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깐,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 [미술]

수없이 모르고 지나쳤던 공공미술 이야기
글 입력 2021.06.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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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궁금했다. "저건 뭘까?"

 

 

해머링맨 발.jpg


 

고등학교 때 시험 기간만 끝나면 자주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가는 큰 길을 지나쳤는데, 거리 한복판에 거대한 사람 조각상 하나가 서 있었다. ‘그냥 조각상 아냐?’라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것이, 워낙 거대했고 움직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와 진짜 크다, 움직이기까지 하네!” 하고 마냥 신기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수도 없이 같은 거리를 반복해서 걸으며 조각상을 지나쳤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궁금했다. 왜 하필 저기에 어떤 사연이 있길래 거대한 조각상이 도심 한복판 거리에 놓여있는지, 문득 조각상의 사연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생긴 궁금증, 그것이 바로 이번에는 모르고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본 조각상은 ‘공공 미술 작품’이었다. 이번 기회에 작품의 탄생 비화를 비롯하여,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 도심 속 숨겨진 예술 조각, 즉 공공 미술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 나섰다. 덧붙여, 본문 곳곳에는 필자의 아주 사적인 시선과 이야기도 조금 들어있다.

 

 

 

1. 어제도 오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 해머링 맨(Hammering man)



앞서 언급한 광화문 거리의 거대한 사람 조각상부터 소개한다. 작품명은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다.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연작으로 미국 시애틀,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일본 도쿄에 이어 7번째로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해당 철제 거인은 키는 22m에 무게는 50톤으로 가장 거대한 체구를 자랑한다.

 


해머링맨.jpg
작품명: Jonathan Borofsky 'Hammering Man' 2002, Steel, Aluminium/ 출처: 세화미술관

 

 

형태를 자세히 뜯어보자. 전체가 검은색으로 페인트칠 되어 있고, 몸통은 꽤 얇고 납작한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지만 비율은 꽤 안정적이다. 그 외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거대한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2002년 6월 4일에 만들어진 이래로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35초마다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 동작을 자세히 보면, 한 발짝 앞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딘 상태로 목은 살짝 구부리고 한쪽 손에는 어떤 평평한 판을, 다른 한 쪽 손에는 망치를 들고 아래로 내리치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느리지만 아주 성실하게 반복되는 망치질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기계 같은 모습은 묘한 동질감마저 들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매일 일을 하는 인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열심히 망치질하는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해당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해머링 맨은 망치질하는 움직임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전달한다. 아직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음에도 해머링 맨은 여전히 주 70시간을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노동은 첫째로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을 말하고, 둘째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은 삶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혹여나 노동에 치이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오직 노동에 대한 보상 또는 대가로 생계를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일하며 삶을 이어간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노동의 생태계가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방식과 형태로든 서로에 대한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해머링 맨처럼 일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가 어떻든 각자의 ‘망치’를 들고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오늘도 광화문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방식대로 일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머링 맨은 밤낮으로 꾸준히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2. 우리 만나서 이야기해요, 미러맨(mirror man)



영화 <어벤저스 2>,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 드라마 <킬미힐미> 등 여러 차례 영화 및 방송 출연으로 인해 유명세가 된 작품이 있다. 작가도 작품명도 잘 모르지만, 보자마자 ‘아 거기, MBC 사옥 앞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장소를 먼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번 기회로 기억하려 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공미술 조각가 유영호 작가의 미러맨(Mirror man)으로, 정식 명칭은 '스퀘어-M, Communication(미디어 세상, 소통)'이다.

 


상암 MBC 미러맨 출처 유튜브 [원킴] 룰루랄라이딩 캡처본.JPG
▲출처: 유튜브 [원킴] 룰루랄라이딩 캡처본

 

 

가로 7.2m, 세로 6m, 높이 6m의 조형물로, 2013년 11월에 제작되어 상암동 MBC 사옥 앞에 세워졌다. 중앙에 빨간색 사각 틀을 사이에 두고 푸른빛이 도는 똑같이 생긴 두 인물이 대칭을 이루며 앞으로 전진하려는 듯 마주 보고 있다. 이 대칭을 통해 실제로 거울은 없지만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게다가 금방이라도 서로의 검지가 맞닿을 것 같은 극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마치 영화 ET 속 주인공 소년 엘리엇과 이티가 손을 맞대는 명장면을 연상케 한다.

 

더 자세히 보면, 사람의 형체가 조각조각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약 2천여 개라고 한다. 야간이 되면 각 모서리에 빛이 들어오는데 이는 더욱 사이버틱한 느낌을 나타내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감상할 수 있다.

