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여름은 염증를 동반합니다 - 사랑의 세계 [도서]

‘하지만 가끔은 아름다운 것보다 진실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글 입력 2021.07.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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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이나 사랑, 사람 따위의 단어에 ‘아름다움’을 기대하곤 합니다.


 

아름-답다

「형용사」

「1」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언어란 본래 의미를 주고 또 받을 때 끊임없이 오차를 발생시키는 것인 터라, 이 형용사의 적확함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불균형보다는 균형을, 부조화보다는 조화를, 괴로움보다는 즐거움과 만족의 감정을 이 세계에 바라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제가 ‘사랑의 세계가 아름답지만은 않죠’ 라고 말했대도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심지어는 악취를 풍긴대도 말이죠. 우리는 그 ‘악(惡)’의 의미를 바로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이희주의 『사랑의 세계』는 이러한 것들을 말합니다. 직접 맡아보기 어려운 나의 입 냄새를 경험하게 하는 마스크 같은 걸 닮았습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견디는 건 너무나도 괴롭지만, 악취의 원인도 처치 방법도 알 수 없어서 – 실은 냄새 따위를 진지하게 고민하기엔 우린 너무 바쁘니까요 - 대충 뿌려 놓은 싸구려 탈취제를 보란 듯이 걷어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한 발짝씩 고통스럽게 나아갈수록 가까워지는 곳이 아름다움이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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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이야기」, 「여름」, 「또 하나의 신화」 세 단편이 연작 형태를 이루는 연작 소설집 『사랑의 세계』는, 일본의 도시 동경이라는 공통의 배경을 두고 인물과 사건이 느슨하게 그러나 긴밀히 연결된 연작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든 최초의 감상은요. ‘냄새······ 같은, 그런 지적을 받은 건 오랜만이랄지, 실은 처음이라, 뭐랄까, 인간으로 까발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원래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내가 어떡할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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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 「탐정 이야기」는 올해 안에 비행기를 타야 할 ‘운명’이라 말하는 목란선녀의 한 마디에 동경으로 건너온 화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화자가 거주하는 여성 전용 셰어 하우스와 직원으로 고용된 편의점에서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괜히 뒤를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모종의 섬뜩함이 있습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의 첫 단추는 서사의 구멍에 있습니다. 「탐정 이야기」의 곳곳엔 예상치 못한 순간 뚫린 구멍들이 놓여 있습니다. 서사의 구멍은 마지막까지 메워지지 않습니다. 뚫린 틈 사이를 바람이 비집고 지나가듯 몸을 움츠리게 되는 시린 감각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모름의 영역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이 세계의 모양이 되레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수 억 년 전부터 같은 모양이었던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어 하우스 안에서 벌어지는 도난 사건이나 204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체 모를 악취, 가까운 모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속 시체의 묘연한 행방 같은 구멍들이 남긴 두려움과 찝찝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더군요. (촘촘히 연결된 이야기 조각들은, 이어지는 「여름」과 「또 하나의 신화」를 통해 『사랑의 세계』로 꿰어집니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주 경험했던 것 같았거든요. 예를 들면 미래 같은 거 말이죠. 존재함은 분명한데, 뭐랄까 그걸 진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질기게, 지독하게, 현재에 침범해 오는 게. 사람 미치게 하죠. 당장 30분 뒤에 죽을 수도 있다는 (······) 가능성도, 실은 미래인 거잖아요.

 

