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해적의 황금기를 끝낸 해적 중의 해적 - 인류 모두의 적

글 입력 2021.07.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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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쟁이들, 일본의 유서깊고 전문적인 모에화로 인해, 해적은 로망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캡틴 잭스패로우나 몽키 D.루피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범죄자라기보다 모험가에 가깝다.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떠돌고, 전설적인 보물이 숨겨진 보물섬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적들은 막대한 부를 노리며 범죄를 선택한 범죄자였다. 해적들은 항구에 정정당당하게 정박하지 못했고, 무역선들을 끊임없이 강탈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보도되었지만, 우리는 해적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여전히 건들거리는 포즈의 조니 뎁이나 수영을 못하는 해맑은 소년을 먼저 떠올린다.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해적이 로망과 낭만의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오늘날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해적은 군중에게는 로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600년대는 노래에서 인쇄매체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1600년대 유럽의 주요 도시, 런던에서는 군사와 정치에 대한 소식, 민담, 범죄에 관한 이야기가 노래를 통해 전달되었다. 이런 방법은 구텐베르크 이전 음유시인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

 

인쇄술이 발달하자, 가사와 목판의 삽화가 인쇄된 커다란 종이가 노래와 함께 군중들에게 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의 사건을 음악적으로 풀이한 인쇄물은 '브로드 사이드'로 일컬어졌으며, '발라드몽거'가 이러한 인쇄물들을 팔았다. 이들은 신문팔이의 전신으로서, 음악적인 재능을 적극 발휘했다. 이들은 노래하듯 최근의 이슈를 말했고, 핵심적인 소식은 쉬운 곡조에 붙여 말했다.

 

발라드몽거의 활약으로 해적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발라드 몽거는 해적들이 많은 범죄가 일어날 거라고 예고하는 메시지를 곡조에 붙여 불렀다. 이러한 소식들을 기반으로 많은 작가가 해적들이 벌인 이야기를 낭만적인 이야기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유명한 해적들을 대거 배출한 영국의 몇몇 해적들은 영국 국기를 달지 않은 배들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대외적으로 밝혔다. 영국 시민이 해적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태도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

 

이런 미디어의 막강 영향력뿐만 아니라, 해적 생활은 막대한 부를 꿈꾸거나 자유를 바라는 이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해적으로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금전적 이익은 막대했다. 일반적으로 당시 유능한 뱃사람이 스페인 원정 해운과 같은 여정에 신청하면, 재단사와 직조공과 같은 숙련된 장인에 버금가는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선원들은 계약 일부로 항해 기간 중 음식이 보장받았다. 항해 기간 중 음식들은 바구미와 개미로 인해 오염되기 쉬웠지만, 음식의 제공은 임금의 대부분을 허기를 채우는 써야 했던 시대에서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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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은 초과 이익 공유 계획을 통해 민주적으로 이득을 공유하였다. 일반적으로 영국 해군의 함장과 사관들은 숙련된 갑판원보다 10배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하지만 해적들은 선장이 2배, 항해장은 1.5배, 의사와 항해사, 포수와 갑판장은 1.25배의 보수를 받았다.

 

해상 생활에서 동료간 유대는 중요했다. 선원들은 항해 중 다양한 오락거리를 통해 즐겁게 지냈으며, 그 당시에는 드물게도 문해율도 높았다. 70% 이상의 선원들이 공식적인 문서에 자신의 서명을 쓸 수 있었다. 항해 중 선원들은 책과 소책자를 읽었다. 종교적으로 구속된 시대에 이들은 성적 욕구를 개방할 기회도 많았다. 이들은 '동양'에 대한 성적 환상이 있었으며,배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동성애가 묵인되었다.

 

해적들은 중대한 사건들을 결정할 때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가졌다. 선장의 권한은 투표를 통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처럼 해적은 유동적인 민주조직으로서,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해적의 노략질이 해상무역의 적이 되었지만, 국가는 이를 묵인하기도 하였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라면, 왜 해적이 발생했는지, 그들이 왜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 해적은 어떤 존재로 느껴지는가? 다양한 답이 제시될 수 있다. 무엇이 되었건, 해적이라는 존재 자체가 해상 무역, 매체의 발달, 군중의 욕구와 같은 다양한 심리적, 환경적 요소들이 결합한 결과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오늘 리뷰할 도서 '인류 모두의 적'은 실증적 증거를 통해 해적이 발생한 경로를 밝히고, 미온한 태도로 해적들을 내버려뒀던 영국정부가 그들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선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의 전후를 추적한다.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는 해적 헨리 에브리가 있다. 그는 영국의 다른 해적들처럼 유명한 해적은 아니었지만, 국가 간 관계와 영국 정부의 명료한 판단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여 5부(원정, 선상 반란, 약탈, 추적, 재판)로 나누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결정적인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생생한 문체로 전개한다. 첫 번째 섹션인 원정에서는 헨리 에브리가 해적이 되기 전을 추측하고, 그가 해적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 상황과 환경을 설명한다. 이외에도 해적이 군중의 공포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 당시 정부는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했는지, 영국 정부와 무역하던 무굴 제국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와 같은 배경을 자세히 기술한다.