 

 

미러맨 야간.jpg

  

 

어떤 각도에서 보면 거울에 비춘 모습 같다. 프레임 사이에 같은 대상이 있는데, 이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결국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게 바로 소통의 시작이다.

 

- '미러 맨' 작품 의도

 

 

작품 의도를 살펴보면 해당 작품이 왜 꼭 상암 MBC 앞 광장에 설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작품 주제는 “미디어 세상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소통”이다. 여기서 사각 틀은 TV를 상징한 것으로 미디어 세상을 표현한 것이며, 두 인물이 서로 손가락을 맞대려는 듯한 모습은 미디어를 통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 및 상호 소통과 교류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러맨은 미디어와 사람과의 만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인 동시에 상암 MBC 앞 가장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작품이 해외에도 설치되었는데, 세워진 곳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다르다. 두 번째 미러맨은 대지진으로 큰 아픔을 겪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남미 에콰도르 키토에 세워졌으며 '남반구와 북반구의 만남'을 의미한다. 세 번째 미러맨은 터키 부르사에 설치되었는데 6.25 혈맹인 친선우호는 물론, 실크로드의 역사, 나아가 '동서양의 교류'를 의미한다. 아무리 장소에 따라 의미와 목적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공감 등을 추구하는 유영호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남, 소통, 교류'의 의미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 또 유영호 작가의 미러 맨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3.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카르마(Karma)



가끔 쇼핑하러 들르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는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형상이 있다. 바로 3번 게이트 앞에 설치된 서도호 작가의 ‘카르마(Karma)’라는 작품이다. 처음에 작품을 보았을 때의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서커스단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몸짓에 불안했지만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되는 모습에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절대 동시에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뜻하지 않은 낯선 경험을 한 것이다.

 

 

카르마.jpg

 

 

해당 작품을 아래서부터 위로, 그러고 나서 사방면으로 오밀조밀 뜯어서 보면 재미있다. 처음에는 서로의 눈을 가려준 채로 사방으로 팔과 발을 힘차게 뻗어내는 사람의 형상이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어깨 위로 쭈그려 앉은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꼭짓점으로 이어져 결국 하나의 굴곡진 돔의 형태를 이루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균형적인 느낌이 든다. 덧붙여, 한 데로 모아진 작은 사람들을 동그란 원 5개가 감싸고 있어 훨씬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서로의 눈을 가린 채 인간띠를 잇는 사람들의 수가 무려 2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명인 ‘카르마’라는 낯선 단어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르마(Karma)는 산스크리트어인 Karman을 번역한 단어로, 서도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동양적인 관념에서 바라보면, 무수히 많은 형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처럼 ‘나’라는 개인은 수많은 다른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 결과로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내가 함께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카르마이다.

 


서도호 카르마 류주항.jpg
▲출처: 류주항 사진

 

 

작품 앞에 놓여 있는 소개 글에서는 “서로 연결된 시간과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미래가 원인과 결과의 산물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걷는 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고,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이면서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를 의미한다. 눈을 가린 것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암시하기도 하고,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연상시킨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카르마'를 감상해 보면 많은 생각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특히, 현재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고 연결됨으로써 존재해 왔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게 다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한결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짧고 강렬한 감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도심 속 공공미술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



앞서 살펴본 세 공공미술 작품들의 공통점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에 세워두었다는 점이다. 장소의 특수성,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작품세계 등 많은 것들을 연결 지어 보았을 때 작품 나름대로 각각의 의미가 존재했다. 덧붙여, 각각의 공공미술 작품은 분명 우리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해머링 맨은 노동의 숭고함에 대한 존경을, 미러 맨은 미디어 세상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소통을, 카르마는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방식을 전한다. 누군가는 글이나 말로 전하듯, 공공미술 작품은 한눈에 보일 만큼 거대한 형상으로 의미를 전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알아보고 다시 보았을 때 가슴이 말랑해지는 게 느껴졌다.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 그렇고, 그 작품 의도 안에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이유, 마음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위로, 씁쓸함, 감동 등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머릿속에 담아만 두던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통해 눈과 마음으로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느꼈고, 앞으로 거리를 걸으며 가슴이 말랑해지는 경험을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을 계기로 다음번에 같은 거리를 걸을 때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이는 것에 주목하게 됐다.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낯선 조형물을 마주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보길 바란다. 아주 찰나의 말랑해지는 자극을 통해 같은 거리도 다르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앞으로도 일상 속 숨겨진 예술 조각과 흔적을 찾는 산책자의 여정은 계속된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에디터.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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