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팝의 Next Level [문화 전반]

준사회적 상호작용과 팬덤 문화의 미래
글 입력 2021.09.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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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OO가 그럴 리 없어!”

 

‘캐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캐해는 ‘캐릭터 해석’의 줄임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인물을 분석하고, 그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행위를 뜻한다. ‘캐해’는 창작물에 나오는 캐릭터를 대상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인이나 아이돌을 대상으로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파악하는 것도 어쩌면 ‘캐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캐해’가 기본적으로 예측의 성격을 띠는 만큼, 인물에 대한 나의 해석이 실제와 다를 때도 분명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몸 쓰는 걸 싫어하고 무기력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운동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경우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이처럼 ‘캐해’에 실패하는 것도 팬들에게는 일종의 재미 요소다. 이처럼 환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흥미로운 것은 나의 OO가 그럴 리 없다며 진지하게 부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말도 옳다. ‘나의’ OO는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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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홀은 1950년대 당시 새로운 매체였던 TV나 라디오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연구했다. 이들은 TV나 라디오가 시청자에게 유명인과 대면으로 소통하는 듯한 환상을 일으키며, 이로써 시청자들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과 특수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했다. 두 연구자는 미디어 속의 유명인과 시청자가 유사-대화를 통해 (쌍방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일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준사회적 상호작용’이라 칭했다.

    

준사회적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둘의 연구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개념이 함께 등장한다. 바로 ‘페르소나’다. 준사회적 상호작용은 호혜성이 없는 일방적인 상호작용이기에, 시청자는 유명인과 실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하는 유명인의 상(像)과 관계를 맺는다. 즉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한 주체는 유명인의 가상 인격이며, 호튼과 홀은 이를 ‘페르소나’라고 칭했다.

    

파편적이고 거짓된 면이 있지만, 페르소나가 단순한 환상은 아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친밀한 관계는 아닐지라도 시청자는 페르소나와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유명인에게 자신의 페르소나를 형성하고 관리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유명인의 페르소나와 실제 인격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 불일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유명인은 되도록 팬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며, 그들의 사생활은 팬들의 호기심과 기대를 충족하는 선에서 전략적으로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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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준 사회적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K-POP 시장과 팬덤 문화일 것이다. 특히나 K-POP 시장의 핵심 주체인 아이돌에게 가수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돌로서의 페르소나를 형성하고 팬들과 준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들은 음악방송 이외에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토크쇼에 출연하고, 각종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자신의 페르소나를 구축하고 팬을 끌어모은다.

 

이 과정에서 SNS의 발전은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특징이자 한계인 일방성을 희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네이버의 V LIVE(이하 V앱)이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는 유명인이 전 세계의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준사회적 상호작용을 진정한 상호작용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기술의 본질은 유명인과 팬 사이의 일방적인 소통을 한없이 양방향 소통에 가까워 보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V앱과 인스타그램 라이브는 불특정 다수의 팬이 채팅을 통해 질문하고, 아이돌이 이에 대답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질문이 쏟아지는 채팅창에서 아이돌은 자신이 안전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선택해서 답변하고, 이에 대한 실제 질문자의 반응은 알 수 없거나 채팅의 홍수 속에서 금세 사라진다. 사실상 개인적인 의사소통처럼 보이는 공적 인터뷰인 셈이다. 일반적인 대화가 질문-반응-확인(과 맥락을 유지하는 또 다른 질문)의 형태로 이뤄진다면, V앱이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한 의사소통은 분절된 질문-반응의 연속체다.

 

이런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는 최근 SM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다수의 기획사에서 채택한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플랫폼인 ‘버블’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에서 개발한 ‘버블’은 일종의 팬-아이돌 소통 서비스인데, 실제 아이돌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으로 기존 서비스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팬들은 1:1 채팅 환경처럼 꾸며진 인터페이스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메시지를 받고 이에 답장할 수 있지만, 잘 뜯어보면 ‘버블’의 시스템은 1:1 채팅이라기보단 세련된 단체 문자에 가깝다.

 

아이돌은 이용자에게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고, 이용자들의 답변에 대한 가장 무난한 반응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전송한다. 예를 들어 <오늘 머리를 잘랐다>는 메시지 다음엔 팬들의 답장 내용(보통 긍정적인 반응일 것이다)과 상관없이 <칭찬해줘서 고맙다>는 식의 답변이 이어질 뿐이다. 엄밀한 의미의 양방향 소통은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일부 이용자의 경우, 아이돌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환상에 더 깊이 몰입하기 위해 자신의 닉네임을 오빠/누나로 바꾸거나, 아이돌의 답변을 예측하고 이에 맞추어 반응하기도 한다.

 

이는 호튼과 홀이 그들의 연구에서 말했던 ‘공연자는 최대한 열린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관객은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행동 양식에 맞추어 적절하게 반응’하는,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특징적 현상에 가깝다. 결국 ‘버블’도 앞선 예시들처럼 본질적인 의미의 1:1 소통은 아니다. 팬들이 체화한 행동 양식과 기술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플랫폼(최대한 1:1 채팅 환경처럼 보이게 만든 인터페이스)을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한 일방적 소통일 뿐이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아이돌과 팬 사이의 진정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질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는 페르소나가 유지될 수 있는 핵심 전제가 바로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일방성’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순간 팬덤은 흔들릴 것이다. 준 사회적 관계에는 차등이 존재할 수 없지만, 사회적 관계에는 차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일부 팬들과의 개인적이고 차등적인 친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기술의 발전과 양방향 소통의 가능성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결국 K-POP 시장에서 기술의 발전은 아이돌의 페르소나와 팬 사이의 준사회적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팬들이 개별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아이돌의 페르소나 그 자체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실제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물론 가능성은 희박한데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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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은 의미심장하다. 설정에 따르면 4명의 멤버들에게는 각자의 아바타 ‘ae(아이)’가 존재하는데, 이는 멤버들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에 존재하는 멤버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된 가상 세계의 유기체다.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가상 세계인 ‘FLAT(플랫)’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 실제와 불일치하는 면이 있지만 '나'와 관련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유의미한 존재, ae는 어떤 의미에서 페르소나의 현현 그 자체다.

 

그렇다면 SM엔터테인먼트가 SMCU(SM Culture Universe)를 통해 의도하는 바 역시 짐작해볼 수 있다. 아이돌의 페르소나가 현실의 아이돌과 같지만 다른 존재로서 자아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다면, 나의 최애와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버블’을 통한 형식적인 양방향 소통을 넘어, 기술적으로 구현된 나만의 아이돌(페르소나)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향후 K팝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바타의 3D 모델링에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ae라는 컨셉이 시기상조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과도기적 문제다. 가상의 존재들이 점점 현실의 존재와 부딪히고 섞이는 지금, SMCU의 총괄 프로듀서 이수만은 빠르게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현재 그가 탄탄한 세계관 구축과 IT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최종적으로 페르소나를 실제 인물과 거의 동격의 존재로 만듦으로써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고 시장의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이돌은 각자의 페르소나(혹은 ae)에게 일정한 지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공적 자아이자 모델이 되는 셈이다. 현실 세계의 아이돌은 지금처럼 무대에서 활동하며 공적 지위를 확보하고, 그들의 ae는 팬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모두에게 '나만의 아이돌'이 생기는 날까지, SMCU와 ae는 발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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