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의 기적 [사람]

드라마처럼 거창한 기적이 아닌 우리의 기적
글 입력 2021.09.09 20: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랜만에 드라마 몇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예전에 볼 때 재밌게 봤던 드라마,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옛날 드라마를 3일에 걸쳐 총 3편을 섭렵했다. 옛날에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을 이해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고 옛날에는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봤던 드라마를 드라마 한 편이 진행되는 1시간 중 30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기는 경험도 하게 됐다.

 

 

[꾸미기][크기변환]그녀는 예뻤다 드라마 장면.jpg


 

어렸을 때부터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영화는 너무 짧은 시간에 모든 내용이 진행되는 반면 여운이 길었기 때문이다. 짧은 한 두 시간 내내 나는 영화 속 주인공 사람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했는데 아직 나는 주인공을 보낼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결말이 나오고 상영시간이 끝나면 영화관이 밝아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게 어딘가 씁쓸했다.

 


[꾸미기][꾸미기][크기변환]영화관 좌석사진.jpg

 

 

반면에 드라마는 내가 있는 장소에서 적어도 16시간 넘게는 주인공의 인생을 볼 수 있으니까 결말이 나오고 “그동안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면 “그래. 많이 힘들었으니까 꼭 행복해야 해.”라며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어서 좋았다.

 

 

[꾸미기][크기변환]그동안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JPG

 

 

그리고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좋은 이유는 달콤한 착각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16시간 동안 나는 드라마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사는 집, 그 집의 분위기,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 그리고 드라마 내내 나오는 적절한 노래. 이 모든 것들이 적어도 16시간은 나와 함께하고 결말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행복이라면, 마치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달콤한 착각을 하곤 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 줄 알았다. 청춘드라마를 볼 때는 내가 그런 청춘을 보낼 줄 알았고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는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청춘드라마 속 주인공 나이일 때는 입시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고 로맨스 드라마 속 풋풋한 대학생 주인공 나이인 지금은 대학교 수업과 과제에 치이고 어쩌다 조별과제를 하면 거기서 복수극이나 찍고 있다.


이제는 드라마를 보면서 달콤한 착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지내온 잘생긴 남자애도 없고 마음이 아릴 만큼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 짓게 되는 첫사랑도 없다. 오히려 초등학생 때를 돌아보면 완전히 후회되는 일이 많고 중학생 때 역시 후회와 우정 조금, 고등학생 때는 우정은 없고 그저 입시에 점철됐다.


언젠가 한번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인생이 어떤 웹툰이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 인생이라면, 그래서 그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라면, 내 인생은 보는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작품일까, 아니면 지루해서 읽고 싶지 않은 작품일까?”


이 생각도 드라마 “W”를 보고 한 생각이었다. 그때는 그냥 “내 인생이 만화나 드라마면 내 인생 만든 작가는 망했네, 망했어. 이렇게 무미건조한 드라마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생각했었다.

 

 

[꾸미기][크기변환]드라마 더블유 사진.jpeg


 

솔직히 누구나 내 인생을 본다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로맨스소설을 쓰다가 중도 포기한 이유도 주인공에게서 소꿉친구, 외모, 능력을 빼고 평범함을 넣으니까 내용이 진행되지 않아 남자 주인공이 도저히 등장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포기했었으니까, 뭔가 극적이고 엄청나게 재밌는 절찬리에 판매 중인 그런 드라마나 만화 같은 인생은 아니다.


그러나 결이 달라서 반짝인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내 인생도 꽤 재밌는 인생이다. 초등학생 때 정말 심한 불면증을 겪었다. 그 당시는 침실 방을 언니랑 같이 쓸 때라 “옆에 누워있는 저 언니란 사람은 동생이 불러도 한번을 깨지 않고 잘 자는데 왜 나는 아무리 자려고 노력을 해도 잠이 안 오는 거야.”라고 매일 밤 생각했다. 매일 모두가 잠들지만 나만 자지 못하는 밤이 오는 게 무서웠다. 나만 다른 것 같고,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꾸미기][크기변환]어두운 밤 사진.jpg


 

그러나 지금은 잘 잔다. 물론 아예 불면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밤을 새워야 했던 초등학생 때보다 지금은 2시나 3시가 되면 잠이 온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가 뭐가 재미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의 꼬마 아이는 매일 밤 “나도 어두워지면 자고 싶다.”라고 하며 혼자 울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잠은 자니까 얼마나 기적인가.


그리고 또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까지 간절히 빌었던 소원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꿈이 뭐야?”였다. 내 주위 친구는 모두 “의사가 되고 싶어요. 남을 치료해주고 싶거든요.” 라든가 “교사가 되고 싶어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등의 대답을 했는데 나는 늘 항상 그 질문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꾸고 있는 꿈이 있는데 나만 꿈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러웠던 꼬마 아이는 집에 와서 엄마를 붙잡고 울며 말했었다. “엄마, 나는 왜 꿈이 없어? 다들 어디서 꿈을 찾는 거야? 왜 나는 못 찾아?”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다. 정말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 30살에 못 이루면 40살에, 그때도 못 이룬다면 50살에, 이때도 못 이룬다면 60,70,80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늦게 이룬다고 해도 죽기 전에 한번은 이루고 싶은 아주 간절한 꿈. 꿈이 없는 어린 내가 울었던 이유는 나는 반짝임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꼬마의 눈으로 본 꿈을 말하던 또래 친구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리는데 나는 꿈이 없으니까 반짝거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좀 더 크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초등학생 때 꼬마의 눈으로 봤던 꿈 꾸는 사람의 반짝임이 더 또렷하게 보여서 “나는 꿈이 없는데, 꿈이 있다면 좀 더 열정적일 수 있으려나. 어쩌면 꿈이 있는 인생도 있다면 꿈이 없는 인생도 있는 거 아닐까?”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지만, 정말 어려운 길이라는 걸, 그리고 돈을 적게 벌 길이라는 걸 알지만,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이 일을 하면 내가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꿈이 있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을 꼽으라면 난 망설임 없이 꿈이 생긴 일을 꼽을 것이다.


