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움의 발견' ① '배움'의 둔갑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03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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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여러 얼굴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현대 의학과 공교육을 거부하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 아래서 자란 그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어머니가 만든 천연 오일을 바르며 버텨야 했고, 16살이 될 때까지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타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제·자매들과 집 근처 폐철 처리장에서 살이 찢길 위험을 감수하는 위험한 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생 아버지의 말만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며 살던 타라는, 아버지라는 세상 너머의 배움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새로운 배움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서 그는 ‘배움이 아닌 무언가’를 ‘배움’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와, ‘배움’을 ‘배움이 아닌 무언가’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에 끊임없이 부딪힌다. 그런 시도에 맞서 나가는 타라의 여정은 배움이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고,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그 중 ‘배움의 둔갑’에 관해, 특히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과 어떻게 닮아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어 다음 주의 글에서는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과 배움이 만들어 내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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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아닌 것’을 배움이라고, ‘배움’을 배움이 아니라고


 

타라의 아버지는 학교 교육이란 사탄의 뜻을 주입하는 시도라고 가르친다. 밥을 먹을 때는 식탁에서 ’창녀’가 아닌 여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정부의 정책은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들을 망치는지에 관해 설명한다.

 

이런 식의 ‘가르침’이 숨 쉬듯 반복되는 곳이 타라가 자라온 집이다. 때로는 동네 남자아이와 말을 섞고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자다가 친오빠에게 목을 졸리는 곳. 오빠 숀은 타라의 목을 조른 날 밤, 타라의 방에 와서 사과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타라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른 여자들처럼 경박하고, 남을 조종하려 들고, 외모를 이용해서 뭘 얻어 보려는 사람이 되어” 가기 때문이었다고.

 

어린 타라의 눈에 숀은 “나이들고 현명”하며 “세상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처럼 보였다. 타라는 -그날 아침 자고 있는 자신의 목을 졸랐던- 오빠에게 부탁한다. “오빠는 세속적인 여자들에 대해 잘 알 테니, 내가 그런 부류가 되는 것을 막아 달라고”.

 

훗날 집을 떠나 학교에 다니고 교육을 받으며 타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사실이 아니며, 그가 과대망상 등을 앓고 있는 정신 질환 환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자신과 다른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는지 깨닫고 분노한다. 숀의 반복적인 ‘가르침’ 역시 사실은 ‘폭력’임을 알게 된 타라는 그동안 반복되어 온 숀의 폭력을 부모님께 알리지만, 가족들은 더 이상 가족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타라가 오히려 ‘타락한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타라의 말처럼 숀이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그의 행동의 일부는 타라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부는 타라의 왜곡된 기억이라고 답한다.

 

 


과연 ‘먼 나라 이상한 가정’만의 일일까


 

공교육과 현대 의학을 전면 거부하는 타라의 가정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포착된다. 혐오와 폭력에 ‘교육’이라는 가면을 붙여 숨기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교육을 ‘주입’이나 ‘세뇌’라고 치부하는 모습.

 

한국에서 ‘훈육’이나 ‘교육’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채 이루어지는 폭력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타라가 당한 폭력이 마냥 ‘먼 나라의 이상한 가정’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동 학대 인터넷 상담 사례를 연구한 한 논문에 따르면,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보고 칼이나 가위를 목에 들이대거나, 생후 20일 된 아이가 목욕을 시키는데 자지러지게 운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부모들도 자신의 행동을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2021년 1월,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이 61년 만에 우리나라의 민법에서 삭제된 지가 어느새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사이 뉴스를 통해 우리가 접한 아동 학대 사례만 보아도 아직도 가르침이라는 가면을 쓴 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단 가정에서, 아동에게 뿐만이 아니다. 권력 구조의 위에 있는 이가 아래에 있는 이에게 가르치겠다는 명목으로 가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은 그동안 얼마나 쌓여왔고, 또 아직도 얼마나 흔한가. 사회 전체가 ‘~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가르치는 일 중 많은 것들이 폭력이라는 것을, 아주 최근에서야 우리는 깨닫지 않았나.

 

교육을 ‘세뇌’ ‘조장’ ‘주입’ 등의 이름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 역시 낯선 일이 아니다. 2020년 8월, 어린이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목적으로 선정한 도서 목록 ‘2020년 나다움 어린이 책’ 중 7종이 동성애를 ‘주입’하고 조기 성애화를 ‘조장’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전량 회수되었다. 회수된 도서 중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덴마크에서 무려 1971년에 출간된 책으로, 덴마크 문화부로부터 아동도서상을 받았으며 지금도 해외에서는 아동의 성교육을 위한 자료로 흔히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2020년의 한국에서는 그 책에 ‘교육’이 아니라 ‘주입’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2020년 12월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논란이 일었다. 동성애를 '조장'하고 페미니즘을 '주입'한다는 점이 해당 계획안의 ‘문제’라고 한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에 대해, “특정 이념 및 성 정체성을 강요하는 반인권적 교육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으며 이를 검토한 바도 없”고, “스쿨미투와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등을 고려할 때 일상에 남아 있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철폐하고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교육에, 다시 한번 ‘조장’과 ‘주입’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이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p.507)

 

 


배움을 둔갑시키려는 시도 뒤에는


 

타라가 자라온 가정의 모습은 놀랍고 터무니없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놀랍고 터무니 없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다. 잘못된 교육과 지워진 교육에 의해 더 큰 피해를 받는 이들이 주로 아동, 소수자, 여성 등 약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엇이 배움인지, 배움이어야만 하는지 정확히 천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배움을 둔갑시키려는 시도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만 할 것이다.

 

 

* 박은미, 이시연. (2007). '아동학대 행위자의 특성에 관한 내용분석 연구'.

 

**  전혼잎. (2021). '양질의 성교육 책 '마녀사냥' 퇴출, 저질 도서만 애들 손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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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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