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움직이지 않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벌어지는 일 - 인디애니페스트 2021

상상 너머의 독립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입문하다
글 입력 2021.09.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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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트인.jpg

 

 

2005년 첫 영화제를 시작으로 어느덧 17회를 맞이한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가 9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렸다. 올해 작품 공모에는 290편이 접수되었고, 4개의 경쟁 부문과 3개의 초청 부문, 총 7개 부문으로 6일간 총 71편이 상영되었다.

 

‘인디애니페스트’라니, 생소한 이름의 축제라 검색을 하고 나서야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독립 매거진, 독립출판, 독립영화는 들어보았지만 독립 애니메이션은 처음이었고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또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 궁금했다.

 

내게 애니메이션이란, 토이스토리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는 정도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분야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인디애니페스트도 큰 기대 없이 향했다. 처음 독립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다녀온 이후로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이 구현할 수 있는 세계가 굉장히 다채롭고 폭넓다는 것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다.

 

 

 

人비트人(Inbetween)



트레일러.jpg

ⓒ인디애니페스트 공식 트레일러 캡처본

 

 

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슬로건이었다. ‘사람인’과 ‘사람인’ 두 글자 사이에 놓인 글자 ‘비트’. 생소하게 느껴지는 한자와 한글 두 글자의 조합을 빠르게 읽어보면 괄호 안의 글자 ‘Inbetween’이 드러난다. 올해의 슬로건인 '人비트人(영문: Inbetween)'은 총 3가지 의미로 쓰였다. 영어 단어 자체로 '개재하는, 중간의'라는 사전적 뜻 외에도 애니메이션 용어로 '키 프레임 사이에 들어가는 프레임'을 뜻하는데, 또 한 번 보고 듣고 말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인디애니페스트를 상징하기도 한다.

 

슬로건과 함께 해당 축제의 공식 포스터 속 형체도 눈에 띄었다. 올해의 포스터는 지난해 인디애니페스트 2020 대상 '인디의 별' 수상작 <꿈>의 김강민 감독이 맡아 전작과 동일한 기법으로 포스터 속 오브제를 손수 만들었고, 인디애니페스트를 상징하는 '人 비트人'이라는 슬로건을 포스터에 녹여냈다.

 

공개된 트레일러는 형형색색의 미지의 물질이 기포와 함께 터져 오르면서 시작되고, 프레임이 바뀌면서 ‘연필’이 구부러졌다 분열했다 연결됨을 반복하면서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트레일러를 연출한 김강민 감독은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존재하더라도 연결을 시도하면 결국 만날 수 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너와 나의 '인비트인'을 완성하는 것뿐이며, 다시 연필을 들고 그 작업을 시작하자"라며 연출의 의도를 밝혔다.

 

 

 

독립보행 3 그리고 새벽 비행 2



부문별 작품을 소개하자면, 기성 애니메이터들 작품 대상의 '독립보행(Independent Walk)'과 학생 애니메이터들이 경쟁을 펼치는 '새벽 비행(First Flight)', 아시아 지역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아시아로(ASIA ROAD)', 지난해 신설된 웹 애니메이션을 대상으로 한 '랜선 비행(Animated Web Series)’까지 4개의 경쟁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청은 파노라마, 해외, 릴레이 작가 초청전까지 3개 부문으로 진행되었다.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간 10개 정도의 독립적인 작품들이 옴니버스 형태로 이어졌으며 대개 실험적이고 예술적이며 주제를 절대 심심치 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재, 스토리라인, 음향효과, 연출을 구현해낸 점이 눈에 띈다. 코로나인 상황에 소규모로 진행되는 영화제인 만큼 축제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작품 자체로 인상 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제 중 특이했던 것은 해당 축제에 방문하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에 직접 투표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영화관을 들어설 때 ‘관객상 투표용지’를 주는데, 모든 작품을 감상한 후 마음에 들었던 단 하나의 작품명 옆의 점선 부분을 살짝 찢어 퇴장 시 투표함에 넣어야 했다.

 

 

투표.jpg

 

 

필자는 9월 13일 월요일에 방문하여 ‘독립보행 3’과 ‘새벽 비행 2’를 관람했고, 특히 ‘독립보행 3’의 경우 어느 한 작품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전체적인 총평을 말해보자면, 확실히 기성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을 다룬 ‘독립보행’ 시리즈의 경우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소재와 연출 방식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넓었다. 물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분명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것 나름대로 실험적이었다. 구도가 신선한 작품, 은유적인 메시지로 인해 강한 메시지 전달이 돋보이는 작품, 음향효과가 돋보이는 작품, 다양한 소재 및 연출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 등 작품별로 연출, 음악, 스토리보드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감상한 이후로는 제작 의도 및 연출 방식에 관한 비하인드가 궁금하기도 했다.

