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 드로잉 작품을 통해 기분전환하기 [사람]

Rob Wynne의 실 드로잉 세계
글 입력 2021.09.2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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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다보면 유난히 기분이 울적한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너무 매몰되어있기보다는 금방 괜찮아질 수 있게끔 자신만의 습관을 정해두는 게 좋다. 나는 마음이 힘든 순간에는 관성적으로 취향에 오롯이 들어맞는 무언가를 찾고는 한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에, 남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할 비가시적인 생채기를 세심히 보듬어주는 음악, 책, 영화 등은 애정 어린 선물처럼 여겨진다. 아무래도 기대어 쉴 수 있는 온기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9월에 접어들어 내가 새롭게 발견한 해소법은 미국 작가인 Rob Wynne의 ‘실 드로잉(Thread Drawing)'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천이 아니라 반투명한 거름종이 위에 유리비즈가 촘촘히 바느질 되어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나는 그가 생성하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속삭이는 무채색의 정서가 좋다. 너무 색이 많을 경우 왠지 에너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부담스러운데 그의 작품은 흰색, 회색, 검정색이 주된 색채인 까닭에 개인적으로 눈이 몹시 편하다.
 
 
[크기변환]KakaoTalk_20210927_013350612.jpg
I WAS TOLD THEY LOVED ME(2019), AFTERGLOW, White Butterfly, Web

 

 
나는 무채색을 선호하는 편이다. 흔히들 검정을 억압과 공포의 상징이자 어둠의 색으로 간주하지만 나는 검정 특유의 가라앉는 느낌에 끌린다. 나는 꺼려지는 감정들일수록 누군가에게 드러내기보다는 혼자서 삭히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검정은 내게 자아를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경직된 마음을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몽글하게끔 유도하는 소중한 색이다. 검정 안에서도 충분히 감정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으며 정도의 차이일 뿐 정서적 효과 또한 다른 색상과 마찬가지로 분명 존재한다. 흰색, 회색 그리고 검정색은 내면의 그림자를 끌어안으며 마치 녹색처럼 나를 진정시킨다.
   
Rob Wynne는 초기에 추상 회화 위주로 작업했지만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갈망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점차 섬유로 매체를 전환하였다. 그는 자신처럼 난독증을 앓고 있더라도 어려움 없이 공감 가능한 서사가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였다. 그에게는 매체의 물성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가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섬유야말로 이러한 관점에 가장 합당하였다. 바느질이 활용된 작업물은 우리에게 감성적 매력을 직관적으로 흩뿌리기에 지적 능력이 전혀 문제되지 않을 뿐더러 그저 장식미술의 일종으로서 만끽하면 되므로.
 
Rob Wynne는 유리라는 재료를 늘 애용해왔다. 유리는 사실 다루기 굉장히 까다로운 매체군에 속한다. 긴 공정을 거쳐야만 하며 도중에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면에서는 오페라와 비슷하다. 그는 단순히 정형화 된 틀에 부어서 대량으로 제작되어지지 않을 뿐더러 최소한의 컨트롤이 전부인 유리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라 말한다. 기물을 의인화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어쩌면 유리비즈는 그에게 동반자와 다름없으며 재료 이상의 큰 상징성을 지니지 않았을까.
 
한편 Rob Wynne가 거름종이를 캔버스로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뒷면에 실이 헝클어진 모습이 앞면에서 어떻게 비춰질지 실험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앞면이 예술적 언어가 관객들에게 서서히 가닿는 면이라면, 뒷면에 실이 헝클어진 형상이야말로 앞면에 나타나는 명확한 윤곽을 비로소 의미있게 만드는 요인이라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는 작품 창작 과정에서 발생되는 추상적인 구상과 구체적인 구상 사이의 관계성을 표상한다. 그의 작품들은 과정미술이나 개념미술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9월은 내게 나름대로 비장한 달이다.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일까. 살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지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요즘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로하지만 내가 택한 일과인 만큼 기왕이면 주어진 일들을 모두 의연히 잘 해내고 싶다. 사실 방전 될수록 밤에 잠을 푹 자니 지금 시점에서는 불면증이 심한 나에게 잘된 일이기도 하고. 이따금씩 지치더라도 마음이 동하는 시각예술이 선사하는 즐거움 안에서 슬기롭게 휴식하며 정해진 스케줄을 무사히 소화하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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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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