그의 별명은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였다. 사진작가였던 다이앤의 렌즈는 늘 사회의 관심 밖을 향해있었다.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상류층에 염증을 느낀 그는 상업 작가가 아닌 예술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렇게 스승인 리제트 모델의 뒤를 이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다이앤의 사진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1.jpeg

A Young Man in Curlers at Home on West 20th Street (1966)

 

 

몇 번의 사진전을 다녀보았지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들을 찾아보며(!) 사진이 가진 힘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사진작가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자신이 보는 세상을 담는다고 말한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 속에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일반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기이하기까지 느껴지는 외형을 지녔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 어떤 피사체보다 당당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게 나야!'라는 문장이 들려오는 듯하다.

 

*

 

수잔 발라동, 몽마르트의 뮤즈라 불렸던 그는 모델이자 화가의 삶을 살았다. 가난한 현실을 살아내고자, 우연치 않게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던 그는 스스로 붓을 쥔 화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현실의 풍파를 굳건히 이겨낸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20200319_4427121_1584594964.jpeg

The Blue Room (1923)

 

 

이상화되지 않은 몸, 수잔의 그림 속에는 수잔 그 자신이 앉아있다.

 

'왜 항상 여성은 굴곡진 몸매를 가져야 하는가?' 나는, 비너스의 몸에서야 여성성을 찾는 이들에게 항상 묻고 싶었다. 수잔의 그림은 그 대답을 대신해 주고 있는 듯하다. 틀에 박힌 시선에, '그럴 필요 없다'라고 코웃음치는 듯하다. 이게 나라고,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잔 발라동이라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

 

나혜석, 한국의 페미니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 서양 유화를 배우고 유럽의 야수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대표작인 <자화상>을 비롯한 작품들을 남긴 화가였지만, 그 이전에 나혜석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 앞장섰던 여성해방운동가였다.

 

여성에게 모성애가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잣대를 향한 회한을 거침없이 드러내었던 그의 삶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같았다.

  

 

131.jpg

자화상 (1928 추정)

 

 

당대 한 명의 신여성으로서, 나혜석은 그 누구보다도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에 굴복하기보다 당당히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던 그. 그 대가는 너무도 혹독했지만, 그 흔적은 21세기 현재까지 선명하고도 막대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 역시, 그의 투쟁이 가져온 결과일지 모른다.

 

물론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책 <예술가의 일>을 통해 예술사에 발자국을 남긴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 경계가 전통적인 예술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아티스트라는 칭호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있는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칼럼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엮어 책으로 발매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각 인물별 글의 호흡이 길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책장을 왔다 갔다 옮겨가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다양한 예술가들에 대해서 빠르게, 하지만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취하기에 좋을 책 <예술가의 일>. 예술가의 일들을 적어내려간 저자의 일을 읽어내려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