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애니메이션이여야만 가능한 이야기 - 인디애니페스트 2021

글 입력 2021.09.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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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다른 이름은 '자유'



9월 9일부터 14일까지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가 막을 내렸다. 매년 다양한 창작자들의 톡톡 튀는 개성이 담긴 작품을 선보여왔던 터라 기대가 컸는데 이번 영화제에서도 그 기대감을 상회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애니메이션은 다른 영상물에 비해 향유하는 연령층이 낮거나 마니악한 장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디애니페스트를 한번 즐기고 난다면 그런 편견은 단숨에 사그라들 것이 분명하다. 애니메이션이여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표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시각 매체와 음향 등을 다양한 기법으로 활용하는 만큼 애니메이션이 전할 수 있는 메세지 역시 무궁무진하다. 너무도 불편하여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소재를 은유적으로 그려내 주제의식을 배가하는가 하면, 소통 불가능한 자연물에 의식을 부여해 마음이 벅차오르는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영화제



영화제는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됐으며, 이번 17회 영화제의 슬로건은 '人비트人'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인디애니페스트 본연의 성격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공식 포스터와 트레일러 영상은 작년 인디애니페스트 2020 대상을 받은 <꿈>의 김강민 감독이 맡아 더욱 의미 있었다.

 

전작 <꿈>과 동일한 기법으로 포스터 속 오브제를 손수 만들었는데, 다채로운 미지의 물질이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하고 형형색색의 빛과 선은 강렬한 비트에 맞추어 존재와 존재를 연결함으로써 슬로건을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아울러 이번 영화제에서는 세계적인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빌 플림턴을 주제로 특별 전시를 개최해 이목을 끌었다. 단편 13편 상영작 중 <데미, 패닉에 빠지다>는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됐으며 다양한 작품 라인업을 토대로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와 풍자 요소를 매력적으로 보여줬다.

 

영화제는 4개의 경쟁 부문과 3개의 초청 부문 총 7개 부문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쳤다. 4개의 경쟁 부문은 기성 애니메이터 작품 대상의 '독립보행'과 학생 애니메이터가 경쟁을 펼치는 '새벽비행', 아시아 지역 작품을 대상으로 한 '아시아로', 작년 신설된 웹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랜선비행' 부문으로 나뉜다. 이중 독립보행 부문은 뮤직 비디오, 다큐멘터리 등 다채로운 표현 방식이 나타났으며 동물, 펜데믹, 비디오 플랫폼 등 시의성 있는 작품이 존재감을 발휘해 관객과 공감대를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아시아로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105편이 증가한 700편이 접수됐으며,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를 힘있게 전하는 다큐멘터리 작품과 괴담, 전설처럼 장르 영화의 특징이 극대화된 작품 등 다양한 주제를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아울러 초청 부문은 파노라마, 해외, 릴레이 작가 초청전 총 3개로 나누어 진행됐다.

 

 

 

독립보행4 리뷰



독립보행4 파트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지닌 9개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라인업을 이루어, 각양각색의 표현 기법 아래 각종 이슈와 시대상을 아우르는 여행을 이끌었다. 손에 들린 조그마한 투표 용지가 이렇게 묵직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막중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한 작품만을 꼽기 유독 어려웠던 독립보행4 파트에 대한 몇가지 기록.

 

 

2021년+희망두배+청년+통장+신청서+서식.jpeg

 

 

You Can Fly!

박성배 / 2020 / 0:14:00 / 2D Computer, 3D Computer

 

우연히 아버지가 되어 아기 펭귄을 키우게 된 독수리 엘리의 이야기. 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기 펭귄을 차마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부둥부둥 기르게 된다. 그렇게 한껏 사랑받고 자란 아기 펭귄의 꿈은 엘리와 함께 하늘을 나는 것.

 

그러나 짧고 통통한 날개로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노력해도 날 수가 없었다. 시무룩한 아기 펭귄을 보던 엘리는 그를 움켜쥐더니 높은 산을 넘어 날아가 광활한 바다에 첨벙 하고 떨어뜨린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펭귄은 엘리를 마주본 채 바다 속을 하늘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다.

