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영화]

지금, 내 앞에 엄마를 죽인 소년이 있다.
글 입력 2021.06.11 02: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REVIEW ***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메인 포스터.jpg

 


3년 전 엄마가 살해된 후, 소녀 '자허'와 아빠의 삶은 엉망이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아빠와도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소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엄마를 죽인 소년 '유 레이'와 마주치게 된다.

 

예상보다 빨리 석방된 그를 보고 소녀는 분노에 휩싸이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과거의 여름


 

엄마와 함께한 여름의 기억은 자허에게 따뜻하고 포근하게 남아있다. 자전거 뒤에 앉아 엄마의 허리를 껴안고 여름 바람을 만끽했던 기억, 엄마와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간 추억, 놀이기구가 무서워 끝내 타지 못했지만 엄마에게 배운 교훈까지. 엄마가 있던 여름날은 평화롭고 즐거웠다.

 

가족들도 행복했다. 자허와 엄마, 아빠로 이루어진 가족은 형편이 여유롭진 못했지만 항상 단란했다. 남편을 향한 무한한 신뢰, 딸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엄마의 사랑은 가족을 끈끈하게 유지했다.

 

자허의 눈에는 항상 아빠에 비해 엄마가 아까웠지만, 집 앞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둘의 러브스토리를 듣던 순간은 행복한 여름날의 추억으로 남았다.

 

 

06.jpg

 

 

 

현재의 여름


 

하지만 엄마가 살해된 후,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 아빠를 찾으러 길을 나선 엄마는 어느 소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생계가 어려워지자 아빠는 도축장 고기들을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아빠의 직업 때문에 자허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냄새가 난다며 피하는 친구들, 자신의 알레르기도 모를 정도로 무심한 아빠, 마치 모든 상황을 안다는 듯 물이 새며 삐걱대는 집까지.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허의 시간은 3년 전에 멈춰있다. 특히 엄마와의 추억이 많았던 여름은 자허의 발을 자꾸 멈추게 한다. 길을 걷다 엄마와 딸의 모습이 보이면 행복했던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보더라도 엄마와 놀이공원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영화의 대조되는 색감이 과거와 현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엄마와 함께한 여름은 따스한 색감이 가득한 느낌으로 그려지지만, 현재의 여름은 어떤 효과도 없이 그저 선명하게 담길 뿐이다.

 

 

07.jpg

 

 

 

유 레이와의 만남


 

의미없이 집과 학교를 반복하던 자허는 어느날 길거리에서 엄마를 죽인 유 레이를 발견한다.

 

소년범이어서 가뜩이나 적은 형량이었는데 그 형량보다 더 빨리 석방된 그를 보고 자허는 분노한다. 유 레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유흥을 즐기고, 심지어 집에 돈도 많아 걱정할 일도 없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항소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자허는 유 레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접근의 목적은 복수였다. 식당에서 나이프를 발견했을 때, 유 레이가 면도칼을 주며 면도를 부탁했을 때 자허는 갈등한다. 두 번 다 시도하지 못했지만, 손에 칼을 쥔 순간 자허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 레이와 만나는 날이 늘어나고, 그와 꽤 가까워지면서 자허는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걱정 없는 불량 청소년인줄 알았던 유 레이는 알고보니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부자 아들이라는 유 레이의 타이틀은 엄마의 재혼으로 생긴 새아빠 덕분이었고, 양쪽 부모 모두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03.jpg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기 싫어."


 

물론 가정 환경이 살인을 절대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유 레이는 살인자고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유 레이와 SNS 계정을 주고 받은 자허는 그의 프로필 사진에 담긴 의미를 물어본다. 주사위 굴리기와 비슷해보이는 사진은 어느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기차를 타게 된 청년이 보게 된 세 가지 장면, 그리고 선택으로 달라지는 미래. 유 레이는 사진을 설명하며 우리의 선택이 대부분 주사위 굴리기 같다고 말한다. 순간의 선택이 미래에 끼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느날, 자허는 결심한 듯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물에 빠진 자허를 보고 뛰어는 유 레이를 자허는 물속으로 밀어 넣어 죽이려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머리를 누르던 손에서 힘을 빼고, 둘은 같이 뭍으로 올라온다.

 

좀만 더 버텨서 엄마의 복수를 하지 그랬냐고 물어보는 유 레이에게 자허는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기 싫어"라고 답한다. 똑같은 살인으로 복수를 하지 않고 용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05.jpg

 

 

영화 내내 자허는 받은 것은 곧바로 되돌려주는 인물이었다. 왕따시키는 반 학생들에게 물감을 끼얹고, 아빠를 홀대하던 도축장의 전기를 끊어버린다. 아빠에게 무례했던 체육관 관장의 차를 돌로 그어 흠집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자허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택의 기로를 변경했다. 쉽지 않았을 그녀의 결정이 자허가 한 뼘 더 성장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층 성숙해진 자허는 아빠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간다. 몇년만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며 아빠와 소통하고, 무서워서 타지 못했던 놀이기구도 담담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내내 방황하는 눈빛을 보이다가 영화 후반부에서 후련하면서도 올곧은 눈빛의 자허를 본 순간, 나는 앞으로 자허와 아빠의 미래가 조금 더 밝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선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