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 그리고 함께 나아갈 때

글 입력 2021.08.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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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보다 1년이 연기되었고, 그조차도 무산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후 숱한 우려 속에서 위태롭게 막을 올렸다. 준비 과정에 얽힌 불만과 코로나의 위험 등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으나 어김없이 선수들은 감동적인 경기를 펼쳐주었고 세계인은 열광했다. 국내 반응도 뜨거웠다. 올림픽 기간에 한국 트위터에 올라온 올림픽 관련 게시물은 자그마치 5천만 건에 달한다. 각국의 스포츠맨십이 한데 모여 부딪치고 타오르는 순간의 감동은 여전했다. 어느 때보다도 들뜬 열기로 가득한 여름의 한복판에서, 도쿄는 곧 개최될 패럴림픽을 앞두고 감동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더 빨리(faster), 더 높게(higher), 더 강하게(stronger)’의 세 구로 이루어진 올림픽 표어에는 이번부터 ‘함께(together)’가 붙기 시작했다. 메달 개수에 울고 웃는 결과주의와 경쟁주의에서 탈피하여,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 그 자체에 의의를 두며 스포츠를 통한 화합과 이해를 도모하는 올림픽의 근본적 신조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의지가 돋보인다. 권력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지만, 공고한 국가주의적 이념 속에서 정치적 입장에 기반을 둔 결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올림픽의 모순점에 있어서 꼭 필요한 제언이기도 하다. 공동체 정신의 추구 의지를 더한 표어는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올림픽의 기치가 구체화되고 있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달라진 시대를 방증하듯 한국의 국가대표들은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 그 자체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 대다수 역시 결과에 상관없이 국가를 대표하여 땀 흘린 이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메달 색보다는 긴장하고, 집중하며, 도약하고, 목표를 향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랜만에 손을 잡은 사람들은 세계인의 축제를 가로지르는 범사회적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도쿄 올림픽의 가장 중점적인 사안 중 하나였던 ‘건강한 올림픽’을 위한 고민이 ‘건강한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공간에서 발화되었다. 선수들의 경기에서, 혹은 경기를 둘러싼 반응에서 발견되었고, 경기에 투영된 사회의 흐름에서 목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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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는 단연코 도쿄 올림픽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올림픽에 진출한 국가대표 팀은 세계 랭킹 상위권을 차지하는 강팀들과 겨루어 4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수많은 ‘배구 입덕’을 이뤄냈다. 여자 배구 팀이 선사한 기쁨은 비단 결과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단체 경기로 이루어지는 배구의 묘미는 팀워크에 있었다. 선수들은 전설적인 주장 김연경 선수를 필두로 흐트러지지 않는 팀플레이를 보여주며 소중한 한 점 한 점을 획득해나갔다. 실점을 하더라도 좌절하기보단 서로를 토닥이고 어떤 상대와 만나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실패도 탓하지 않고 맞부딪치는 상대의 목표 역시 존중하는 공동체 정신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여자 배구의 ‘함께’가 준 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국가와 협회 등 거대한 공동체의 관심으로부터는 멀었기 때문이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오랜 무관심과 부족한 지원으로 인한 여자 배구의 열악한 훈련 환경은 이미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남자 배구보다 여자 배구의 샐러리 캡(팀 연봉 총액 상한제)이 턱없이 낮은 것 역시 부당한 차별이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운동가다운 정신이나 태도’를 이르는 스포츠맨십은 올림픽 이전에 한국 배구 시스템에서부터 먼저 실현되어야 했다. 선수들은 목소리를 냈고, 운동선수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배구를 지켰다. 이러한 움직임 끝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개선된 환경에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 배구가 만들어낸 공동체와 함께 여자 배구가 변화시킨 공동체 역시 기억해야 한다. 스포츠라는 문화의 건강한 지속을 위해서는 ‘함께’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것이 가져올 변화의 파동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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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의 건강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특히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발달을 도모한다는 근대 올림픽의 목적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미국의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는 지난 올림픽 4관왕의 영광과 함께 개회 이전부터 온 국민의 주목을 받는 기대주였으나 정신 건강에 이상을 느껴 단체전 중 단 한 종목만 출전하고 기권했다. 정신적 자질 역시 스포츠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밝히며 메달 색보다 건강을 향하는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냈다.

