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기저기 앉아봐야 여기가 진짜 내 자리인 줄 알지" - 그 곳이 멀지 않다

극단청우 35번째 작품, 연극 <그 곳이 멀지 않다>
글 입력 2021.06.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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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태대각간 김유신과 태종무열왕의 딸 지소의 자식, 원술은 겉보기에는 남 부러울 것 없는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는 화랑도 수업에서 친구 안남과 검술을 겨루다 패할 것 같아지자 다친 척 하여 모면하고 부모님을 의식해 늘 그랬듯 모의고사 성적표마저 조작한다.

 

원술은 생일날 화랑도 친구 삼릉, 산새, 안남과 같이 클럽에서 파티를 하는데 서역에서 유학한 산새가 선물한 환각 성분이 있는 광대버섯을 접하게 된다. 음주 승마로 사고까지 낸 원술은 이를 본 친구 희명을 두고 도망치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집에 왔으나 결국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된다.

 

한편, 나당전쟁 중인 신라의 유신은 자식 원술이 이번 전투에 참여해서 가문의 명성에 맞게 공을 세웠으면 하고 원술은 그런 아버지의 눈총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해 결국 무관시험에 합격한다. 원술은 전투 출정 전날 친구 희명을 만나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하고 결의를 다지며 이전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마음을 다잡고 전쟁에 나가게 되는데…

 

 

 

김원술(원술랑)은 누구인가? (네이버 지식백과)


 

신라는 668년(문무왕 8)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함락시키고, 다시 고구려 백성들을 받아들여 당나라 지배하에 있던 백제의 옛 땅을 점령함으로써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당나라 고종은 크게 노해 당나라와 말갈의 연합군을 보내 신라를 공격하였다. 672년 석문(石門 : 황해도 瑞興 일대) 전쟁에서 신라의 장군 효천(曉川)과 의문(義文) 등이 죽어 비장(裨將)으로 참전했던 원술도 또한 싸워서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보좌하던 부관 담릉(淡凌)이 만일 죽더라도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살아서 뒷일을 도모함만 같지 못하다는 이유로 만류하였다. 이에 전장에서 죽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그러자 아버지 유신이 왕명을 어기고 가문의 명예를 저버렸다며 목을 벨 것을 왕에게 청했으나, 문무왕이 용서해 주었다. 원술은 부끄러워 감히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시골로 숨어버렸다.

 

김유신이 죽은 뒤에 원술은 어머니 지소부인을 만나려고 했으나, 지소부인은 원술이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며 자기도 어머니가 아니라며 만나기를 끝내 거절하였다. 이에 원술은 담릉 때문에 일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탄식하면서 태백산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675년에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당군과 거란, 말갈의 연합군이 매소천성(買蘇川城 : 지금의 경기도 楊州)으로 침공해 왔다. 이 사실을 듣고 이번 싸움에서 죽음으로써 지난번의 치욕을 씻겠다는 각오로 전장에 임해 큰 공을 세웠으나, 부모에게 용납받지 못한 것을 한탄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퓨전극 & 젠더프리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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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j-bravo_life 유튜브)

 

 

이 연극은 퓨전 작품이다. 당시 상황과 인물들만 차용했을 뿐, 사용하는 용어나 배경 그리고 의상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줄거리를 읽어 보았을 때, 퓨전극일 것은 예상하였지만, 화랑들의 이야기여서 당연히 한복을 입고 나올 줄 알았는데, 4명의 화랑이 현대 군복을 입고, 견장에 화랑을 뜻하는 상징을 단 것이 의외였다.

 

이 극에는 4명의 화랑(원술, 삼룡, 산세, 안남)이 등장한다. 원술과 삼룡, 산새는 노는 것에만 관심 있다. 반면, 안남은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여 자신이 가진 출생적 신분을 뛰어넘으려 하는 동시에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에게 질투심을 가지고 있다.

 

극은 이 4명의 화랑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지며, 원술과 안남을 여자 배우가 맡음으로써 성비의 비율을 맞추고 있다.

