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97년과 2021년, 여성 서사는 '언제나 시작'이다 [도서/문학]

문학동네포에지, 성미정 시인의 『대머리와의 사랑』
글 입력 2021.07.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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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했다. 기획의 말에서는 이를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설명하며,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시리즈를 시작하며 동시에 출간한 10권의 시집은 모두 시인들의 첫 시집이다. 시인들의 첫 시집 혹은 과거의 시집을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의미를 10권의 시집 중 하나인 성미정 시인의 『대머리와의 사랑』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성미정 시인은 1994년 문단에 데뷔해 1997년에 『대머리와의 사랑』이라는 첫 시집을 발표했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여성 서사를 이야기 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음으로써 여성의 언어를 재구성하려 하려 했다.

 

 

 

"뼛속 깊이 퍼렇게 골병든 행복 …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당신도 저런 새를 갖고 싶다면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 그리고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새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때리란 말이야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때리는 게 중요해 잘못 건드려서 숨지더라도 신경쓰지 마 하늘은 넓고 새는 널려 있으니 오히려 몇 마리 죽이고 나면 더 완벽한 파랑새를 얻을 수 있지 … 걱정 마 그 정도는 눈감아 줄 거야 맞아서 파랗든 원래 파랗든 파랑새라는 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비밀 없는 행복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 거야 뼛속 깊이 퍼렇게 골병든 행복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행복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 「동화 – 파랑새」 부분

 


성미정 시인은 여성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을 묘사한다. 여성의 앞에 놓인 현실은 폭력을 행복으로 둔갑하는 권력과 권위의 사회다.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는 사실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맞은 새에 불과하다. 폭력은 동화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행복으로 은폐된다. 성미정 시인은 이러한 알레고리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그들이 은폐하고 있던 폭력적인 현실을 폭로한다.

 

폭력적인 사회에서의 행복은 “맞을수록 강해”진다는 점에서 권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남성이며, 따라서 행복의 주체도 남성이다. 여성에게는 행복을 쟁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행복’의 상징 ‘파랑새’로 여겨진다.

 

남성중심적 사회 속에서 여성은 흔히 남성의 전유물, 트로피로 전락해 파랗게 물들여진다. 파랑새가 처음에 무슨 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맞아서 파랗든 원래 파랗든” 행복이라 여겨지는 것을 쟁취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파랑새를 만드는 과정에서 몇 마리쯤 죽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비밀 없는 행복”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그런 현실에 속기도 하고, 정상적이라 칭해지는 그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견고한 남성중심사회로 편입할 수 없다. 기대와 욕망이 좌절된 여성 주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 또한 남성에게로 가닿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향한다. 『대머리와의 사랑』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온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여성 주체를 그린다.

 

 

 

“야구성 안에서 경기를 바라만 보던 사람들은 결코 날릴 수 없는 역전의 홈런"


 

 

이곳의 밤은 길고 춥다 두툼한 털옷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 헌 실과 낡은 교본 휘어진 바늘로 만족하기로 한다 좀 낡으면 어떤가 근사한 무늬를 짜넣는다면 새것 못지않을 것이다 … 그녀는 뜨개질을 시작한다 손끝이 자주 바늘에 찔린다 교본과는 다른 무늬만 나타난다 화가 난 그녀는 교본을 찢는다 실뭉치를 벽에 던진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힌다 분노로 털옷을 짤 수는 없으니까 다시 뜨개질에 몰두한다 떠오르는 무늬를 집어넣는다 손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침내 그녀에게도 털옷이 생긴다 군데군데 구멍 뚫리고 이상한 무늬 놓인 옷 비슷한 털실을 걸치고 다닌다

 

- 「쿨 월드 – 헌 실 혹은 현실」 부분

 


하지만 성미정 시인의 여성 주체가 현실 앞에 항상 절망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성미정 시인이 그리는 여성 주체는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여성이 있는 곳은 ‘쿨 월드’다. (「쿨 월드 – 자장가」, 「쿨 월드 – 헌 실 혹은 현실」) 밤이면 기온이 더 내려가는, 한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여성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쿨 월드’에서 한기를 견디려면 “두툼한 털옷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돈이 부족해 “헌 실”과 “낡은 교본”, “휘어진 바늘”밖에 살 수 없었다.

 

그러나 뜨개질은 그녀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헌 실”은 자꾸 엉키고 “휘어진 바늘”은 그녀의 손을 찌른다. 그녀는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로 털옷을 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분노를 가라앉힌다. 마침내 그녀는 털옷을 완성한다. 기대했던 멋진 무늬가 아닌 “이상한 무늬 놓인” 옷, 사실은 옷도 아닌 “옷 비슷한 털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는 ‘좀 이상하면 어떤가’하면서 쿨 월드의 한기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헌 실 혹은 현실”로 “두툼한 털옷”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녀만의 현실은 만들 수 있다.