그러한 연유로 나 또한 ‘미래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벌 떨었습니다.’ 과거형만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면서 미래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화 속 인간은 알면서 선택하는 담대함이 아니라,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결국 화살이 과녁을 꿰뚫는 형식으로 예언을 실현시킵니다. 어찌보면 그런 몸부림이 인간의 진실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왕과 별다를 바 없는 인간이니까요. 지옥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신에게 놀아났다고 믿는 순결한 피해자가 되는 편이 나으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아름다운 것보다 진실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 「탐정 이야기」 중에서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실마리들만 빈칸으로 남겨둔 치졸한 세계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정답 따위를 찾는 데 일생을 쏟으며 불행에 허덕이는 인간.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간에게 오만한 탐정의 피가 흐르는 터라고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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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탐정 이야기」의 고조된 긴장감을 이어가는 두 번째 단편 「여름」은, 동경에 거주하는 친구 지은의 집에 머물게 된 효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효진은 이 이야기에서 관찰자 위치에 놓인 인물로, 효진의 시각으로 보는 사랑의 세계가 제법 흥미롭습니다. 지은과 지윤과 마이 세 인물을 통하여 효진이 관찰하게 되는 사랑들은 각각 일 방향의 성격을 띱니다. 또 비극으로 빠르게 달려가죠. 다음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은과 묘한 기류를 보이는 류 상이 사장으로 있는 술집의 한 탁자에 둘러앉은 효진과 지은, 지윤, 마이가 있습니다. 류 상은 지은의 테이블에 끊임없이 음식을 내어 옵니다. 지은에게 “지난번에 준 김치 잘 먹었어. 쿠키도 진짜 맛있더라.”“특히 초콜릿 코팅을 씌운 하트 모양 쿠키가 괜찮더라구요.” 라고 말하면서요.

 

며칠 전 지윤은 지은에게 쿠키 세트를 선물했습니다. 류 상이 쿠키를 언급한 이후 일그러진 인상의 지윤의 팔을 마이가 붙잡습니다. “지윤.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 살얼음을 걷듯 위태로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효진이 있고요.

 

네 사람을 감도는 숨 막히는 공기는 다음의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나나미의 말이 옳아요. 사랑은 이야기 속에나 있어야하죠. 그런 꼴이 되어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게 오히려 더 잔인한 것 같습니다. 어디서 객사라도 했다면 애틋하기라도 하지. 질기게 살아남은 탓에 아름답게 기억될 권리랄지, 그런 것도 빼앗긴 거잖아요. 안 그래요?’ 정말 그래요. ‘왜냐면 삶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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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달라 보이지 않아요. 이른 아침 갓 나온 빵과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사는 부지런함과 단정함 뒤 놓인 “아, 김 상은 뭘 모르시는구나. 죽음까지 불사해야죠. 그러지 않는 게 사랑인가요.” 의 ‘도깨비 같은 원한’은, 한 끗 차이니까요. 평범하고 흔해 빠진 얼굴들 모두 하나쯤은 미치광이 같은 모습을 갖고 있을 텐데요. 다만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더랬죠. 육욕은, 지옥이네요.


 

나는 당신들이 나를 징그러워 할 걸 압니다. 미친 여자라고 부를 것도요. 그러나 실은 나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너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중얼대다가 남몰래 비명을 지르거나 토할 때까지 음식을 쑤셔넣고, 길가의 연인들을 저주하는 사람들보단 훨씬 솔직하다고 자부합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추하다고, 끔찍하다고 해도 끈끈한 먼지를 벗겨내고 맑은 물에 눈을 씻듯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남는 것은 하나. 결국에 사랑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 「또 하나의 신화」 중에서

 

 

앞서 신화 속 인간에 대한 대목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이 대목에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가끔은 아름다운 것보다 진실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참 재미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의 전생까지’ 도 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연민함으로써 나의 행복을 저울 달고 합리화하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물론 곧 내 상황도 다르지 않게 축축하다는 걸 깨닫지만요.

 

또 오만함으로 점철된 예상과 기대를 배반 당하면서도 겸손함의 미덕을 배우기 보다 본래 내 것이었던 걸 빼앗긴 것처럼 굴며 끝내 더 큰 비극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끔찍한 내가 나라는 것’ 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직면하고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선택을 행하는 것 또한 인간이라면요. 불쾌한, 그래서 은폐된 진실을 발굴하고자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면요.

 

다시 냄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번엔 락스 냄새입니다. 단편 「여름」은 내내 효진이 일본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맡게 되는 락스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바닥에서부터 눅눅한 절망을 키우던 비. 커튼과 이불과 사람의 마음에 곰팡이를 슬게 했던 그 끝없는 빗속에선 모순적이게도 락스 냄새가 났으니까요.’ 냄새의 공통점은 참으로 지독하다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올해의 긴 장마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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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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