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피카소를 찾아가며 무슨 생각을 합니까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5.1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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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보러 갔다. 하지만 이번 글만큼은 전시에 대한 추천이 아닌,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솔직하게 전면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 전시는 다들 아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거장 피카소의 내한 전시였다. 비가 오는 날임에도 줄은 굉장히 길었다. 문득 드는 의문이 있어 친구에게 질문하였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피카소를 얼마나 진심으로 좋아하고 알까?'. 그 동시에 나에게 반문하였다. '난 여기 왜 왔는가? 피카소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유는 간단했다.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 최초로 들어왔다. '확실히... 피카소라는 거장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전쟁 장면을 그린 것은 인상 깊지. 그리고 그 작품이 국내에 들어왔다니.' 하지만 이 내용은 전시를 광고하기 좋은 뻔한 이유 아닌가라고 생각하여 도록을 확인한 순간, 역시나 해당 문구가 쓰여 있었다.

 

 

CCdWG09VEAAjlCN.jpg

그 유명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최근 뵌 교수님이 의문을 제기하셨다. 우리가 향유하는 예술의 실체는 무엇인가. 예술계의 기득권자들이 제시하는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말들 말고, 내 눈앞에 당장 보이는 이 작품을 우리는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는가. 거장은 예술계의 자본과 세력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예술이라는 장르를 일종의 교양이나 휴식이라 생각하여 아무 생각 없이 향유한다. 수업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외부에서 규정해 놓은 추상적인 허상이 아닌, 실제 그 작가와 작품을 이루는 모든 실체를 추적하여 실질적인 예술관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을 들으며 최근 봤던 이 피카소 전시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허상을 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피카소 전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피카소와 관련한 생각들,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 그리고 아예 외적인 것들이 모두 혼재되어 있었다. 아래는 그 생각들은 적어본 것이다.

 

'피카소는 뮤즈의 존재에 많은 영향을 받는구나. 사랑이 좋은 자극제이긴 하지. 뮤즈들 나중에 나무위키에 찾아봐야지.'

'피카소는 다양한 화풍을 구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모두 그의 천재적인 드로잉 실력에 기반한 여유처럼 느껴진다.'

'생전에 얼마 벌었을까.'

'아름다운 나라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곳들을 다니며 산 것 같네. 도자기 만든 시기는 진짜 천국 같았겠다.'

'오... 이 그림은 진짜 특이하고 예쁘다. 메인으로 내세우는 그림들보다 마음에 드는데? 만약 엽서 같은 거 있으면 사야지.'

'<한국에서의 학살> 생각보다 작네?'

'피카소에 대해서 진짜 모른다... 이 작품들을 다시 다 훑으면 뭔가 더 감명받는 부분들이 생길까? 잠깐이라도 큐레이터를 꿈꾼 게 쪽팔릴 정도야.'

'17년도 베니스 비엔날레 볼 때는 더 두근거리고 엄청난 느낌이었는데...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다 죽은 걸 수도...'

'친구가 잘 따라오고 있나? 쟤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을까.'

'진짜 사람 많다. 모두가 함께 천천히 걷는 게 마치 무빙워크 위에 있는 것 같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다 여유로울까.'

'저 외국인들이 설명을 계속하면서 다니네. 따라다녀야지.'

'아 발 아파... 역시 전시는 너무 오래 보면 힘들어.'

'그래도 이 바쁜 시기에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인다. 이게 예전엔 일상이었는데.'

'끝나고 뭐 먹지. 맛있는 것 먹고 싶은데.'

 

피카소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다. 전시에 대한 깊은 감상 또한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까? 피카소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다양한 생각들을 아카이빙 해서 분류를 하면 무슨 결과가 나올까도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잘 광고된 거장이라 불리는, 우리와 정말 하나도 상관없는 '피카소'라는 허상을 구경하러 온 것일까. 피카소를 잘 알고 좋아하는 한 사람들은 이런 관점에서 많이 다를까.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전시를 보러 다니는 궁극적인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심오하고 특별한 작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러 가기보다는, 그 공간과 분위기가 좋아서 간 것이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전시를 그토록 좋아했었는데, 이 모든 과정 중 많은 부분이 딱히 그 전시 자체와는 상관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이유가 예술이 어려워서, 하지만 대중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영양가 없는 흥미를 제시해서 그런 것이지 아닐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예술계 내에서 비어 있는 감상이 아닌, 피부로 느껴지는 참된 감상을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학살>의 내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라는 전시 이름은 우리에게 이 전시를 가기에 충분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시의 구성이나 작품들은 좋았다. 하지만 전시를 가기 전, 잠깐 생각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전시를 왜 보러 갔는지, 왜 지금은 보러 가는지, 가서 진짜 내가 할 예정인 감상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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