 

 

 

내가 앉을 자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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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을 제외하고, 원술, 삼릉, 산새는 방황하는 삶을 산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원술의 친구 희명 또한 그러하다. 희명은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바뀌는 친구이다. 원술은 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게 계속 바뀌냐고. 그가 대답한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서라고.

 

이 극이 전반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방황하는 청년들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원술은 안남과 같이 비장으로 전쟁터에 나서고, 삼릉과 산새는 비장이 아닌 다른 직책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하지만, 아버지인 김유신이 원술에게 보낸 서찰을 다 같이 읽어보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김유신이 원술에게 보낸 서찰에는 “원술과 함께 있는 화랑들 중에 당나라의 간첩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김유신은 원술에게 혼자 보라고 당부의 말을 적었지만, 이미 원술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서찰을 읽은 뒤였다. 이 사실을 안 순간, 4명의 화랑은 모두 공격적인 태세를 갖추고 서로를 의심한다.

 

하지만, 3명의 화랑이 모두 ‘원술’은 의심하지 않고 서로를 의심하자 원술은 분노한다. “왜 나는 의심하지 않는 건데!” 이에 안남이 말한다. “여기 너보다 출신이 명확한 사람이 어디 있어”. 원술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김유신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피해가는 것마저 괴롭다. 김유신 장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평생 그를 짓눌러 왔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버지처럼 될 수 없는데,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주변의 기대와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말이다.

 

점점 갈등은 고조되고, 급기야 안남은 갈등의 원인이 된 원술을 죽이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원술을 보호하려다 삼릉이 죽이게 된다. 원술은 삼릉의 죽음에 충격받고, 그의 시신을 가지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반면, 안남은 당나라의 첩자였던 산새를 사로잡아 큰 공을 세운다. 김유신은 홀로 집으로 돌아온 원술을 보고 분노한다. 하지만, 기존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단지 내가 김유신의 자식이라서 비장이었던 안남도, 당나라의 첩자였던 산새도 내가 죽기를 바랐어요.”

 

 

김유신 : “그럼 이제 뭘 할 거냐?” 

김원술 : “뭘 꼭 해야 해요? ... 뭘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목적 없이 사는 건 아니에요"

 

 

위 대화가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술이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김원술을 ‘김원술’로 보지 않고, ‘김유신 아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것도 목표로 삼지 않는 원술의 모습을 꾸짖는 김유신에게 원술은 '이 세상 모두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바라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있지 않아도 목적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 말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목적이 있는데 바라는 것이 없을 수 있을까?

 

 

 

애매한 메시지, 그리고 공감의 어려움


 

애매한 메시지. 본 극에서 아쉬웠던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극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방황하는 젊음’을 표현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목에 나와있는 ‘그곳’은 자신을 둘러싼 부가적인 것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이에 극 또한 원술랑이 방황을 멈추고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아 나서며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은 이러한 메시지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거의 마지막 한 장면(단원)에서 극의 메시지가 보였다.

 

또한, 왜 이 메시지를 원술랑과 귀족 가문의 자제들 중심 집단이었던 화랑을 통해 전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에 원술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주인공의 설정부터가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일으키기에는 부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김원술은 줄거리에도 나왔듯이 다이아몬드 수저이다. 당시 신라에서 김유신의 지위는 신라 그 자체였다. 너무나 훌륭한 아버지를 둔 자식의 마음을 나는 이론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부모의 기대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원술의 행동은 철없이 보인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감정 이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이 극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과연 내가 앉을 곳은 어디인가”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확고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그 꿈을 포기하게 되었고, 다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그 꿈이 다시 바뀌었다. 극에서 희명이 그랬듯, 나도 그녀처럼 내가 앉은 자리를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계속 확고했던 꿈이 바뀌는 나 자신이 싫었다. 심리적으로 우울하기도 했고,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내 능력의 한계로 오는 좌절감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냥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앉을 자리를 찾았는가.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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