 

둘째 섹션 '선상 반란'에서는 찰스 2세 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헨리 에브리가 선상반란을 일으킨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찰스 2호는 본래 스페인 난파선 인양 사업을 위해 투입된 선함으로써, 아주 뛰어난 성능의 배였다. 선상에는 많은 무기를 장착하고도 무척 빠르고 날렵했다. 반란에 동조하지 않은 선장과 일부를 배에서 내려보낸 후, 이 빠른 배는 해적선 '팬시호'가 된다.

 

헨리 에브리는 팬시호의 선장이 된 후, 초과 이익공유 규칙과 합의 조항을 세웠다. 헨리 에브리는 2배를, 일반 선원은 모두 1배에 해당하는 이익을 챙기기로 했다. 이후에도 팬시호는 약탈 과정에서 투항한 사람들을 선원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규모를 키워나갔다.

 

에브리 해적단은 연례 순례를 오는 무슬림의 배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아덴만에 들어선 즉시, 이들은 홍해 순례단을 먹잇감으로 삼았으나,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략선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전설적인 토머스 튜가 키를 잡고 있었다. 튜는 에브리에게 이곳을 표적으로 삼도록 영감을 준 해적으로서, 에브리와 손을 잡게 된다.


셋째 섹션 '약탈'에서는 가장 부유한 보물선단을 습격하는 과정에 관해 기술한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무역상인 압둘 가파르의 중무장한 상선 파트마흐마마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브리 해적단은 그 배를 공격했고, 파트마흐마디호는 바로 투항했다. 파트마흐마디호는 사실 바로 전에 팬시호에 뒤처진 토마스튜의 공격에서 승리하였으나(토마스 튜는 이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결과 해적들은 500만 달러에 달하는 금과 은을 찾아냈다. 각 선원은 스페인 원정 해운이 2년 동안 일하는 대가로 얻는 보수의 세배를 넘는 임금을 받았다. 하지만 에브리는 이러한 결과가 은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계산을 해냈다.

 

일부에게 파트마흐마마디호를 남겨두고, 48시간도 안 된 시간 후에 이들은 건스웨이호를 발견하였다. 건스웨이호는 1000명이 넘는 거대한 배였다. 건스웨이호는 80문의 대포와 수백 정의 머스킷 총이 있었다. 사실 건스웨이호를 공격하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일이었다.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심지어 그는 토머스 튜의 끔찍한 죽음을 전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부에 대한 갈망이 컸는지, 자신의 해적선으로는 터무니없이 거대한 건스웨이호를 공격한다.

 

