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나는 소녀들을 기다리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8.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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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어린 소녀들이 잔뜩 나오는 장면을 마주했다.

 

그 프로그램은 걸스플래닛 999의 1화였다. 새벽 1시가 넘도록 그 프로그램을 모두 본 나는 2화의 정규방송 시간을 기다려 보는 사람이 되었다. 도대체 왜 나는 소녀들을 기다리는 걸까?

 

나는 본래 아이돌을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릴 때도 좋아하긴 했지만 덕질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요 몇 년 사이에 굉장히 유명했던 프로듀스 101 시즌 1 남자 아이돌 편은 전혀 보지 않았고, 프로듀스 101 시즌 2 여자 아이돌 편 역시 보지 않았다. 이 두 프로그램으로 우승한 아이들은 워너원과 아이오아이가 되었고 요즘 한참 잘나가는 가수가 되어있다.

 

그러던 내가 아주 우연히 아이돌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미스 나인이 데뷔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이후 프로듀스 101 시즌 3라고 부를 수 있는 프로듀스 48을 다시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이돌 학교에서 내가 애정 하던 참가자가 프로듀스 48에 다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 참가자는 현재 아이즈원의 멤버가 되어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전화 투표, 문자 투표, 온라인 투표를 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알게 된 계기였다. 응원하는 참가자가 생긴다는 건 결국 팬심, 애정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 참가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보고 응원해 주고 싶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마음을 짓밟은 M-net pd의 조작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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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걸스플래닛 999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어린 소녀들이 한국에서의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어 모였다. 한 국가당 33명의 소녀들이 있다. 그리고 1개의 셀(그룹)은 한국 소녀, 중국 소녀, 일본 소녀로 총 3명씩 구성되어 있다. 잔인하게도 1개의 셀로 만들어진 3명의 조합은 함께 합격하거나 모두 탈락하게 된다.

 

아이돌은 노래도 춤도 잘해야 하지만 얼굴도 예뻐야 하고 끼도 있어야 한다. 덧붙여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투표를 하게 되므로 3개 국가에서 많은 응원을 받아야 하는 것까지 추가된다.

 

과거 내가 아이돌을 좋아하던 시절의 아이돌들은 대부분 80-90년대 생이었는데 걸스플래닛 999에 나오는 대부분의 소녀들은 2000년생 언저리 나이이다. 이 15살 - 23살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감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다. TV에 나오는 아이돌이 2002년 월드컵 보다 더 늦게 태어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2002년 월드컵을 광화문 가서 응원했다)

 

*

 

첫 화에서 보게 된 이 99명의 소녀들은 각양 각색이었다.

 

노래를 잘하는 소녀, 춤을 잘 추는 소녀, 랩을 잘하는 소녀, 얼굴이 예쁜 소녀, 귀여운 소녀, 이미 가수로 데뷔했던 소녀, 연습생이었던 소녀, 연기자인 소녀, 쌍둥이 소녀, 이 수많은 어린 소녀들은 서바이벌 프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내놓는다.

 

이 어린 소녀들이 가진 것들은 폭발적이다. 수없이 노력하고 수없이 연습하고 원하고 바라는 것을 위한 그들의 시간이 프로그램에서 나타난다. K-POP 걸그룹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연습해 왔던 한국 연습생 소녀들은 물론이고 한국어도 잘 못하면서 그저 한국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어린 나이에 이 타지에 와서 서바이벌에 참가하고 있는 중국, 일본 소녀들까지 99명의 소녀를 보고 있으면 예쁘기도 하고 빛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지만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 소녀들은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잣대에 의해 살아남거나 탈락하게 되겠지.

 

이 프로젝트 속에서 굉장한 성장을 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있었는지도 모르게 금방 탈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번 만나버린 99명의 소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성장에 대한 호기심은 이미 나에게 생겨버렸다.

 

걸스플래닛 999의 홈페이지에서 이미 눈에 띄었던 소녀들의 프로필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처음 참가하기 위해 찍은 자기소개 영상을 보면서 귀여워하기도 한다. 어떤 소녀가 예쁜가, 어떤 소녀가 특색 있나, 어떤 소녀가 끼가 있나, 나는 어떤 소녀에게 더 애정이 가나, 나중에 누구에게 소중한 한 표를 전할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 내가 낯설다.

 

하지만 반짝반짝하는 어린 소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결국 정해진 시간에 나를 TV 앞에 앉혀 놓을 것이다. (이번엔 조작 사건 없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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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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