 

반면, 이어 감상한 학생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인 ‘새벽 비행’ 시리즈의 경우 살짝 진부한 메시지 전달 및 연출 방식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다채롭고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감상한 ‘독립보행 3’ 작품을 중심으로 총 세 작품에 대한 감상 후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바다위의별.jpg

ⓒ인디애니페스트2021

 

 

Stars on the Sea 바다 위의 별 / 장승욱 / 2021 / 06:06 / 2D / Korea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물은 차오르고 세 모녀는 의연하게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다다른 옥상 위에서 큰 배와 맞닥뜨리며 조각난 건물. 그 작은 조각 위에서 SOS를 외치는 세 모녀, 아니 알고 보니 북극곰 3마리가 이내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친다. 저 멀리 하늘에서 바라본 작은 흰 점 3개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바다 위의 별’ 영어로는 Stars on the Sea를 의미한다.

 

이때 처음부터 끝없이 차오르는 물, 처음에는 인간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북극곰이 SOS 구조 요청을 보내는 것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기 위한 연출이었다는 점에서 살짝 전개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토리라인이 확실하고 나름의 의미가 존재하는 작품의 제목까지, 군더더기 없이 탄탄했던 작품이었다.

 

 

컬러풀.jpg

ⓒ인디애니페스트2021

 

 

COLORFUL 컬러풀 / 차재현, 황병헌 / 2021 / 08:48 / 3D / Korea

 

처음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강아지가 색맹이라는 가상의 전제를 바탕으로 소년 ‘윌’이 자신의 노견 ‘노먼’을 위해 색을 볼 수 있는 안경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로, 토이스토리처럼 나름의 잔잔한 감동이 있는 몽글몽글한 작품이었다. 이때 노먼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장면의 연출이 좋았다.

 

특히 맨 처음, 노먼이 처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때 지지직거리는 듯한 빛바랜 색의 여러 종이가 겹쳐 보이는 듯한 장면은 마치 처음 새로운 세상을 보면 머리가 어지러운 듯한 느낌을  연출한 것 같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노먼은 세상의 다양한 색을 인지해 가는 과정 중에  노을이 지는 하늘에 물든 주황빛과 그 빛에 비친 윌의 얼굴의 주황빛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우리 눈앞에서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주변에 깃든 색의 아름다움을 노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장면인 동시에, 노먼도 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윌의 마음을 아는 듯 서로 눈 맞춤을 하는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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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니페스트2021

 

 

The Playground 더 플레이그라운드 /이나윤 / 2021 / 06:30 / Glass, Puppet, Drawing, 3D, Cut-Outs, Live Action / Korea, USA


다양한 소재와 연출 방식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유리와 인형 그림을 사용하였고, 그림 조각들을 한 장면씩 움직여 가며 촬영하여 연속 동작을 만드는 Cut-Out 방식과 실제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live action까지 한 가지 방식이 아닌 연출 컷에 맞게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지루할 틈 없이 움직임과 효과가 많았고 눈이 즐거웠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영어 단어의 creepy였다. 10에서 1까지 숫자가 카운팅 되는 장면에서는 징그러운 곤충과 낙엽 같은 그림 조각들이 모였다 흩어짐을 반복되고 흡사 공포영화에서 삽입될 만한 효과음도 들리면서, 전체적으로 기괴하고 기이하고 오싹했다. 그래도 그런 장르에서 느끼는 끔찍하고 불편한 느낌보다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실험 정신과 다양한 연출 방식이 돋보여서 그런지 소름이 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안고 집중해서 본 작품이라 여운이 가득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나노 단위로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



이번 기회로 다시금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고 더 생각해 보게 됐다. ‘애니메이션’이란, 만화나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촬영기법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들은 넘쳐났고 그곳에 상상력을 덧대고 숨을 불어넣으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장면을 화면 안에 연출해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그 점이 바로 애니메이션만이 구현해낼 수 있는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간 스토리를 펼치는 동안 어떤 메시지 또는 스토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따라 애니메이션이 표현해낼 수 있는 세계는 다큐멘터리, 만화, 짧은 영화와 같이 무궁무진하고 다채로울 수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인디애니페스트 2021’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혀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연출 방식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년 ‘인디애니페스트 2022’가 오기 전까지 전 세계의 상상력 가득한 애니메이터들의 매력 있는 작품의 행보를 응원한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컬쳐리스트.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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