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문동

글 입력 2021.06.1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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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은 참 신기한 동네다. 이 동네를 처음 오게 된 건 대학교 때문이었다. 아직도 대학교 OT 날, 이문동과의 첫 만남은 잊히지 않는다. 아빠 차를 얻어 타고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길을 고르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은 5분, 그런데도 바깥 풍경은 좀 수상했다. 내가 생각하던 대학가는 길거리마다 옷 가게, 화장품 가게,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유동인구는 좁은 길이 터질 듯이 많고, 다닥다닥 붙어 선 가게에선 유행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그런 북적이는 분위기가 하나도 없었다. 구불대며 길을 돌고 나니, 거짓말처럼 학교 본관 건물만 삐죽 솟은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는 내내 조용하고 한적했다. 학교 건물로 빙 둘러싸인 캠퍼스가 신기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첫 인상이 싫거나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이문동은 묘한 구석이 있는 동네다. 예를 들면, 철길 건널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학 캠퍼스와 오래된 시장 골목이 공존한다. 대학교 과잠을 입은 새내기들과 과일을 파는 노점상 할머니들이 나란히 길을 차지한다. SNS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카페와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격인 음식점이 나란히 등을 맞대고 서 있다. 동네를 구성하는 연령층 간에, 공간 간에, 붕 뜬 간극이 이문동을 설명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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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문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된 건, 내가 대학 4년을 매일같이 출퇴근 도장을 찍던 곳이라서 그렇다. 아침 수업을 들으러 한 시간 반을 지하철을 타고 와서, 밤 10시는 되어야 느릿느릿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러는 동안 동네의 여러 밥집과 카페들을 돌았다. 날마다 하다 보니 이문동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동네가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현재 사는 동네로 이사했다. 이전에 살던 동네는 7년을 살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곳으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우리 동네’라는 생각이 들던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도 거의 5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이 동네에 대해선 모르는 게 더 많다. 아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는 동네에서 새로운 카페와 밥집, 가게들을 둘러볼 계기가 그다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전 동네는 빠르게 변해서, 이제는 가도 처음 보는 가게들뿐이었다. 별수 없이 나는 동네에 대한 애정을 이문동에 오롯이 다 쏟았다. 그래서 이문동은 나에게 유일하고 할 말 많은, 유난스럽게 각별한 동네처럼 느껴진다.

 

 

 

이문동과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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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의 교통은 극악이다. 서울 끝자락에 놓인 이 동네는 오고 가기가 역시 영 불편하다. 이곳을 찾아올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인데, 선택지가 1호선뿐이다.

 

1호선은 듣던 대로 열차와 역의 상황이 꽤 열악했다. 예전에는 그 점이 무척이나 불만스럽기도 했다. 유난히 굉음과 진동이 느껴지는 오래된 열차, 특정 구간에선 안내 방송과 함께 꺼져버리는 조명, 장날이면 시장의 온갖 물건들과 함께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차 안, 모든 게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청량리행과 동묘앞 행, 온갖 자잘한 종착역이 내 갈 길을 끊어 먹는 것도 싫었고, 덕분에 지각 위기에 놓이면 올라야 하는 지겹도록 많은 역의 계단들도 싫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1호선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아주 가끔만 1호선을 탄다. 학교에 볼일이 있을 때나, 그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를 만날 때, 몇 달째 못 먹은 정문 앞 콩비지 찌개가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을 때 등등…

 

그렇게 간만에 1호선을 탈 때 보면, 나는 1호선의 환경에 제법 잘 적응된 사람임을 발견하다. 청량리행이 주로 오는 시간대는 피하고, 떠나는 시각은 대략 열차가 한산할 때로 잡는다. 굳이 검색하거나 기억하지 않아도 몸이 아는 가장 빠른 환승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애증의 1호선은 불편하고 싫은 것에 대해 잘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익숙해지고 나면, 통학 길은 풍경이 된다. 없으면 섭섭한 익숙한 풍경으로 기억된다. 어느 틈을 비집고 라도 추억은 자라나는 모양이다. 이제는 1호선을 거치지 않고 만나는 이문동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론 실제로 그런 방법도 없다.)

 

 

 

이문동의 먹거리들



이문동의 물가는 아주 저렴하다. 이곳 대학교의 학생식당들이 굉장히 저렴한 영향이 큰 것 같다. 매일 바뀌는 면 메뉴는 1,500원, 국밥이나 돈가스 종류는 2,500원이면 먹을 수 있었다. 여름이면 챙겨 먹던 과일 빙수는 2,500원이었다. (지금은 조금 올랐다고 한다.)

