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호함 위에서 부유하기, 은도희(eundohee) - Unforeseen [음반]

뜻하지 않은 사건과 감정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9.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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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입체적이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MBTI 테스트로 성격을 설명해도 누군가의 총체적인 모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속단하는 태도는 지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할 방법은 평면적이다. 말이나 글,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서는 입체적인 모습을 한 번에 포착할 수 없다. 평면적인 도구로 입체적인 모습을 분리하기는 어려우므로 자아의 표현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하며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입체적이어서 파악하기 어려운 건 타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다. 자아탐구의 끝은 명확한 결론보다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처럼 불확실함 자체로 귀결되기도 한다. 평면적 매개를 통한 자아탐구는 늘 부족함과 갈증이 찾아온다.

 

은도희(eundohee)의 첫 정규앨범인 'Unforeseen'의 앨범커버에는 조각난 초상이 담겨있다. 완성된 초상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까, 모호함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은도희의 음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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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은도희(eundohee)는 포크를 기반으로 록과 앰비언트적 요소를 섞은 음악을 선보인다. 은도희는 2018년 [Crumpled From]으로 데뷔해 여러 싱글과 EP로 활동을 이어오며 첫 정규앨범 [Unforeseen]을 발매했다.

 

은도희는 20대 시절 겪은 감정을 [Unforeseen]으로 풀어냈다고 밝혔다. 제목 그대로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은 시간의 서술이다. 은도희가 겪은 감정은 불확실함이나 모호함이었을까, 앨범 전반에는 뿌옇고 흰 안개가 낀 느낌이다. 가사부터 시작해 사운드와 앨범커버까지, [Unforeseen]은 강렬함과 선명함의 반대편에 위치한 모호함으로 향하고 있다.

 

첫 곡 'Uncertain'은 제목으로 알 수 있듯 불확실성에 대한 노래다. 가사는 명확하지 않고 그리움이나 기다림, 체념과 같은 몇 가지 진술만이 이어진다. 특히 '그것'이라는 추상적인 지칭을 사용해 상황을 설명하는데, 청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사적인 맥락은 모호함만을 강조한다.

 

'Uncertain'의 사운드는 앨범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노이즈가 필터처럼 들어오며 신디사이저는 몽롱하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포크 송라이팅에 기반한 앰비언트적인 접근과 공간감이 강조된 사운드는 나른한 보컬과 함께 곡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다음 트랙인 'Time'은 첫 곡에서 보여준 방향성을 발전시킨다. 드럼은 건조한 질감으로 느린 리듬을 밟아나가고, 일렉기타의 록적인 접근은 은도희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를 보여준다. 가사 또한 화자가 처한 상황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며 시간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Unforeseen]에는 말과 언어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은도희는 수록곡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부른 이유에 대해 익숙한 언어인 한국어보다 좀 더 의미 전달이 투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낯선 대상일 수록 각자의 해석이 줄어들기 때문일까,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표현들의 반복은 청자가 의미를 탐구도록 만든다.

 

언어에 대한 생각은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난다. 노래의 의미, 언어, 혹은 제목이 되기도 한다. 네 번째 트랙 'Les Augen'은 'the'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복수명사 'Les'와 'eyes'를 지칭하는 독일어 'Augen'을 조합한 단어다. 같은 제목의 연작 'Les Augen II'은 다른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밴드 활동을 염두에 두고 쓴 두 곡은 다른 트랙에 비해 록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이후 이어지는 '오래된 말'과 '혀'는 한국어 가사로 쓰였다. 두 곡은 제목부터 말과 언어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난다. 익숙한 언어이기에 가사의 구조와 의도는 선명하게 파악된다. '오래된 말'의 가사는 "우리가 뱉었던 말들 중 / 어느 하나 거짓된 것은 없는데"가 계속 반복된다. 미완의 형태로 끝나는 가사는 짙은 아쉬움과 미련이 느껴지며, 말과 언어를 통한 모종의 사건을 상상하게 한다.

 

신온유가 참여한 마지막 트랙 '파란 티셔츠'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옮겨 담은 듯한 노래다. 맥락 없이 제시되는 '그'의 행동들은 모호함만을 남기고 끝난다. 몽롱하고 느릿하게 떠나는 소리는 앨범의 끝을 장식하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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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에도 의도가 있을까? 이유가 있는 모호함이란 존재할까? 은도희의 [Unforeseen]은 의미를 의도적으로 가린듯한, 뾰족한 모서리를 제거한 듯한 앨범이다. 사운드는 빠르거나 강렬하지 않고 화려함이나 선명함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가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도 완결되지 않으며 추상적인 표현을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음악도 모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모호함 자체로 의미가 될 수 있다. 밀도 높은 뜨거운 메시지보다 차가운 공간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리듬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발견한다.

 

우리의 모습도 같지 않을까. 아무리 우리의 경험과 시간이 모호하다고 느껴져도 그 자체로 무의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모호한 경험도 반복적으로 비추고 생각하다 보면 잠깐 기댈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이 희뿌연 안개일지라도 은도희의 음악처럼 모호함 위에서 느리게 부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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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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