 

시몬 바일스의 용기 있는 선택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으나 그 영향력은 결코 개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음’의 선언은 동료 선수들의 건강과 더불어 스포츠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대변인은 시몬 바일스의 결정으로 인해 선수들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일반적인 정신 건강 문제 또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앞으로 선수들은 더욱 다양한 건강과 안전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결과를 떠나서도 성립하는 스포츠의 진가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몬 바일스의 기권 선언 이후 그를 향해 쏟아졌던 응원과 찬사가 보여주듯 일반 시민 역시 정신 건강의 중요성과 경쟁에 속박되지 않은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이 지니는 가치를 체감했다. 건강한 공동체가 건강한 개인의 삶을 보장하듯이, 개인의 건강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스포츠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이자 토론장으로 기능하며 건강을 둘러싼 논의의 매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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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이목이 모이는 올림픽은 이처럼 단순히 경기만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을 반영하거나 형성하며 더 나은 미래상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여성 선수의 참여가 49%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도쿄 올림픽은 과거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스포츠 문화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여성 선수라면 남성 선수가 입는 반바지가 아닌 비키니를 착용해야 하는 등 일부 종목에서 불필요하게 작용했던 차별적 규제를 지양하고 중계 시 선수의 신체에 과도하게 화면의 초점을 맞추지 않게 하는 등 성적 대상화의 철폐를 위한 노력을 구체화했다. 차별적·대상화적 시선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주체로 존중받는 건강한 공동체를 향한 움직임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특정 선수를 향해 이뤄졌던 온라인상의 성차별적 공격은 한국에서 만연한 반여성주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선수의 짧은 머리와 출신 대학을 근거로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폭력적 여론이 번진 것과 언론이 이를 ‘젠더 갈등’이라는 헤드라인으로 해당 현상에 반영된 혐오의 맥락을 지운 채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은 차별주의자와 무책임한 언론이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었던 반여성주의 백래시(backlash)의 연장선상에 있다. 같은 현상을 두고 BBC, 로이터통신, AFP통신 등의 외신이 ‘사이버 학대(cyber abuse)’, ‘성차별적 학대(sexist abuse)’라고 표현하며 폭력의 맥락을 명시한 것과는 상반된다. 터무니없는 공격이 사회적 담론 속에서 지적받자 국내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비판과 성찰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공론화를 통해 사람들은 반여성주의의 실태를 재고했고 이것이 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임을 인식했다. 폭력이 일순간에 해결될 수는 없어도, 갈등이 아니라 폭력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더욱 적극적인 담론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곳곳에 있는 차별의 문제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정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KBS에서 방영한 ‘다큐 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국가대표’는 한국의 여성 운동 선수들이 경험하는 불평등 문제를 다루며 스포츠와 관련한 사회적 담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다큐멘터리는 같은 종목이라도 여성 경기는 남성 경기보다 적은 상금을 받는 오래된 관습, 여자 팀이 메달을 더 많이 획득했음에도 지도자는 대부분 남성인 한국 핸드볼의 현실, 여자 팀에게만 붙는 ‘미녀’라는 수식어 등을 지적하며 단순히 축제로만 즐길 수 없는 스포츠계의 이면을 드러냈다. 올림픽이 끝나도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올림픽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들뜬 분위기 속 잊히는 불편한 현실이 타파되어야 모두에게 공평한 룰이 비로소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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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근대 올림픽은 현재 지향하는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상당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출발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여자가 운동을 하는 것은 추하고 상스럽다고 했고, 초기 올림픽은 실제로 여성의 참여를 제한한 채 실시되기도 했다. 여전히 올림픽 현장은 배제적인 내셔널리즘과 국력 과시의 현장이 되기도 하며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혹 역시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모두에게 즐거운 축제라고 단정하기에는 매회 유쾌하지 못한 잡음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통해 확인한 변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공동체를 이루어 문제를 비판하고 더 나은 곳으로 함께 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일 수 없는 시대에서 공동체라는 명목으로 타인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경험은 소중했다. 승패에 아예 무관심할 순 없었지만, 그보다는 선수들이 뛰고 땀 흘리며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하고 박수를 보냈다. 저절로 찾아온 변화일까? 스포츠 문화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 선수들이 있었고, 부당함에 참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이뤄낸 건강한 공동체가 녹록지 않은 과정 중에 있는 모두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 여름은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 그리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다음 차례다. 스포츠로 매개된 건강한 공동체를 향한 고민을 ‘함께’ 이어나갈 때다.

 

 

참고 기사


‘도쿄올림픽: '내 정신 건강을 챙겨야 했다'...'체조 여제' 바일스 기권’, BBC NEWS, 2021. 7. 28.

‘도쿄올림픽: 시몬 바일스가 체육계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BBC NEWS, 2021. 7. 29.

‘도쿄올림픽, 여성 선수 성적 대상화 금지..."클로즈업 안할 것"’, 한국경제TV, 2021. 7. 28.

강석영, ‘시대착오적 안산 공격에 외신은 ‘폭력’, 국내 언론은 ‘갈등’‘, 민중의소리, 2021. 7. 30.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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