 

모든 야구는 거대한 야구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야구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야구모자를 써야 했다 야구모자는 비쌌고 넌 가난한 야구처녀에 불과했다 … 야구아이들이 소리쳤다 검붉은 피로 엉킨 야구공이다 처음 보는 야구다 야구어른들은 야구아이들에게 충고했다 야구는 몹시 위험한 경기란다 야구모자를 쓰고 견고한 야구성 안에서 오래된 규칙에 따라 해야 한단다 야구어른들은 야구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이들의 눈으로부터 너의 미소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비록 야구성 밖이었으나 그토록 사랑하던 야구에게 살해당한 너는 행복했다 부서진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이제 야구모자 따위는 필요치 않은 너만의 야구성으로 떠났다 그건 야구성 안에서 경기를 바라만 보던 사람들은 결코 날릴 수 없는 역전의 홈런이었다

 

- 「야구처녀의 행복한 죽음」 부분

 

 

그 세계는 남성을 기준으로 짜인 정상성의 규범에서는 이상해보일지 몰라도, 여성 주체에게는 충분히 완벽한 세계이다. 「야구처녀의 행복한 죽음」에서 “너”는 “거대한 야구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야구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야구모자를 써야”하고, “야구모자는 비쌌”다. 가난한 너에게 야구성의 벽은 높기만 하다. 너는 야구성 밖으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주워다 돈을 벌어 야구성 안으로 들어가기를 열망한다.

 

너는 결국 날아온 야구공에 머리를 맞는다. 너의 “검붉은 피”는 야구공을 뒤덮고 너의 얼굴은 부서진다. “야구 어른들”은 너를 그들이 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그러한 경고를 비웃듯, 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너는 허무한 죽음, 실패한 결말을 맞은 것이 아니다. “너는 이제 야구모자 따위는 필요치 않은 너만의 야구성으로” 간다.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로의 편입에 실패하고 떠나는 도피가 아니다. 너는 “너만의 야구성”을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또 그것은 “거대한 야구성”의 견고하고 “오래된 규칙”을 무너뜨리고 전복하는 행위이다. 즉, “처음 보는 야구”지만 분명한 너만의 야구, “야구성 안에서 경기를 바라만 보던 사람들은 결코 날릴 수 없는 역전의 홈런이었다”

  

이처럼 여성 주체의 ‘야구’는 기존 세계의 ‘야구’와 다르다. 그럼에도 여성 주체의 ‘야구’는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 「동화 – 엄지 공주」의 엄지 공주는 “태어났을 때부터” 작았다. 아무리 크게 울어보아도 너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엄지 공주는 스스로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다. 아무리 크게 울어도 들리지 않는다면 “울어야 할 이유”를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너의 세상을 산다. 너는 여전히 “항상 가장 작은 아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직 작은 너만이” 작아진 부모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여성 주체의 능력이자 새로운 삶의 가치이다.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 언제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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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면, 1990년대에 이야기되었던 여성 서사 『대머리와의 사랑』을 2020년대에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본 것처럼 여성 주체와 남성 주체의 세계를 나누어 읽는 것 혹은 남성들과는 다른 여성들만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이분법적인 사고를 공고히 하는 것일 수 있다. 여성적 언어와 여성적 글쓰기를 한계 짓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시에는 남성을 지배 권력으로 두고 그것을 전복하는 문학적 담론이 새로웠으나, 지금 여기에선 또 다른 전형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대머리와의 사랑』을 다시 읽는 이유는 시집이 지금 여기의 여성 서사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방망이로 날려버리고 싶은 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런 놈들이 하나같이 나보다 큰 방망이를 들고 있는지 야구 세상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견딜 수 없이 많은 살의를 품으며 나는 둥글어진다 밤마다 나는 증오로 부푼 나를 멀리 날려보낸다 날려버리고 싶은 놈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야구를 전혀 몰랐던 시절의 아이 나를 닮은 작은 아이가 사는 곳 야구와는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는 어떤 이들이 있는 곳 야구에 관한 모든 상념이 잊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홈인이라 외친다

 

- 「야구에 대한 세 가지 슬픔」 부분

 


「야구에 대한 세 가지 슬픔」의 화자는 “방망이로 날려버리고 싶은 놈들이 점점 많아지”는 “알다가도 모를” “야구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이 많은 살의를 품”고 산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날려버리고 싶은 놈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 “야구와는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는 어떤 이들이 있는 곳”, “야구에 관한 모든 상념이 잊히는 곳”을 상상한다. 또 그곳에서 “홈인”을 외치기를 희망한다.

 

희망이 있기에 절망할 수 있고, 절망이 있기에 희망할 수 있다. 희망을 바탕으로, 또 절망을 바탕으로 인간은 걸어 나간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의 현실이 어떠하든 좀 더 나은 쪽이기를 기대하며. 성미정 시인은 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폭력과 그 몸에 새겨진 고통을 직시한다. 동시에 희미한 희망도 제시한다. 희미할지라도 그 희망을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더 밝은 희망을 바랄 수 있다.

 

2020년 『대머리와의 사랑』을 다시 출간하며 시인은 “아직도 야구를 몰라 / 얼마나 다행인지” “야구를 모르는 / 모르는 척하는 모두들” “그때처럼 야구를 모르는 / 척하자” “우리 모두 / 오늘은 늘 그렇듯이 / 홈인”이라고 시인의 말을 남겼다. “야구를 전혀 몰랐던 시절”로 밤마다 나를 “날려보”내고, 그곳에서 외치던 1997년의 “홈인”은 2020년이 되어 “늘 그렇듯이 홈인”이 된다.

 

『대머리와의 사랑』의 마지막에 실린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에서 화자는 결국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당신”은 자기 자신일 수도, 여성 주체 혹은 여성 서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로부터의 분노를 어쩔 줄 몰라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비하했던 여성은 이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언어를 점차 되찾고 폭력적인 지배 질서를 조롱하며 전복할 수 있다. 이제 여성이 갈 곳은 어디인가. 여기는 끝이 아니다. “언제나 시작”이다.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부분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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