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의 것도 아닌 예술 [시각예술]

글 입력 2021.06.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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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작품을 만든 작가의 소유물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누구도, 심지어 작가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작품마다 5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수십만에서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완성하곤, 길어야 2주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가 끝나면 곧바로 작품을 해체한다. 그리고 말한다. 예술이란 소유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크기변환]Christo-and-Jeanne-Claude-in-one-of-their-most-famous-installations-the-Pont-Neuf-in-Paris-1985.jpg
Pont Neuf, 파리 1985 (출처: Wall Street International Magazine)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잔 클로드 부부의 이야기다. 불가리아 출신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모로코에서 태어난 잔 클로드는 파리에서 연을 맺는다. 이후 함께 작업을 시작한 둘은 대지예술(Land Art)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다. 대지예술 이란 산, 바다, 도시 등 자연경관을 하나의 캔버스처럼 사용하는 예술이다. 196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지예술은 기존 예술의 상업성과 전통적인 미술관, 즉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 대한 반감으로 이를 벗어난 자연에서 작업하고, 작품을 완성한 예술 운동이다. 자연이 배경이 되는 만큼 작품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특징을 지닌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역시 대규모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그들은 특히 ‘포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선물 포장하듯 자연물과 인공물을 대형 천과 밧줄을 이용해 통째로 감싸는 방식이었다. 단순한 아이디어 같이 들리지만, 현장 사진을 보면 그 압도감에 놀랄 수밖에 없다. 미술 시간에 처음으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품을 접했던 당시의 충격이 지금까지 선명히 기억날 정도이니 말이다.

 

 

[크기변환]Wrapped Reichstag01.jpg
Wrapped Reichstag, 베를린 1971–95 (출처: Wolfgang Volz) 

 

 

대표적인 작품인 ‘포장된 베를린 국회의사당’이다. 사진 속에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의 크기로 가늠해보면 얼마나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였는지 알 수 있다. 아니 사실,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라도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오고 말았을 존재감이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1971년에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포장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실현된 건 1995년. 프로젝트 준비에만 24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국회의사당이라는 공공건물을 감싸는 것이니 의원들과 총리를 비롯한 여러 담당자의 허락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 동독과 서독 간 통일이 이뤄지면서, 도시 전체적으로 붕 뜬, 긍정적인 분위기 덕에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1,000명이 넘는 인력, 15km가 넘는 밧줄과 100,000제곱미터의 은회색 천 등 대규모의 인적, 물적 자원을 관리하는 일은 분명 복잡하고 험난했으리라 예상된다.


정부 지원금이나 후원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도 굉장히 인상 깊은 점이다. 지원해주는 이가 생기면 그로부터 독립적으로, 본래 의도대로 작품을 완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만들어 팔면서 자금을 마련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렇게 힘들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작품을 단 2주간 전시했다.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둔 모습을 보고 정부에서 프로젝트 연장을 요청했음에도 단호히 거절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강렬해진다. 예술은 소유할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그 믿음을 흔들림 없이 지킨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의 믿음과 가치관을 말하기 위해 긴 시간 열정을 다한 모습, 예술을 넘어 삶에 대한 자세에서도 존경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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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rounded Islands, 마이애미, 미국 1980-83 (출처: Wolfgang Vo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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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ating Piers, Iseo 호수, 이탈리아 2014-16 (출처: Wolfgang Volz)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땅 위의 건물뿐만 아니라, 물 위의 섬을 포장하기도 했다. 분홍빛 천으로 마이애미의 섬을 감싼 작품이 대표적이다. 잔 클로드 타계 후, 크리스토가 작업한 ‘떠 있는 부두’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 전통적인 미술관을 떠나 자연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잘 담겨있다. 관객들은 천 위를 걸으면서 바다를 눈으로, 귀로, 손으로 느끼며 바다를 가르는 즐거움과 자유를 한껏 느꼈을 것이다.


한편 바다의 생태를 해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철저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해양 생물학자, 조류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와 함께 섬의 환경을 조사하고 40톤의 쓰레기를 제거했다. 전시 후에는 사용한 천을 재활용하거나, 작게 잘라 기념품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쓰레기가 남지 않도록 했다.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과 후, 그 영향 또한 고민했다는 점에서 ‘대지예술’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크리스토 자바체프 또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고, 오래 품어온 꿈이 떠올랐다. 그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짧은 기간에 맞춰, 세계 어느 곳이든 달려가 직접 관람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9월이면 그가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파리 개선문을 포장한 프로젝트가 공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9월에 파리에 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생각보다 섭섭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예술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이 조금은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보진 못하더라도 나는 그즈음 TV와 온라인 매체를 통해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예술, 그것이 곧 그들이 말하는 바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를 직접 만나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이글을 작성하고, 읽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방법.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성실하고 치열한 삶의 모습까지.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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