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담은 언어, 그리고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 - 프로페서 앤 매드맨 [영화]

글 입력 2021.06.0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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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전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한 대영제국의 위상에 맞추어 모든 영어 단어를 정리하려는 “옥스퍼드 사전 편찬 작업”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머리 교수가 책임자로 부임한다.

 

동료 옥스퍼드 교수진들과는 달리 학위를 보유하지 못했지만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언어학에 조예가 깊은 그로서는 기쁜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하지만, 끝이 없는 작업과 부족한 인력,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로 다른 가족들이 견디는 희생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단어마다 인용을 찾기 위해 머리 교수는 편찬 작업의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출판되는 책에 동봉하고, 그 호소문은 정신 착란으로 인해 사람을 죽여 정신병원에 구금된 윌리엄 마이너의 손에도 들어간다. 살인의 죄를 지어 정신병원에 구금되었지만 다친 교도관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다른 교도관들의 존경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이 독서와 예술 활동을 이어가던 마이너는 머리 교수에게 수천 개의 단어 인용문을 편지로 보내고 머리의 사전 편찬 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알파벳 중 A의 작업을 마친 후, 마이너를 만나러 병원을 찾은 머리는 그가 구금된 병자인 줄 알지만 계속 우정을 이어 나간다. 마이너는 머리를 만나며, 그리고 그가 죽인 피해자의 아내인 일라이자와의 만남을 이어가며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유족들에게 자신의 연금을 전부 지급하고 문맹인 일라이자에게 글을 가르쳐 주면서 마이너는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는다. 불가능의 여인, 자신이 연모의 마음을 품은 대상을 향해 마이너는 머리에게 그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일라이자가 자신을 향한 마음을 이야기하며 현실로 이루어지자 더없는 괴로움이 마이너를 삼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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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떤 말을 평소에 쓰는지, 그 사람이 쓰는 말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우리의 입 밖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한다. 여럿이서 쓰는 말과 단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얻어 수십, 수백 그리고 수천 년을 이어오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나도 일찍 그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역사의 어느 한 모습으로만 자리 잡게 된다. 이런 말의 흔적을, 언어의 흔적을 모으는 것은 마치 그 말처럼 세상에 각자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고 떠나간, 머무르는 이들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과 같다. 말을 통해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배우고,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이에 말을 모아 정리한다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이 세상에 지나간 날들을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17세기의,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그 인용문을 찾아서 단어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작업 방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는 몇몇 옥스퍼드 교수들과 같이 지식인 계층으로서의 선민의식이 아닌 자긍심과 근면한 자세로 작업을 진행하며 민중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무릇 말이란 귀족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상스러운 말들도 또한 언어니까, 그 모든 언어의 흔적을 얻어 정리하고자 한다.


영화는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겪는 보통의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며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교수도, 광인도 그리고 가난한 가족을 잃은 이들이 보여주는 고뇌, 열정, 갈등, 그리고 사랑까지.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은 글로, 언어라는 매개체로 이어지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안을 나누며 결국 서로를 돕는 관계로 자리하게 된다.

 

주연 인물들 외에도 조연들이 보이는 감정도 섬세하게 자리한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때론 그의 선택으로 인해 지친 모습을 보이다가, 살인자의 도움으로 사전을 편찬했다는 것에 분노했지만 남편과 마이너의 우정을 이해하는 머리 교수 아내의 모습은 인내와 공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신병원의 간수 머시는 동료를 구한 마이너를 진심으로 돕고 인간으로서 연민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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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나선 후 지금까지, 가장 머릿속에 남는 장면은 마이너가 일라이저가 문맹인 것을 알고 글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씬이다. 글을 배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일라이저에게 마이너는 글을 배운다는 것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일라이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동안 마이너 자신도 스스로를 괴롭히던 환상과 죄책감에서 자유를 느낀다.


무언가의 정의를 알고, 그렇게 배운 정의로 나만의 이야기와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실로 사람을 이전의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나가게 하는 자유의 문을 여는 행위다.

 

교수와 광인이 우정을 나누게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족이 죄책감과 미움 없이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상상과도 같은 일의 시작도, 누군가가 일생을 다해도 알파벳의 마지막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던 방대한 사전을 살피며 꿈을 꾸게 되는 것도 모두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자유를 얻을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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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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