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학생과 선생 그 어디쯤, 어느 봄날의 교생실습 [사람]

글 입력 2021.05.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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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4주간 모교로 교육실습을 다녀왔다.


사범대, 또는 교직 이수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교육실습은 누군가에겐 큰 부담으로, 반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교사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지만, 나의 경우 실습을 항상 후자의 그것으로 생각해왔었는데, 실제로 경험한 실습은 결론적으로 내 기대 이상으로 값지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음을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말해두고 싶다.

 

실습 학교이자 나의 모교이기도 한 우리 학교는, 코로나로 인해 주로 2주로 실습을 단축 운영하던 많은 타 학교들과는 달리 4주 실습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첫 날 교장선생님의 연수에서 이 결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교장 선생님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지는 적어도 한 달은 경험해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7시 40분 등교라는 다소 이른 출근 시간으로 인해 잠이 덜 깬 상태였던 당시의 나에게는 잘 와 닿지 않던 말이었지만, 이후 4주 동안 실습을 진행하며 이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입시가 가까운 3학년의 경우는 매주 등교, 1학년과 2학년은 격주로 번갈아 등교하는 등교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담당했던 1학년과는 4주 간의 등교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는 그 절반에 불과한 2주 동안만 대면할 수 있었던 셈이다.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본 지 불과 5일 만에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웃픈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4주의 실습은 필수적인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철학 교생이라고?


 

앞서 교육실습 자체에는 큰 기대를 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은 실습 과목이었다. 향후 교직 진출을 희망하고 있지 않고 복수전공도 교직 복전이 아닌 다른 과목을 한 터라, 꼼짝없이 도덕/윤리 과목으로 실습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말 실습을 위해 미리 모교에 문의한 결과, 우리 학교에는 도덕/윤리 과목마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우리 학교에는 교양 과목으로 ‘철학’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었고, 이 과목으로 실습을 나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학교의 허락을 받은 끝에 도덕/윤리의 유사 과목인 철학 과목 교생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철학 과목은 정규 교과가 아닌 교양 과목이고, 별도의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는 만큼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 안에서 수업을 계획하고 꾸려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철학 과목이라고 해서 흔히들 생각하는 철학 사상가들의 이론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애초에 현재의 철학 수업 역시 이와 같은 이론적 방향이 아닌, 토론 및 탐구형 수업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첫 주에는 담당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을 참관했는데, 수업은 자신의 관심사 및 진로와 관련된 시사 문제를 선정해서 학생이 발표를 하고, 이 발표를 바탕으로 선생님과 반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의 및 토론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히 사상가의 이론을 배우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와 시사점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철학의 역할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다. 특히 학업과 입시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 특히 그 중에서도 더욱 강도 높은 학업에 시달리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진행했던 수업의 경우 나의 생각과 의지를 100% 존중해주신 교과 겸 담임선생님 덕분에, 수업 내용부터 형식에 이르기까지 수업에서의 모든 부분을 아무런 제약 없이 온전히 스스로 구성해나갈 수 있었다. 철학 수업의 경우 1학년 10개 반 전체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2번씩 수업이 진행되었고, 실습 3주차부터는 시험 준비 기간에 들어가는 만큼 온라인 수업 주차에는 사전 녹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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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가 직접 제작하고 구성했던 수업 자료 일부 PPT

 

 

따라서 나는 2주차에 첫 수업을 업로드한 후, 2,3차시 수업은 교육 실습과 학생들의 중간고사가 종료된 이후인 5월 둘째 주 업로드를 목표로 수업을 구성하게 되었다. 비록 실제로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사전 녹화 강의 역시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노력을 요하는 수업 방법이었다. 미리 수업 내용을 구상하고, 이에 알맞은 PPT를 만들고, 앞에 학생이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30분 이상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집에서 편하게 듣기만 했던 교수님들의 강의가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함께 나온 총 14명의 교생들 중 교양 과목을 담당하는 교생은 나 한 명이었기에 혹시 조금 더 한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매우 큰 오산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1학년 한 해 집중이수를 하는 과목인 만큼, 교양과목임에도 불구하고 1학년 전 반에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이 있었던 터라, 오프라인 주에는 그야말로 쉴 틈 없이 각 반을 들어가야 했고, 온라인 주에는 역시 매 교시 각 반 구글 클래스룸에 접속해 출석을 확인하고, 수업 영상 안내를 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확인해야 했다. 매번 이 똑같은 과정을 정확히 10번씩 반복했고, 놀랍게도 14명의 교생들 중 1학년 모든 반에 들어가는 교생은 역시 나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10개 반의 아이들을 모두 알게 되어 얻는 수확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들이 남겨준 진솔하고, 다양하고, 재치 있는 답변 230개를 취합할 기회를 언제 어디서 또 얻겠는가. 보통 고등학교 1학년들은 우리 학교 출신의 나와 같은 선배 교생들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 관심을 10개 반 모두에서 받는 경험도 색달랐다. 또 역시 각 반에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사범대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교육학과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여러 명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매일 하루 7교시 중 많게는 4~5교시를 교실 앞에 서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 OT를 하고, 자습 감독을 하느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 곯아떨어지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돌이켜보면 힘든 기억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던 철학 수업 시간이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들



