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 있는 자의 자발적 추천사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7.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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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Réparer les vivants)>

 

2014년에 출간된 이 책은 한 사람, '시몽 랭브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와 다른 이에게 이식될 '그의 심장'에 관계된 사람들의 상황·심리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장편소설이다. 보통 인물들의 대사가 큰따옴표 안에 들어 있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서술되는 문장과 대사가 표기에 구분 없이 연속적으로 문단을 이룬다. 책이 가진 이런 특성 덕분인지 책을 원작으로 프랑스에서 2015년부터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2016년에는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Réparer les vivants(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판됐지만, 미국에서는 'The Heart(심장)'로 출판되었다. 미국에서 새롭게 정한 제목처럼 책은 '시몽'이라는 인물의 심장이 지나는 궤적을 따라간다.

 

 

 

어떻게 읽게 되었는가



언제나처럼 이 책과 만남은 우연한 것이었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미 알고 있거나 제목이라도 들어본 극을 예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새로움'을 탐구하고자 낯선 극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있다. 연극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제목은 낯설었지만, 인상 깊게 본 드라마(괴물)를 통해 알게 된 배우가 출연하며, 한 명의 배우가 100분의 공연 시간을 채우는 모노극 형식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갔다. 나의 경제적 여건으로 누릴 수 있는가, 온전히 연극을 감상할 시간적·정신적 여유는 있는가 확인을 마친 후 예매 창으로 들어섰다. 운이 좋게도 내가 원하는 배우, 원하는 날짜에 좋은 자리가 있었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놀랍게도 '티켓 예매 과정에서'였다. 티켓 예매를 위해 할인받을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던 중, '원작 도서 할인'이라는 처음 보는 할인 방식을 발견했다. 원작 도서를 가져만 가도 티켓 금액의 일부를 할인해 준다고 한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 모노극은 원작이 있는 공연이었구나. 어디선가 책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당 할인을 적용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책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만나게 되었다. 할인을 위해 책을 빌려서 읽긴 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끝까지 읽지 못했고, 내용을 다 알지 못한 상태로 연극을 통해 처음 전체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연극은 가히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근래에 본 연극(사실 '연극 자체'를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중에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명작이었다. 내가 읽은 부분이 연극에서 25분 만에 소진되었을 때, 과거의 내가 더 읽지 않은 것을 극심히 후회하고 아쉬워했을 만큼 연극 자체가 좋았다. 한 사람만 등장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긴 공연 시간을 빈틈없이 채운 배우의 연기와 오직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화면, 음향만으로 무대를 완성한 연출은 감탄을 자아냈다.


나는 연극을 보고 한동안 멍하게 멈춰 있었다. 그건 사람의 생명과 신체, 내가 무지한 장기 이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연극의 원작이 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연극을 통해 느낀 '살아 있음의 감동'을 놓치지 않고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가 문자로 빼곡히 담긴 책을 읽어야 한다. 굳은 결심을 하고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했을 무렵, 운이 좋게도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책을 몰입해서 읽어야 할 더욱 확실한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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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분이 좋았는가


 

 

그동안 그녀는 손등을 깨물며 그토록 사랑하는 목소리가,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이 그럴 수 있듯이 친숙했던, 그러나 갑자기 낯설게 바뀐 그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끔찍하도록 낯설 수밖에 없다. 그 목소리는 시몽이 겪은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시공간에서, 이 텅 빈 카페로부터 몇 광년은 떨어진 흠결 없는 세계에서 솟아난 것이니까.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100쪽
    


파도와 심전도 그래프가 만나는 표지를 열면, 책의 첫 문장부터 이 책이 섬세한 묘사로 가득한 문학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연극을 보기 전 빠르게 읽을 때는 자세하게 감정과 상황이 표현된 부분들이 전체 내용만을 파악하고 싶은 나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각적 표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사전 내용 파악'을 하는 것이었고, 길고 생생한 책의 서술은 본디 느린 나의 읽기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연극을 본 후, 혼자 정리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야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이 고민하며 채워 넣은 값진 표현을 온전히 스스로 곱씹을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소설을 읽는 이유가 상이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소설 속 상황으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인물의 특정 순간에 나타낸 감정이 어떤 연유로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며 사람을 이해하는 부피를 키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소설의 설정과 내용에서 흥미를 채우기 위함도 있지만, 작가가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문장들에 감탄하며 언젠가 나의 말로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소설을 읽는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을 필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여럿 있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었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실제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간호사에게 사망자의 가족으로부터 동의를 얻는 과정에 대해 교육받았다. 이외에도 기증자와 적절한 수령자를 연결하는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크리스탈'을 직접 확인하고, 흉부외과 과장이 집도하는 장기 이식 수술을 관찰했다. 책의 중심 소재인 '장기 이식'이 친근하지 않은 개념이었기 때문에 상황의 중심에 놓인 인물들이 겪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가 들인 각고의 노력은 작가가 가장 적절한 단어들로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인물의 심리를 따라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사망>이라는 말.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죽음>이라는 말을. 육체를 경직 상태로 굳히는 그 말들을. 그런데 시몽 랭브르의 육체는 경직되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 겉모습은 시체에 대해 사람들이 품는 생각에서 어긋나 있었다. 어쨌든 그의 육체는 차갑고 푸르스름하고 꼼짝 않고 있는 대신 따뜻하고 선명한 선홍색이었으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117쪽

 


책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보통 '죽음'이라고 하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춰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고요함만이 감도는 신체가 떠오른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어렵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게 된다. 하지만 '시몽'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뇌는 죽었고 기계 장치가 아니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겉보기에 '시몽'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 의사 '피에르 레볼'은 사망을 선고한다.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뇌사 상태이고, 사망했다고 부모에게 전한다.


