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 불가능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 우아한 거짓말 [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해하려 노력한다
글 입력 2021.07.06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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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흘러갔을 하루가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히지 않는 날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있다. 뇌리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면 그렇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있었는지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필자는 2014년 4월 16일 그날, 갓 대학에 입학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평소 가 보고 싶었던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혼자 들렀고, 돌아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사소한 일이 커다란 일에 뭉쳐지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생일이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갑자기 MP3를 사달라는 중학생 딸내미의 응석에, 전셋돈을 올려줘야 한다는 집주인 얘기로 맞받아치며 잠자코 있게 만드는 어머니의 화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 으레 있을법한 모녀의 대화로 기억되다 점차 옅어질 그 날이, 살아있는 한 두고두고 생각날 하루로 바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천지는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마는 남편을 보낸 지 구 년 만에 어린 딸까지 보내고 만 것이다. 아직 그 작은 부탁도 들어주지 못했는데. 집주인은 더 이상 보증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집을, 비우라고 했다.

 

 

막내딸 천지의 죽음. 우리에게 소설 <완득이>로 더 잘 알려진 김려령 작가의 2009년 작품 <우아한 거짓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실 뒤에 가려졌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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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죽었으니 이야기는 막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이제 막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화연은 교실에 놓인 국화꽃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화꽃이 사라진 책상은 오히려 천지를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동생과 한솥밥을 먹으며 살아온 언니 만지는, 동생이 MP3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고 결론짓기에 무언가가 석연치 않다. 만지는 평소 천지와 함께 다니던 같은 반 친구 화연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화연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온 천지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건넨 아이였다. 하지만 그 뒤로 천지는 거의 ‘술래’였다. 게임은 화연의 손아귀에 있었고, 새로운 사람과 생활에 적응하기도 바쁜 천지에게 룰을 바꾸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되지 않았다. 연필 일곱 자루를 굳이 천지 앞으로 가지고 와서 다른 친구와 나누며 천지의 몫은 준비하지 못했다고 둘러대는가 하면, 아버지가 없어서 빈티가 난다는 모멸 짙은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화연의 생일 파티 날, 시작 시각을 천지에게만 다르게 적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하는, 명백한 괴롭힘이었다.

 

종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듯 허겁지겁 나온 만지와 엄마의 다음 집은, 해필 화연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는 아파트였고 화연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천지는 ‘남 주자니 싫고 가지자니 더 싫은’ 친구였었다. 천지를 향해 가했던 ‘갑질’을 천지는 모조리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천지가 사라짐으로써 해소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잊고 싶었던 관계의 전말을 알아내려는 천지의 가족과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던 같은 반 친구들의 들춰냄, ‘사실’로 가려질 것만 같았던 ‘진실’이 화연을 심하게 옥죄고 있었다.

 

 

 

용서의 털실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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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떠난다고……. 하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나와 오랫동안 만나면서 함께 웃기도 한 사람들이니까요.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가고 싶습니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털실 뭉치를 남겼습니다. 사과는 하고 가겠습니다. 온전하게 용서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합니다.

 

 

이것저것 조사를 이어나가던 만지는 동생 천지의 우울증, 화연과의 관계 등 가족이지만 모르는 것이 많았음을 발견한다. 한편, 천지의 유품인 털실로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하던 엄마 앞에 실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실패가 툭 떨어진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아 오리무중이었던 천지의 속마음. 먼저 가서 미안하고,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 달라는, 엄마에게 하는 사과와 부탁이었다.

 

뒤이어 만지, 그리고 천지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속속 발견되는 털실 뭉치를 화연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다가오는 ‘진실’의 그림자 속에서 더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 설명할 길 없는 고통을 설명할 사람조차 주변에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홀로 침전하던 화연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 빈 그릇을 훔쳐 버려버리고, 학원을 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방황한다. 그러다 모든 걸 알고 몰래 뒤를 밟고 있던 만지와 마주친다. 가해자를 앞에 두고 피해자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래, 너. 네가 지쳐서 천지 따라가지 않게 지켜야지. 너 좋아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동생에 죽어서까지 ‘천지 때문에’ 소리 들으면 안 되니까, 지키는 거야. 지금부터 시작이야. 마지막 털실 뭉치를 찾을 때까지…….”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는 청소년의 집단 따돌림 문제를 소재로 하여, 딸을 잃은 엄마의 슬픔,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 등 다양한 등장인물의 특징을 소설 군데군데에 녹여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담긴 소설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읽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 선생님의 신경을 긁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폭력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 겉으로 보이는 관계로 천지와 화연의 사이를 오해하는 만지, 분명 천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천지에 대한 묘사가 제각각이었던 장면은, ‘나의 방식’이 아닌 ‘그 사람의 방식’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무관심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관심 속에 있지도 않았던 어정쩡한 사각지대 속에서 천지는 그렇게 스러져 갔다. 뒤늦은 후회를 한들 천지가 돌아오진 않는다. 이제 모든 노력이 무용하나 싶다. 그러나 만지는 화연에게 마지막 털실 뭉치의 행방을 같이 찾자고 제안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곳곳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듯, 납득되지 않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담긴 메시지를 우리는 알고 싶어 한다. 제삼자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온전하게는 안 될지라도, 바뀌는 것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함으로써 상대를 배려하려는, 따스한 마음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문을 갑자기 쾅 소리를 내며 닫고 들어가 버린 자녀의 마음속이 궁금한가? 갑자기 바뀐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신경 쓰이는가? 잔소리를 일삼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답답함을 느끼는가?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이 동요되는 당신에게, 오늘도 따뜻한 관심을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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