비록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하던 남자아이를 구해줬다가 전학이나 이민 때문에 헤어지고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그런 경험은 없어도 꿈이 없다가 생긴 경험은 있다. 웃긴 말이지만 스스로 꿈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반짝인다고 생각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토록 바라던 반짝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

 

 

[꾸미기][크기변환]반짝임 사진.jpg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 잠이 올 거라는 엄마의 말에 운동장을 2바퀴씩 뛰고 아무리 잠을 자려고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잠이 잘 온다는 말에 우유를 싫어해서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찬 우유 아니면 마시지 않던 내가 따뜻한 우유를 매일 밤 마시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양을 세면 잠이 올 거라는 주위의 말에 아무리 양을 세고 또 세도 잠은 오지 않았다. 나에게 밤에 잠을 자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꿈을 가져보겠다고 “우리 아이가 꼭 읽어야 하는 직업 30선” 같은 책을 만화책으로도 보고 소설책으로 봐도 꿈을 가질 수 없었다. 주위에 다른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된 방법을 물어봐 애들 말대로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다. 주위 사람이 가진 직업의 좋은 점을 들으면 생길 거라는 조언에 주위 사람 직업의 장점을 들어도 그래도 찾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걸 찾아보라는 조언에는 나오라는 꿈은 나오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잔뜩 나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밤에 잠도 자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다. 이건 기적이다. 이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기적이다. 이 일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조차 없었던 조금도 이룰 수 없던 내 소원이었다. 근데 지금 나는 그 소원을 모두 이뤘다. 드라마처럼 세상을 감동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드라마 마지막 화를 보고 나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도 저런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달콤한 착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저런 사람도 있으면 나 같은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어떻게 인생이 모두가 행복하겠어.”라고 스스로 되뇐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물론 알긴 안다.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화려하지도 극적인 어린 시절 경험이 있지도 않다는 걸 정말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오후 4시에 본 하늘이 정말 파랗고 구름은 솜사탕 같아서 “아, 왜 인상파가 햇빛을 보고 인상주의 사조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햇빛을 표현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지 알겠다.”라고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 8시에는 엄마가 오랜만에 사 오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강정을 먹으며 “맛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11시에는 내 취향대로 꾸민 침대에 누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누워 있다가 2시에는 잠이 들 거다.

 

 

[꾸미기][크기변환]KakaoTalk_20210909_200224226_03.jpg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 처음 일상의 행복을 느끼고 그걸 자각했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내가 겪는 일상의 행복이 남들 다 겪는 행복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비참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거대한 행복을 겪는데 나는 겨우 남들 다 겪는 일상의 행복을 겪어야 하느냐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보다 조금 더 자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남들 다 겪는 행복이지만 그걸 겪고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고 남들 다 겪는 행복을 겪는 방식도 남이 아닌 나의 방식이야. 그러므로 이 행복은, 이 감정은 내 거야.’


물론 지금도 드라마의 완벽하고 행복한 결말을 보면 부러워지는 건 사실이다. “와, 인생이 저러면 얼마나 재밌을까?”라고 마지막 화 장면을 보며 중얼거리기도 한다. 근데 느낌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행복한 인생이 부럽긴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을 향한 비난이 되지 않는 느낌을 혹시 아는가? 딱 그 느낌이다. “네 인생 멋지네.” 이렇게 말하고 그냥 다시 내 인생을 살 수 있는 그런 느낌.


그리고 어쩌면 만약에 내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꿈을 이룬다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기적이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일이 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초등학생 때 일기장에 “주위 사람을 사물에 비유하기”와 같은 주제를 정하고 “선생님은 화려한 색깔의 머리끈입니다. 왜냐하면, 눈에 띄게 저를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모님은 투명한 머리끈입니다. 왜냐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저를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따위의 글을 쓰던 초등학생이 다 커서 이런 글을 쓰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기적이다.

 

 

[꾸미기][크기변환]기적 사진.jpg

 

 

혹시 과거의 나처럼 남의 기준이나 화려한 드라마나 만화 속 기준을 내세우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라고. 이루고 싶은 꿈을 꾸게 되고 밤에 침대에 누워 이불이 얼마나 포근한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적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한번 태어난 인생 모양새 나게, 멋지게는 아니어도 하고 싶은 거 하나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131.jpg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영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1966)


 

그러면 그렇게 포기하지 않으면 드라마처럼 거대한 행복은 아니어도 일상처럼 잔잔한 행복은 계속, 자주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세연.jpg

 

 

[이세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2823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0.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