팬시호가 건스웨이호에 접근했을 때 거짓말 같은 일이 연속으로 터진다. 우선 첫째로, 건스웨이호가 해적선에 반격하려고 할 때 갑판에서 대포가 폭발해 여섯 명의 포수가 즉사하고 다른 포수가 중상을 입었다. 건스웨이호 갑판은 불바다가 되었으며, 에브리의 집중포격이 운 좋게 주 돛대를 때려 돛과 그 모든 삭구가 무너졌다. 그 결과, 에브리 해적단은 넘치는 보물을 의미하는 '건스웨이'에 걸맞은 보물들을 찾아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건스웨이호에는 아우랑제브의 왕실 가족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상에는 순례를 위해 떠난 수십 명의 여성이 있었고, 개중에는 아우랑제브의 손녀로 추측되는 공주도 있었다. 후에 수많은 작가는 헨리 에브리와 손녀가 사랑에 빠졌다고 진술한다.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저자는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수는 있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런 로맨틱한 상상과 다르게, 습격당한 건스웨이호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해적들은 건스웨이호처럼 왕실에 소속된 배에는 값비싼 귀중품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알아내기 위해 잔혹한 고문을 일삼았다. 그들은 칼과 채찍으로 상처를 주고, 팔을 탈구시키고 코와 귀를 베어냈다. 나아가 보석과 장신구를 치장한 수십명의 여성들을 몇 날 며칠 동안 성적으로 고문했다. 이 때문에 몇몇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륙도시에 때마침 도착한 특사 카피 칸이 완벽한 목격자가 되어준다. 그는 특사를 넘어 역사학자를 꿈꾼 자였으며, 훗날 아우랑제브 연대기를 기록한 권위자로 찬사를 받게 된다. 카피 칸이 건스웨이호의 습격을 알게 된 순간, 행운의 여신은 인도의 편에 선다. 자세한 보고를 받은 무함마드에게 왕실 순례선 포획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모독이었다. 그들은 재산을 탈취했을 뿐만 아니라 무슬림에게 가장 신성한 행위에 참가한 여인들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러한 결과로, 에브리 해적단은 평생을 먹고 놀 돈을 벌었다. 헨리 에브리는 9월의 격렬했던 며칠동안 건스웨이호에 승선하지 않고 새로운 바다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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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섹션 '추적'에서는 헨리 에브리가 아우랑제브와 영국정부의 추적으로부터 도주하는 내용을 다룬다. 황제의 분노는 영국 정부와 동인도 회사에게 번졌다. 영국과 동인도 회사는 무굴지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지금까지 묵인해왔던 헨리 에브리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헨리 에브리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특유의 신중함으로 자신의 위기를 감지해냈다. 충분한 부를 쌓은 그는 이제 흩어지기 위해 노예상인이라는 거짓 신분으로 나소의 총독 트롯에게 편지를 썼다. 에브리는 해안에 들어와 떠나고 싶을때 떠나게 해주면, 총독에게 20 스페인 달러와 두 개의 금덩이, 팬시호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트롯은 아직 헨리 에브리를 추적하라는 성명을 공포받지 못했다. 또한 팬시호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이들을 흡수하면 나소의 인구가 대폭 증가하고 그 일부가 나소에 남게 된다면 인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트롯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에브리는 팬시호의 갑판에 다신 오르지 않게 되었다.

 

한편, 무굴제국은 영국이 자신의 호의를 계속 받으려면 회사가 담보를 제공하고, 인도 상선을 보호할 대포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애니슬리는 이러한 조항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 동인도 회사가 아우랑제브의 무역선을 보호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었다. 회사는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이는 건스웨이호의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회사의 새로운 사업 영역이었다. 실제로 동인도 회사는 60년 후에 인도 아대력에서 제국적인 세력, 1억이 넘는 백성을 지배하는 회사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헨리 에브리가 건스웨이호를 공격하고 9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들은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섹션 '재판'에서는 이들의 결말을 다룬다. 헨리 에브리는 잡아들이지 못했지만, 영국은 끈질긴 추적을 통해 여섯 명의 해적단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한다. 무굴 제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해적과 선을 긋기 위해 이들은 유죄를 위한 재판을 시작한다.

 

하지만 발라드몽거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에 익숙한 동포 배심원들에게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영국 입장에서는 재앙 같은 일이었다. 영국은 다시 이들을 대상으로 재판을 연다. 이번에는 선상 반란에 대한 재판이었다. 영국은 영국이 마침내 해적 행위를 근절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특히 아우랑제브에게 알리고 싶어했다. 만약 이번에도 무죄를 선고하게 된다면, 영국의 이 같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배심원단은 첫째 재판과 달리 짧은 시간 회의실로 들어가 숙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는 유죄였다. 그들은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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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에브리가 잠적한 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해적 서사는 낭만화되기도, 인류 모두의 적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무모한 한 해적의 급습은 세계사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해적 에브리 선장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풀어나간다. 그가 써내려간 역사는 집요한 만큼 흥미롭다. 책을 읽고 난 후, 해적이 로망의 대상이건, 실제적인 범죄자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적은 다양한 역사적 맥락의 결과로 탄생하고, 다양한 이득과 심리적 요구로 정의되었다. 해적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게 된 것도 다양한 역사적 맥락의 결과였다.

 

따라서 그런 그들을 어떤 하나의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갑작스럽고 무모한 사건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였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제는 죽어버린 악독한 범죄자의 탐욕스러운 욕망이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이러한 역사적 결과로 현재를 구성해왔다. 이런 아이러니가 역사의 가장 즐거운 점이고, 그러한 역사를 재미있게 써내려간 스티븐 존슨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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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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