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의 아틀리에 [미술]

작품이 탄생하는 공간
글 입력 2021.07.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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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은 그 사람을 닮고, 또 담는다. 어질러진 책상이나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단색의 침구나 엽서와 사진으로 도배된 벽, 곳곳에 놓인 식물들이나 장식장 위 소품들은 그 공간의 주인에 대해 알려주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작업실 겸 집 또한 그들의 성격, 취향, 관심사를 보여준다. 작업실 공간은 그들의 작업 성격과 비슷하기도 하고, 공간이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살아온 시간, 작업을 수행해 온 시간을 말해준다. 예술가 개개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들의 아틀리에. 매일 보고 겪고 느낀 비물질의 어떤 것이 작품이라는 물질로 재탄생한 그 장소를 보면 삶, 작품, 공간 사이의 어떤 필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새삼스레 느끼는 친밀감, 동시에 다른 이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는 은밀한 짜릿함을 경험 하듯이 예술가의 아틀리에를 구경하며 색다른 방식으로 작품과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기 바란다. 친구를 집에 초대하듯 예술가의 작업실에 당신을 초대한다.

 

 

 

예술가의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제일 먼저, 예술가들의 예술가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작업실이다. 칸 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 칸(Cannes)에 위치한 피카소의 스튜디오 '빌라 캘리포니아(villa La California)'는 그가 두번째 부인인 재클린(Jacqueline Roque)과 함께 1955년부터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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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스튜디오에서 찍은 피카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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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Femme accroupie (Jacqueline), 1954

 

 

사진 속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의와 하의, 신발을 빨간색으로 맞춰입고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피카소, 그리고 널찍한 공간과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의 벽과 아치다.

 

'예술가의 작업실'하면 흔히 상상하는 이미지처럼 작품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사진의 맨 오른쪽에서 피카소가 1954년에 그린 재클린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고, 왼쪽 아래 책상에 놓인 붉은 색과 흰색의 항아리, 'Oiseaux et Poissons' 라는 이름의 꽃병을 찾을 수 있다. 

 

피카소는 1940년대 후반부터 세라믹 작업을 시작했는데, 집 안 곳곳에 놓여진 세라믹 꽃병과 접시들이 그의 최근 관심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책상 앞쪽에 모아져있는 편지봉투들과 왼쪽 보드에 붙여놓은 그림들은 그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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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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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The Studio, 1955

 

 

피카소를 지나쳐 뒤쪽으로 더 가보면, 이젤 위에 도판처럼 보이는 '아비뇽의 처녀들'도 확인할 수 있다. 뒤에 보이는 역시 아르누보 형식의 창문을 통해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1955년, 피카소는 아마 저 커다란 창문 앞에서 The Studio를 그린 것 같다. 그림 속 대낮의 노란 빛, 싱그러운 야자수, 동글동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이 창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사진에서도, 그림에서도 나타나듯 피카소의 작업실은 예술가의 공간답게 복잡하지만 눈을 즐겁게한다. 

 

The Studio에 대해 덧붙이자면, 피카소는 1955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총 12번 그렸는데, 이는 1년 전인 1954년에 생을 마감한 앙리 마티스에 대한 애도와 기념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피카소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마티스가 가장 즐겨 그렸던 소재가 바로 본인의 스튜디오였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영혼, 프리다 칼로


 

꼬요아깐(Coyoacan) 혹은 블루 하우스(The Blue House/La Casa Azul)로 불리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집은 그녀가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후에는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살았던 곳으로,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녀의 소망대로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 되었다.

 

멕시코의 하늘을 닮은 파란 벽과 무성한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서 프리다 칼로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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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요아깐, 현재 프리다 칼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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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요아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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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꼬요아깐에서의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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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올멕 조각상과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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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The Two Fridas), 1939

 

 

스튜디오 내부 사진 속 이젤 앞에 앉아있는 프리다 칼로 뒤로 큰 액자에 담긴 '두 명의 프리다(The Two Fridas)' 그림이 보인다. 유럽식 드레스를 입은 왼쪽 칼로와 멕시코 전통 의상인 테우아나를 입은 오른쪽 칼로는 연결된 혈관을 통해 피를 공유하고 손을 맞잡고 있는데, 이 그림에서 프리다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정체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두 명의 프리다' 아래로 칼로의 사진이 토속적인 장식의 액자 속에 걸려있고 사진 속 그녀도 이젤 앞에 앉은 칼로처럼 멕시코 의상인 테우아나를 입고 있다.

 

장식장에 놓인 작은 조각상들은 올멕 조각상(Olmec figurine)으로, 올멕 문명은 메소아메리카의 최초의 문명 중 하나다. 멕시코의 선조 문명인 올멕 문명의 조각은 테우아나 드레스처럼 프리다 칼로 자신의 기원이 멕시코임을 확실히 하는 오브제다. 멕시코를 나타내는 그림과 사물로 채워진 그녀의 공간은 그녀가 멕시코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아주 가까웠고, 그녀의 정체성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프리다 칼로 스스로 말했듯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자화상을 여러 점 남겼다. 멕시코를 닮은 작업실에 앉아 멕시코 드레스를 입고선 끊임없이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들을 탐구했을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자연과 더 가까이,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30년간 뉴욕에 살다 1929년부터 매년 여름을 뉴 멕시코의 산타페(Santa Fe)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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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페 고스트 랜치에 위치한 조지아 오키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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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랜치의 집에서 보이는 풍경과 조지아 오키프

 

고스트 랜치 오키프의 집에서 보이는 풍경

 

 

산타페 고스트 랜치(Ghost Ranch)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은 넓은 통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시야가 확 트인다. 황량한 사막과 멀리 '세로 페데르날(Cerro Pedernal)' 산이 보인다.