 

안그래도 귀여운 걸 보기만 하면 눈물 줄줄 흘리는 요즘이라, 아기 펭귄과 엘리가 바다와 하늘을 유영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얼굴에 홍수나게 만들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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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reotype

백나현, 백다현 / 2021 / 0:11:00 / 3D Computer

 

대지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을 따라 한쪽은 빨간색, 한쪽은 파란색으로 나뉜 세계. 두 색으로 나뉜 사람들은 서로를 배척하고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경계를 넘지 않게 만든다.

 

그러던 중 경계에 자라난 신목이 부러져 이를 잡아끌게 되는데, 빨강과 파랑 둘로 나뉜 줄로만 알았던 나무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며 본연의 색은 정해져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모든 존재는 본질의 변화 없이 그저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빨강 혹은 파랑으로 바뀔 뿐이었던 것이다.

 

추상적이고도 절제된 표현 방식이 주제를 참신하게 부각했으며, 스타일리시한 모션과 신비로운 음향 효과, 부족 간 대립을 형상화한 토속적 모티브와는 달리 사이버펑크를 연상시키는 이색적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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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거인

노경무 / 2021 / 0:06:48 / 2D Computer

 

눈물로 가득 찬 듯 거대한 파란 거인이 집을 부수고 뛰쳐나오며, 저 멀리 반짝이는 빛을 찾아 떠나면서 자신을 치유해가는 여정을 다룬다. 절벽 길을 오르고 강을 건너 다니며 거인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빛을 손에 넣기에 이른다.

 

알고 보니 멋드러진 별빛이 아닌, 바닥에 뒹구는 작은 유리조각의 빛이었지만 거인은 그 빛으로도 마음을 다독이기 충분했다. 이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자체가 그에게는 의미 있었던 것이다.

 

질감이 느껴지는 따스한 그림체와 담담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부드러운 스토리텔링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포스터 몇 장으로 뽑아 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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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로삐로

백미영 / 2021 / 0:09:35 / 2D Computer, Drawing

 

산에 사는 새 '삐로삐로'가 도시 속 꽃집에 사는 새 '달래'를 만나 풀어나가는 짧은 이야기. 삐로삐로는 날개가 다쳐 새장에 머무는 달래에게 용기를 주며 함께 산으로 날아가자고 응원한다. 손바닥만한 작은 새가 굳건히 결심하고 용기 내는 모습, 그리고 이들을 멀찍이 지켜보며 함께 고민하고 마음 떨려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뻔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감성적인 풍경과 작은 생물의 생동감을 부각하는 드로잉이 합쳐져 관람하는 시간 내내 마음을 따스하게 치유하는 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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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포스: 서울

안유진 / 2021 / 0:06:13 / 2D Computer

 

초능력 외계인 조직 '인터포스'의 페샤와 아이브가 갑작스레 터진 지하철 사고에 대응하는 이야기. 일반인과 초능력자가 한국 사회에서 친숙하게 섞여 살아가는 세계관이 흥미롭다. 초능력자를 다루는 현대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클리셰는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다혈질에 통통 튀는 페샤와 살짝 소심해보이는 아이브의 캐릭터 합도 맛나고, 막판에 슬쩍 나타났던 초능력 관련 기관의 국장이나 타 캐릭터 디자인, 성격 설정도 덕후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엇보다 모션이 박진감 넘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순삭.

 

그래서 언제 연재 시작하시나요?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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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지꽃 놀이

이아름새미나, 오현수 / 2021 / 0:07:16 / 2D Computer

 

독립보행4 파트 마지막을 장식한 가장 충격적인 작품. 5살 동갑내기 아름과 민주의 이야기다. 아름은 민주가 제안한 '잠지꽃 놀이'를 하러 민주네 집으로 따라가는데 놀면 놀수록 왠지 모르게 기묘한 기분이 든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는 아무것도 걸치치 않은 아랫도리. 중간중간 창 밖으로 민주 아빠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가며 끔찍한 추측을 사실로 바꾼다. 아동성폭력을 아이의 시선에서 풀어낸 것이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그림체, 웅얼거리는 순수한 아이의 음성과 대비되는 잔혹한 메세지가 머리를 둥 둥 치고 지나간다. 작품 후반부에 화려한 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상임에도 토기가 치미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언뜻 보면 상징적인 요소로 주제 의식에 필터를 입힌 것 같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 만큼 오히려 날 것에 가까운 충격을 전한다. 애니메이션이라서 더 임팩트 있었던 이야기.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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