다음으로 담당 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맡은 반인 1학년 9반은 첫 만남부터 매우 열렬한(?) 환호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8년 전 지금의 나처럼 교실 앞에 선 교생 선생님을 보고 ‘어차피 1달 있다 갈 사람인데’라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비관적인 학생이었던 나와 달리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8년 전 자신들과 같이 우리 학교 1학년이었던 사람이고, 일부 같은 선생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좋아해주고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1학년 중 가장 활발하고 시끄러운 반이라 과연 내가 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라는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9반은 갑자기 들어온 이방인 교생을 신기하게도 잘 따랐다. 온라인 조회 시간에 얼굴이 안 보이는 학생이 있어 체크해 놓으면, 얼마 후 딱 봐도 죄송한 마음이 가득 담긴 정성스런 문자가 와 있기도 하고, 사소한 과제 제출을 못했을 때도 혹시 내 눈 밖에 나지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들이 보이기도 해서 안타깝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특히 교생이기도 하지만, 이 학교를 다닌 선배이기도 한 만큼 개인적인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 주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개별 상담 신청을 받았는데, 무려 약 70%에 달하는 학생들이 신청을 해 주어 상담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반 아이들의 개인적인 고민, 예컨대 진로, 친구와의 관계, 학교 적응 문제 등에 대해 진솔한 고민을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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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달라지는 종례 질문에 대해 우리 반 아이들이 성심성의껏 남겨준 답변들

 

 

또 실시간이 아닌 게시판에 답글 달기 형식으로 출석 체크를 했던 온라인 종례 시간의 경우, 이날의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MBTI, 취미,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 등 다소 부족한 대면 시간의 아쉬움을 상쇄하기 위한 라포 형성용 질문들을 넣어 답변을 받았는데, 아이들 한 명 한명을 알아갈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질문을 통해서 알게 된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나눠준 편지의 내용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는 교생의 삶이란


 

코로나 상황에서 나온 교육 실습이라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반대로 배운 점도 많았다.

 

말로만 듣던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며, 매일 등교 전 자가진단, 등교 이후 하루 2차례 체온 재기, 급식 시간에 절대로 말 하지 않기 등 학교 구성원들이 이행하고 있는 방역 수칙을 직접 지키면서 학교의 방역 상황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또한 역시 코로나가 아니었으며 직접 접해보지 못했을 온라인 수업 운영 역시 경험해볼 수 있었다.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온라인 조회 및 종례를 직접 운영하고 학생들의 수업 및 과제 수행 여부를 직접 관리하고 피드백을 주었으며,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직접 만들고 업로드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도 원격 수업은 향후 계속 활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만큼, 미래 교사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 유용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코로나가 사회 전반을 덮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프라적인 부분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아 보였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우리 학교는 실시간 원격 수업 연결망이 불안정해 50분간의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얼마 전까지 일부 과목의 경우 선생님들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실시간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5분 남짓 진행되는 짧은 원격 조회 역시 연결망의 문제로 아이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끊겨 들리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빠르게 앞서나가는 관련 정책들과는 달리 정작 학교 현장에서의 인프라는 아직 열악한 수준으로 남아있으므로, 이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생일 & 작별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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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인 4월 30일 금요일 조회 시간에는, 평소처럼 7시 39분에 조회를 하러 들어갔다가 내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칠판을 꾸미고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다시 밖으로 내보내 5분간 대기시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놀라웠던 건 이 이벤트가 단순한 작별 이벤트가 아닌, 생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있던 나를 위한 생일 파티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바로 3일 후에 우리 학교에서의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학생들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터라 생일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미리 신경써주고 선물까지 준비해준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이후 7교시에는 나도 아이들과 첫 주에 같이 찍은 사진과 그 뒤에 쓴 편지, 볼펜, 그리고 약간의 간식을 넣은 선물들을 전달하며 공식적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과거 1년 간 했던 초등학교 교육봉사를 마치는 날 아이들 앞에서 펑펑 운 흑역사(?)가 있어 이번에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갔는데, 다행히 아이들 2~3명의 눈물이 터진 것 외에는 비교적 잔잔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


과거 학창시절 우리 학교에서의 기억은 좋은 것들보다는 힘들고 어두운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처음 교육 실습 장소를 결정해야 했을 때도 망설이고 또 망설인 끝에 전화를 걸었는데, 예상 외로 너무나 따뜻하게 반겨주셨던 담당 선생님들, 그리고 여전히 남아 계신 나의 과거 담임선생님들, 그리고 교사로서 때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담당 교과 및 담임선생님과 함께 했던 이번 한 달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앞으로의 우리 학교를 좀 더 따뜻하고 좋은 곳으로 기억되게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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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모두 ‘우리 학교 선후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4주 내내 수다가 끊이지 않았고 또 각자의 수업에서는 미래 교사로서의 멋진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해준 13명의 동료 교생 선생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건 없는, 또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주었던 담당반 1-9반 외 1학년 10개 반 모든 제자들 겸 후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는 교단에서의 이 4주 간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대학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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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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