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페라 '토스카', 가장 인간다웠기에

신성에 가닿은 여성, 토스카
글 입력 2021.05.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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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2회를 맞은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을 통해, 노블아트오페라단은 오페라 <토스카>로 관객들을 만났다. 오페라 <토스카>는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로 총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페라 토스카는 표면적으로 비극으로 치닫는 연인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역사적인 배경과 기독교적인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페라는 1800년 로마를 배경으로 하여,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이탈리아로 진격해오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로마의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는 정치범인 안젤로티와 그를 도운 화가 카바라도시를 모두 처형하고자 한다. 그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인색하고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카바라도시의 애인인 토스카를 이 상황 속에서 이용하려고 하기까지 한다. 토스카는 애인을 구하기 위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살려주는 대가로 토스카의 몸을 요구하는데, 토스카는 고뇌 끝에 스카르피아를 칼로 찔러 살해하게 된다. 그러나 카바라도시를 살려주겠다던 스카르피아의 약속은 거짓이었으며 카바라도시는 끝내 총살당한다. 토스카 역시 그의 죽음을 알고 자살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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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토스카는 신실하게 신과의 대화를 청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스카르피아의 잔인한 요구 앞에서도 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비를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운명 앞에서 토스카는 신의 뜻을 강구하며 자신의 선택을 만들어나간다. 엔딩에 이르러, 스카르피아에게 끝까지 농락당했음을 알게 된 순간에도 토스카는 비참할지언정 누추하진 않다. 이는 굉장히 기독교적인 순교자에 가까운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페라 <토스카>는 비극적인 연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이 신성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순간을 조명하려는 듯하다. 인간은 거대하고 강력한 것들에 매번 속수무책으로 스러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연약함 덕에 많은 굴곡과 조우한다는 것, 그 굴곡진 생의 면면들은 예술적인 승화를 통해 신성에 대해 질문하며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을 말하는 듯한 오페라이다. 인간은 가장 어리석고, 가장 연약한 순간에 신과 가까워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이기도 하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핵심적으로 하는 유럽 문화권의 서사라는 점은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토스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스러움은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교조적인 가르침을 위한 테마인 것만은 아니다. 토스카는 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 선택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아간다.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까지도 토스카는 존엄한 한 개인으로 신과 대면하는 듯이 보인다. 비극적인 운명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다.

 

뿐만 아니라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살해한 뒤 스카르피아의 주위를 돌다가 촛불을 머리맡에 놓아주는 순간에서도 복합적인 인간성이 두드러진다. 그는 시신의 머리맡에 밝은 촛불을 두고 성호를 긋고는 떠난다. 거대한 운명 앞에서 신의 뜻을 유추하고 회의하다 지친 토스카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이라는 무자비의 행위 이후 죽음에의 존중을 보이는 자비로움을 연달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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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는 본디 질투가 많은 여성 캐릭터로 묘사되며 1막에서 스카르피아의 계략에 속는 것 역시 그러한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2막에서 토스카의 아리아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통해 토스카라는 인물을 단순히 여성 혐오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풍부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상으로 이어진다. 토스카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노래했으며 신에게 기도를 구하며 살았던 것이다.

 

토스카는 성 위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도 신을 믿었다. 실증적인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토스카의 세상에서는 신성이 중요했으며 그는 그 신성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한 인간이다. 가장 단순하고 순진한 삶의 원리를 지켜낸 토스카와 겹치는 인물은 3막의 초입에서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어린 목동일 것이다. 러시아 정교에서는 유로지브이라는 존재를 중시하는데, 걸인, 광인 혹은 어린아이와 같은 ‘야만’에 가까운 상태의 사람들이 신과 가장 가까이 소통한다고 믿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린 목동이 전하는 비극적인 전초의 밑바탕에서도, 토스카의 단순하고도 분명한 사랑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1막의 아리아 “오묘한 조화”는 인간성과 신성성의 ‘오묘한’ 융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묘한 조화”는 카바라도시의 아리아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마리아 막달라의 초상이 애인인 토스카, 성당에서 마주친 아타반티 등과 닮았음을 노래한다. 아리아를 통해, 마리아 막달라와 아타반티, 토스카는 한 데에 융합된다. 이 여성들은 복합적인 특징을 지니는데 결국 이 복합성이라는 것은 모순을 유발하는 동시에 인간의 성질 중 가장 핵심적이기도 한 것이다. 균질하고 평면적인 여성을 원하는 사회일지라도, 그를 살아내는 이들은 많은 것을 투영한다는 점도 느껴지는 아리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성녀인 동시에 불경한 여자이고, 질투심과 의심이 많으나 그만큼 사랑을 사랑하는 여자이며, 혈육과 애인의 대의를 위해 뛰어들 줄 알며, 성모 마리아의 앞에서 꿇어앉을 줄 안다. 단면만으로는 이 입체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들의 매력은 외적인 미혹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융합적인 면모에 그 진정한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성과 신성성을 하나의 신체적 장소 안에서 재현하는 여성상이기에 발생하는 그 융합적인 면모가 이들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비극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이 접해왔다. 토스카 역시도 그러한 전통적이고 피상적인, 여성의 불행을 대상화하는 이야기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토스카라는 캐릭터의 함의를 발굴하는 시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3막에서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서정적인 아리아인 “별은 빛나건만”은 가장 전통적인 ‘비극성’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남성 주인공이 처절하게 생을 갈구하는 모습은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토스카의 가장 핵심적인 비극성은 카바라도시의 레이어 그 이상으로 포개진다. 토스카는 비통에 잠겨있는 애인을 구하고, 신의 뜻을 구하고, 이미 죽은 스카르피아에게도 신의 심판 앞에서 다시 만나자며 자결한다. 인간으로서의 다분한 최선, 그 몸부림은 성모 마리아의 온화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1막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모습 뒤로 투명하게 비쳐오는 수많은 인간들의 기도는 종교와 무관하게, 보는 관객들에게도 압도감을 선사한다. 불투명하지 않으며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는 토스카의 상징적인 질문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노래와 사랑에 살았던 토스카는 거대한 숙명 앞에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신성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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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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