 

'사막뷰'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녀는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림으로 여러 점 남겼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경치를 언제든 담을 수 있도록 물감과 붓이 창문 앞에 늘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들은 그 구도는 같지만 색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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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Pedernal, 19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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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My Front Yard, Summer,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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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랜치 집에서의 조지아 오키프

 

 

그녀의 아틀리에를 사진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림 속 풍경이 집 앞의 경치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매일 아침 커튼을 열고 마주할 풍경과 그 앞에서 붓질을 하는 조지아 오키프를 상상해본다.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땅과 풀과 산과 하늘, 그리고 남겨진 오키프의 그림들을 보면 전율이 흐른다.

 

 

 

하늘과 땅 사이 문을 만들어내는, 윤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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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 속 윤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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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청다색(Umber-Blue), 1978

  

 

1974년 10월,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 타계 직후 자신의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의 오른쪽에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그 옆에는 윤형근의 당시 신작이 걸려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김환기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나란히 걸어두었을까? 스승을 따라, 혹은 스승을 넘어 위대한 화가가 되리라 다짐했을까?

 

김환기 그림 아래 벤치에는 물감 통이 올려져있고 벽에는 윤형근의 작품 여러점이 기대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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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의 서교동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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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Burnt Umber_Ultramarine, 1996

 

 

윤형근 본인이 설계한 서교동의 작업실. 1983년부터 생을 마감한 2007년까지 24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그의 성격과 취향이 많이 배어있을 수밖에 없다.

 

고가구, 도자기와 함께 본인의 작은 작품 몇 점을 걸어놓았다. 어둡거나 무채색의 물건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색을 띄고있는 붉은 상자같은 선반은 서구 미니멀리즘 작가인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의 작품이다. 길지않은 만남을 가졌던 도널드 저드와 윤형근은 서로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만큼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렸다.

 

윤형근의 작품이 1991년 저드와의 만남 이후 더욱 단순한 화면 구성으로 변한 것도 그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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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회고전》전시 전경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윤형근 회고전》 전시장 한쪽에 윤형근 작업실이 구현되었다. 사진에서처럼 전시장 바닥은 작가의 작업실 바닥을 1대1 스케일로 재현한 것이었다. 당시 전시 디자인을 맡았던 김용주 디자이너는 윤형근의 작업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바닥에서 슬픈 느낌을 받았다며 “끈적한 오일을 머금은 바닥에서 작품이 이야기해주지 않은 외롭고 처절한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인생의 여러 고비, 그 고비들을 넘기며 쌓아온 작업, 붓질 한 번과 작품 하나마다 바닥에 켜켜이 쌓였을 물감들이 윤형근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윤형근이라는 작가의 인생을 보여준다.

 

 

 

코스모폴리탄 그러나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화가, 김환기


 

김환기는 서울, 동경, 파리, 뉴욕에 살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국가를 넘나들며 작업하면서도 작가 본인이 '한국적인 것', '한국의 미'라고 여기는 것들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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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파리 생루이 작업실에서의 김환기

 

 

사진은 파리 생루이 아틀리에에서의 김환기 모습이다. '한국적'인 그림과 글씨가 공간을 채우고 있기에, 이곳이 파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벽에 걸린 글씨는 20세기의 대표 서예가 손재형이 성공을 축원하며 써준 ‘부귀쌍수’다. '부하고 귀한 것이 오랫동안 이어지라'는 그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벽에 붙여 놓은 듯 하다.

 

세 점의 청색 그림이 눈에 띄는데, 이 청색은 김환기의 초기작에서부터 나타나며 요즘은 '환기 블루'라고 불리고 있다. 파리에서 전시를 열었을 때 한 기자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동해의 바닷물이 얼마나 푸른지 하얀 손수건을 담갔다가 들면 파랗게 물이 들 정도다."라고 답했던 일화에서 드러나듯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묘한 청색은 바로 한국을 나타내는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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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초 서울 작업실

 

 

1954년 초 서울 화실에는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 이젤 위에 놓여있다. 중앙 세 점의 그림 중 상단의 것은 '항아리와 시'로 보이는데 왼쪽에 시를 넣을 자리를 만들어 두고 아직 완성은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하단의 작품은 항아리와 매화가지를 그린 여러 작품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림과 함께 진열되어있는 백자 여러점과 화병에 꽂혀있는 매화처럼 보이는 가지와 꽃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조형미에 눈을 뜬 것은 도자기에서 비롯됐다"고 할 정도로 백자에 심취해 있던 김환기의 백자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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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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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항아리와 매화가지, 1958

 

 

우리가 작품을 만나는 곳은 대체로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그런 공간은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시각적 맥락'이 부족하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환경에서 이런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잘 와닿지 않을 뿐더러 상상조차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는, 맥락이 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김환기'를 검색해 나오는 엇비슷한 작품 사진들은 내용 없이 빈 이미지로만 지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아틀리에 즉, 작품이 탄생한 바로 그 공간에 놓여진 그림은 미술관의 흰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그림들과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김환기의 작품이 그가 모은 백자들, 이리저리 관찰하고 배치해 본 뒤 캔버스 위에 옮겼을 매화나무 가지들과 함께 보여질 때 공감의 깊이가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시작된 글이었다. 언급된 예술가들의 작품과 작업실 풍경이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감을 이끌어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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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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