'시몽'의 가족은 아들 '시몽'의 죽음과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책은 그들이 처음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순간의 부정과 분노의 감정부터, 결국 수용하며 장기 기증을 결정하기까지의 심리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듯 자세히 다룬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점은 같으나, '시몽'의 어머니 '마리안'과 아버지 '숀'이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는 서로 다르다.


'시몽'이 겪은 사고에 대해 '마리안'은 아들의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자신을 책망하는 내적인 이유로 돌리는 한편, '숀'은 잠든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분홍빛의 '시몽'의 모습으로부터 병원과 의사의 노력에 의구심을 갖고 외적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서로 다른 과정을 겪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시몽'의 장기를 기증하는 선택을 내린다.


 

낮은 테이블 위에 뒀던 서류를 집어 올린다. 졸라 대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리적으로 조종하고 권위를 휘두르지 않을 테다. 젊고 온전한 기증자들이 드문 만큼 이번 경우에는 보다 무겁게 느껴질 무언의 협박, 보다 강하게 느껴질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장기 기증 거부 국가 대장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 동의 추정 원칙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는 법을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152쪽
    


삶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온 '시몽'은 건강했고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 속하는 젊은 나이였기에, 그의 장기는 이식만이 유일한 해법인 피이식자들에게 보석과도 같은 가치이다. '시몽'에게서 꺼낼 수 있는 장기는 간, 폐, 신장, 심장이었다. 그의 간은 여섯 살 여자아이에게, 폐는 열일곱 살 소녀에게, 신장은 아홉 살 남자아이에게, 그리고 심장은 51세 여성에게 갔다. 한 사람의 장기 기증으로 네 사람의 생명이 연장되었다. 책은 한 사람의 선택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장기 기증을 주저하는 상황을 가족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반응들로 전한다.


장기 기증 이후 보게 될 '시몽'의 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다른 장기에 대한 기증에는 동의해도 꼭 지키고 싶은 장기의 존재함으로 은연히 드러나는 각각의 장기에 실리는 상징의 무게 차이. 사람의 장기는 살기 위해 매일 기능하는 살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삶의 상징이면서 개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표식이 된다는 새로운 정의.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헤아려볼 기회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기도 한다. 장기 이식에 큰 관심을 가질 계기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수 있는 장기 기증 제도이다. 장기 이식 대기자는 많지만 이식할 장기는 부족하다는 사실은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었더라도, '제도'에 대해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 기증에는 'OPT-IN'과 'OPT-OUT' 제도가 있다. 책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는 2017년부터 장기 기증에 대한 거부 의사를 미리 드러내지 않을 경우, 모든 사망자를 장기 기증자로 간주하는 ‘OPT-OUT’ 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한국에서 시행 중인 별도로 장기 기증에 대한 동의 의사를 밝힌 사람을 장기 기증에 대한 동의자로 보고, 그 외의 사람은 사망 후에 장기 기증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OPT-IN’ 제도와 달라서 낯설다고 느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책 모임 기회로 책을 읽고 서로 다른 두 장기 기증 제도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공유하다가, '장기 기증'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소설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 영향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발적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추천사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 슬픔, 욕망, 분노, 그리고 생명력. 한 소년의 심장을 따라가는 소설의 시선은 냉철하다. 따옴표 없이 줄글로 서술되는 문장들은 죽음과 삶, 공존할 수 없는 두 단어의 동시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놀랍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을 덮는 순간, 누군가의 현실을 엿본 듯 생생하다. 사람의 생명을 이처럼 뚜렷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을까?

 

 

시몽 랭브르의 살아 있는 장기에 적합한 대상자들을 찾고 있는 이 순간에, 병든 몸에 그 장기들을 분배하고 있는 이 순간에 수천 개에 달하는 폐들이 저곳에서는 다 같이 부풀어 오르고 수천 개에 달하는 간들이 맥주를 흠뻑 머금고 수천 개에 달하는 신장들이 육체의 노폐물을 동시에 걸러 내고 수천 개의 심장들이 들뜬 분위기 속에서 펌프질을 해대는 걸 상상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의 파편화에, 이 공간의 현실의 절대적 단속성에 소스라친다. 무한히 갈라지는 서로 다른 경로로 산산이 흩어지는 인간 군상.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215쪽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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