 

밖에서 사 먹는 메뉴도 저렴하긴 매한가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무척 맛있는 콩비지 찌개와 김치찌개를 7,000원에 판다. 이곳은 내가 학교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하던 때, 교수님과 조교님이 데려가 주신 곳이다. 찌개들은 간이 좀 센 편이라서 더 좋고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큼직한 뚝배기에 나온다. 운이 좋으면 밑반찬으로 오징어 젓갈이 나오고, 사장님은 밑반찬이 떨어지면 더 가져다주신다. 예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주로 찾아오시던 맛집이다. 나는 여기 비지찌개를 정말 좋아해서, 고작 5개월 교환학생을 간 동안 내내 비지찌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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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이문동에는 카페나 밥집도 이곳의 분위기가 있다. 정문 근처 건물 2층의 카페는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는 내부가 참 귀여운 곳이다. 이곳의 널찍한 책상과 작은 소품들은 최신 유행 인테리어의 카페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토스터와 식빵이 놓여있어 얼마든지 맘껏 가져다 먹을 수도 있다. 좌석마다 푹신하게 방석이 깔리고 곳곳에 콘센트가 놓여있다. 덕분에 여유 시간이 있을 땐 여기에 와서 잠깐 과제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열심히 떨었다.

 

휴대전화 충전도 맡아 주시는데 고속충전기인지 충전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아무튼, 완벽한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카페에 간다 해도 이곳의 편안함과 따뜻한 감성은 절대 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문동은 매번 저렴한 물가와 친근한 감성으로 나를 배부르게 했다. 4,000원짜리 냉면과 3,500원 라볶이가 최고의 한 끼였던 나는, 다른 동네에서는 이 두 배를 주고도 못 고르는 메뉴가 그토록 많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웬만큼 유명한 맛집에서도 음식 앞에서 좀처럼 사진기를 들지 않는 나지만, 최근 1년간은 이 동네에서 먹은 음식마다 사진을 찍어 모으고 있다. 나에게는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음식과 공간들, 가장 자주 생각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문동과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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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이문동의 모습은 굉장히 빠르게 변했다. 요즘에 이문동을 가보면 내가 1, 2학년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습이 달라졌다. 이문동에 재개발이 진행된다는 얘기는 쭉 있었는데, 진행이 눈에 보이는 속도가 점점 빠르다.

 

익숙한 가게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지난달에는 후문 오른편 가게와 건물들이 있던 자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2, 3년 전에 자주 가던 버블티 가게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공사장 펜스만 높게 둘러쳐져 있어, 아무도 이곳을 보고 버블티를 떠올리지 못할 것 같다.

 

가게들이 사라지는 소식들이 속속들이 들려왔다. 운이 좋으면 근처로 옮겨서 다시 영업하고, 아니면 아주 멀리까지 옮겨가야 했다. 물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려, 어딘 가에서 다시 열었는지도 알 수 없는 가게들이 훨씬 많다. 이제는 사라진 가게들의 상호로 긴 목록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자꾸자꾸 무언가 없어지니까 이문동에 가기가 겁이 났다. 오랜만에 가게를 찾아갈 때는, 최선의 검색으로 여전히 문을 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문동과 내가 멀어질 날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여전히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학교를 굳이 자꾸 찾아가게 된다. 한 5년쯤 뒤에 다시 여길 찾아오면 내가 아는 모습은 아무 데도 없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요즘의 변화를 내다보면 슬픈 확신을 마음에 자꾸 새기게 된다. 그때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동네는 없어지게 된다. 익숙한 얼굴, 아는 간판, 정겨운 맛 같은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이문동에 사는 누구도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나마나 한걱정도 아쉬움에 하게 된다.

 

오늘의 이 글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문동의 모습을 남긴다. 내가 기억하는 이문동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문동은 점점 더 달라지겠지만, 아마도 나에게 이문동은 영원히 이런 모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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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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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 노인
    • 아름답고도 낡은, 제 젊은 날의 초상화같은 동네입니다...
      낮설은 그리움 같은 이문동...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경원
    • 노인저에게도 비슷하게 기억될 동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낯설은 그리움 같다는 말씀이 인상깊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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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학번 김모군
    • 많은 생각이 스쳐가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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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닫기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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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원
    • 17학번 김모군부족한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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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동지박령
    • 2014년 서울로 처음 상경했을 때 마주한 동네. 그리고 그로부터 중간의 군 휴학기간을 제외한다면 6년째 지금까지도 살고있는 동네. 때로는 지긋지긋하지만 또 어쩌면 아주 그리울.. 그런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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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동토박이
    • 이믄동에서 자라고 결혼후 아이4살까지 살았어요. 서울스럽지 않게 서민냄새,  정감 넘치는 동네에요. 재개발된다니 제 학창시절 추억의 골목들도 다 사라지겠네요 아쉬워요. 글로 추억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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