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류 모두의 적

글 입력 2021.07.1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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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만화 <원피스>를 보다 보면, 나도 몰래 주인공 루피를 따라 해적왕의 꿈을 꾸게 된다. 드넓은, 푸른 바다 위에서 동료들과 함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빌런들에 맞서 싸우는 루피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해적이란 멋진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 역시, 나에게 해적을 향한 동경을 싹 틔우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자유로워 보이는 몸짓에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낭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과는 다르게, 세계사 속 해적은 너무나도 강력한 범죄 조직이었다. 바다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하여 약탈과 살인, 일종의 테러를 자행하던 잔혹한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해적들의 악행은 특정 국가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책 <인류 모두의 적>은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악명 높았던 해적왕 헨리 에브리, 그가 약탈한 보물선 한 척이 근대사에 미친 결과를 조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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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는 바다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해양 무역이 활성화되고 해적선과 샤락선이 판을 치던 시대, 헨리 에브리는 해저 밑에 가라앉은 갤리선 인양을 목적으로 꾸며진 '스페인 원정 해운'에 참여하였다.

 

당시 선원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몇 해를 배 위에서 보내는 조건으로 삼시 세끼와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수만 시간을 보내야 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선원이 되었다. 에브리 역시, 같은 이유로 스페인 원정 해운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비가 찾아왔다. 스페인 원정 해운을 이끈 찰스2세호가 스페인 아코루냐 항구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반겼던 것은 예상치 못한 기다림이었다. 5개월여의 기다림은 선원들을 지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헨리 에브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닥에 가라앉은 인내심을 견디던 끝에 헨리 에브리는 큰 결심을 했다. 반란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반란 끝에 배의 선장이 된 그는 찰스2세호를 팬시호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해적의 길로 들어섰다. 역사를 뒤흔든 해적왕 헨리 에브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

 

굉장히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였다. 헨리 에브리라는 인물의 삶을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적이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소개함과 동시에 해적질이 가져온 세계사적인 영향에 대한 회고까지, 자칫 어색할지 모를 시선의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두께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어서 며칠에 걸쳐 책을 읽어내려갔음에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탄탄한 구성 덕분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책 <인류 모두의 적>은 상당히 입체적일 수밖에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이야기 이외에도 놀라운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동인도회사가 처음부터 인도(당시는 무굴 제국)를 지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것 또한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오히려 무굴 제국의 허가 하에서 무역으로 인한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던 동인도회사가 점차 영국 국가를 대신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획득해나가는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그 과정에 헨리 에브리가 관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헨리 에브리가 무굴 제국의 보물선을 약탈하지 않았더라면, 따라서 영국과 인도의 무역 관계에 영국의 해적이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동인도회사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지금과는 크게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해적들의 문화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으레 군대 문화와 닮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과 달리, 해적의 정치는 꽤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흘러갔다. 선장의 독재가 아닌 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에서 그들은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빼앗은 보물들을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지도자가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해적을 평가하는 태도를 두 가지 측면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하는 저자가 무척 재미있었다. 누가 봐도 흉악범인 해적들의 문화에 굉장히 선도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심지어 거듭 언급하기까지 하는 태도가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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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류 모두의 적>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사소한 일이 역사를 뒤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

 

헨리 에브리는 세상을 뒤흔들겠다는 위대한 포부로부터 해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지명수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기도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이는 역사가 기억하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히 '그러니까 작은 일이라도 함부로 여기면 안 된다'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만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어떤 소설책보다 흥미진진했으니 말이다.

 

책 <인류 모두의 적>은 탁월한 소재와 탄탄한 기획, 거기에 짜릿한 필력이 더해진 합작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뻔한 교훈이 뻔하지 않게 느껴진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란, 이런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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