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52시간과 120시간
글 입력 2021.08.0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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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차기 대권 주자가 주 120시간 근무를 이야기했다. 120시간 바짝 일하고 쉬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몇 년 전 출근을 하기 위해 마약을 한 일본의 엘리트 이야기가 국내에 뉴스로 전해졌다. 한 달 평균 150~300시간의 잔업을 하다가 부서 이동으로 잔업 100시간 전후로 줄어들면서 우울증이 발병했고,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출근하기 위해 각성효과를 얻으려고 메스암페타민에 손을 대고 만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한 국내의 네티즌이 일본에서 한 달 잔업 300시간이 나오려면 일주일에 하루 쉰다는 가정하에 하루 17시간의 근무시간이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에 하루 쉰다는 가정 에 하루 20시간을 근무해야 주 120시간이 나온다.

 

120시간.jpg


어린 여공들이 주 98시간, 하루 14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때,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한 1970년의 11월.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주 120시간 근무가 법조인 출신 입에서 나오는 2021년의 7월.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직업을 얻고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어두운 밤 야경이 되어주는 수많은 하얀 빛은 누군가의 야근이라는 것. 집 근처 어떤 건물 특정 층이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걸 알았을 때, 누군가가 집에 돌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건물의 모든 불이 꺼지는 날이 1년의 몇 없다는 걸 내가 근로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야경.jpg


 

마감이 있어서 바쁠 때는 매일 같이 철야를 해야 하는 업계도 있다. 집에서 정말 눈만 붙이고 나오기 위한 퇴근, 출퇴근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회사에 있는 접이식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다.

 

분명 회사에서 몸이 빠져나왔는데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든가 주말에도 습관적으로 업무를 체크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 주변 사람의 걱정이나 측은한 시선을 받게 된다.

 

월급이 최저에 가깝거나 그조차도 챙겨주지 않는 경우엔 더욱 더 그렇다. 악덕 고용주들은 직원을 한 번 쥐어짜 봤더니 안 될 일이 되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반복하려고 든다. 처음엔 고생했다는 말과 격려가 있었지만, 나중엔 쥐어 짜내는 게 기본값이 된다. 많은 사람이 120시간 근무에 분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나는 회사를 고를 때 근무시간이 9 to 6가 아닌 곳은 거른다. 근무시간이 그보다 긴 회사가 직원들에게 좋은 회사일 수 없다는 경험 때문이다. 직무 특성상 야근이 없을 수 없는데 상황 때문에 야근하는 것과 회사가 긴 근무시간을 강요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나를 포함, 주변에 매주 혹은 격주 금요일 단축 근무를 하는 케이스가 몇 있다. 처음 직장을 구했던 몇 년 전에는 ‘어디 그런 곳이 있다더라’하는 머나먼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격주 주4일제인데, 아직까지 주4일제는 내 주변에서 내가 최초이자 유일이다.


물론 금요일이라고 모두 1시간 일찍 퇴근하지 않고, 일이 많아서 철야하는 직원도 있고, 야근이 일상화된 팀이나 직원도 있다. 그렇지만 쉴 수 있는 환경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때론 보상처럼 돌아온다. 조금 늘어난 저녁, 하루 늘어난 휴식은 근로자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을 찾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 될 수 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몇 년 전에 어떤 기사를 봤다. 수십 년 전,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희생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무환경은 열악하다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근로자의 건강은 고려하지도 않은 120시간 근무 발언이 화제가 되어 당사자의 해명이 나왔지만, 누구도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의 이해도 받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이전 직장을 다닐 때 여름이 되면 길게 휴가를 보내는 유럽 거래처가 부러웠다. 본사 사무실부터 해외 공장까지 몇 주씩 모두 문을 닫고 쉬는 여름. 유일하게 쉬지 않는 공장이 한 군데 있었는데,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2~3주씩 휴가를 가지더라도 생산량이 평소의 80% 정도가 나오기 때문에 쉬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일하는 중간에 티타임 챙기고 급한 일이 있더라도 근무시간이 끝났으니 퇴근하는 여유로운 모습이 낯설었는데, 언젠가 대량 생산 건으로 일부 라인의 생산이 지연된다는 공문을 받고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나라였으면 낮밤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려 타이트한 납기를 맞췄을 텐데 저기는 매일 소화할 양을 정해두고 살고 있었다. 사람을 쥐어짜거나 갈아 넣지 않았다.


내 근로 환경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어쩌다 우연히 지금의 사용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근로 환경은 내가 만들어낼 수도, 얻어낼 수도 없고, 제공되어야만 누릴 수 있다. 제일 많이 영향을 받는데 주어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나는 내 주변의 유일한 케이스로 남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변인들의 우연과 행운을 기원하는 것밖에 없다. 제공되지 않은 걸 바라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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