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긴긴밤을 함께 보낼 우리에게 - 긴긴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7.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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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가로1.jpg


 

이럴 때는 책을 읽고 싶다. 그러니까 장맛비, 물 폭탄, 구름 많음 같은 말들이 일기예보 창을 뒤덮은 날들. 습한 더위를 뒤로 감추고 비가 쏟아지는 장마 기간엔 조용히 실내에서 책을 읽고 싶어진다. 빗소리에 맞춰 부드럽고 편안한 감정이 수채화처럼 번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긴긴밤』을 추천한다.


책을 처음 접한 건 인스타그램 피드였다. 출판사 편집자, 작가, 마케터 일명 ‘힙한’ 사람들이 말하고 공유하는 건 일단 나도 보자 주의인 나는 『긴긴밤』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감동이라니! 또 내가 엄격한 키워드다. 작정하고 만든 슬픈 이야기만 보면 싫어서 털이 다 쭈뼛 서는 나는 조금은 미심쩍은 얼굴로 매대에 가지런히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보드라운 표지를 지닌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곤 낯선 지역, 낯선 카페에서 책을 펼쳤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읽어 내려간 『긴긴밤』, 아- 잠깐이라도 오해한 게 미안해진다.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포근하지만 처연한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이 감동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간절한 마음마저 들었다.


『긴긴밤』은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의 이야기이다. 노든은 살면서 빛나는 친구와 가족들을 만난다. 노든을 따뜻하게 품어준 코끼리들부터 코뿔소 가족, 펭귄 친구들까지. 종도, 크기도, 성향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를 보듬어주며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노든의 삶이 아름답게만 이어지진 않는다. 노든은 관계에 충실하게,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노든의 행복을 깨뜨리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불운의 사건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을 찾았다 싶으면 운명의 장난처럼 또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제발 노든을 괴롭히지 마라, 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나를 발견할 만큼. 그럼에도 노든은 때로는 친구의 품에 기대어, 때로는 자신의 힘으로 ‘노든 만의 삶’을 꿋꿋이 걸어 나간다. 수많은 눈물과 불안으로 젖은 긴긴밤을 그렇게 헤쳐나간다.

 

 

노든과 펭귄 가로.jpg


 

『긴긴밤』은 사랑과 연대의 힘에 대해 말한다.

 

노든과 함께하는 친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지 불같이 타오르는 감정만이 사랑이 아님을 깨달았다. 노든은 펭귄 치쿠와 동행하는 내내 시비를 걸고 장난을 치며 치쿠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럴 때마다 치쿠가 불같이 화를 내고, 한술 더 뜨는 모습을 보면서 노든은 걱정을 잊고, 안정감을 느낀다.

 

코뿔소 앙가부와 함께 지낼 때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앙가부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아기 펭귄을 돌보게 되었을 때, 노든은 펭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항상 자신보다 펭귄이 먹을 열매가 많은 길로 안내하고, 긴긴밤이 찾아오면 따뜻한 품을 내어준다. 노든이 치쿠, 앙가부, 어린 펭귄에게 전한 말과 행동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표현도 형태도 다르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 『긴긴밤』, p99

 


노든이 어린 펭귄에게 했던 말에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꼭 연인 사이의 열렬한 감정으로만 한정 지어서 말하는 글과 음악에 남모를 불만을 지녔던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말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알아보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마음. 그래서 사랑은 연인, 친구, 가족, 우주 그 어떤 대상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자란다.

 

누군가에게 받는 사랑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깨우치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긴긴밤』 속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 『긴긴밤』 심사평, p142

 


노든이 갖은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던 건 사랑 덕이었다. 심사평의 말처럼 우리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이 개입한다. 원치 않는 방문에 속상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타인의 작은 위로와 응원, 조용한 기다림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가 잊고 있을 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영원히 힘이 될지 모를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긴긴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되는 모든 이와 함께 읽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는 사랑과 연대를 떠올려보면 좋겠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책을 선물해 주어도 좋겠다. 당신의 긴긴밤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여기 있다고 사랑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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