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스 달튼이 새긴 섬세한 디테일의 영화 속 세계 PART.2 [전시]

일러스트로 재탄생시킨 작품들,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시간
글 입력 2021.05.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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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전시 리뷰는 PART.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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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 ACT2. Moments in Beloved Film]

영화는 연출과 진실의 완벽한 뒤섞임이다. (LE CINÉMA EST UN MÉLANGE PARFAIT DE VÉRITÉ ET DE SPECTACLE. 프랑수아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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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아 화제가 되었다. <기생충>은 사회 비판적인 영화인 동시에 인간관계에서의 ‘선’을 다루고 있어, 맥스 달튼의 작품에서 보이는 횡단면의 구성이 두드러진다. 극 중에서 ‘선’은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에서 직간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화면에 수직선을 두고 서 있는 인물들의 구도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

 

맥스 달튼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한국 영화 <기생충>을 모티프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검뿌연 구름이 짙은 하늘을 바탕으로, 극의 가장 격정적인 사건이 휘몰아치는 박 사장 저택을 횡단면으로 그려내었다. 작가는 영화의 반전이 시작되는 시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하늘은 가정부 문광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의 긴장감과 곧 모든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인 상황을 암시하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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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방공호에는 근세가 버튼을 눌러 저택 현관 불을 켜는데, 이를 이용하여 모스 부호 신호를 지상에 전달한다. 작가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깜빡이는 불빛, 모스 부호를 작품 왼쪽 상단에 적은 제목 ‘PARASITE’ 옆에 삽입하여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통방식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근세가 있는 방공호가 구조상 깊은 곳에 있음을 시사하기 위해 여러 지층 단면과 화석을 그려 넣었다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바탕으로 창작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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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은 그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 먼저 거실에서 부엌으로 가는 길에 기택이 짐을 들고 박 사장을 따라가고 있으며, 부엌에는 충숙과 연교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층의 다혜의 방에서는 기우와 다혜가 입을 맞추고 있다. 영화 내내 원주민 문화에 애착을 보이던 다송의 방에는 인디언 스타일의 천막이 있고 그 속에서 나온 다송이 앉아 있는 기정을 바라본다. 지하세계로 눈을 돌리면, 문광이 방공호로 이어지는 지하실의 문을 온몸으로 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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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또 영화 관람 후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는 점에서 2부 마지막으로 <기생충>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었다. 애착이 간다기보다 뇌리에 박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기생충의 내용을 떠올리며 작품을 보았다.

 

어두운 하늘과 모스 부호로 영화의 반전을 잘 그려내었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의 명장면은 문광이 초인종을 누를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하실 문을 열고 있는 문광의 모습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횡단면으로 보이는 작품의 구도에서 현관문에 서 있는 문광을 임팩트 있게 그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온 힘으로 문을 여는 문광의 더 극적인 모습은 앞으로의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부엌의 쓰레기통에 문광이 알레르기로 인해 피를 토한 휴지와 거실에 다송이 그린 피카소 스타일의 작품은 흘러가듯이 보면 잘 알아차리기 힘든 영화 속 소재들이었다. 게다가 주차된 차들의 모자이크되지 않은 선명한 번호판과 다송의 방에 적힌 “다송아 사랑해” 글씨는 맥스 달튼의 영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애정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3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텔지어 ACT3. The Grand Budapest Hotel and Nostalgia]

나는 우리 중 누구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I DON T THINK ANY OF US ARE NORMAL PEOPLE)


 

맥스 달튼을 이야기할 때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맥스 달튼은 <로얄 테넌바움>을 시작으로 그의 영화 세계에 빠져들었으며, 대표적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웨스 앤더슨 컬렉션』과 『웨스 앤더슨 컬렉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가 연이어 출간되면서 아마존에서 선정한 ‘이달의 최고의 책’이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연히 맥스 달튼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문라이즈 킹덤>, <판타스틱 Mr. 폭스>, <다즐링 주식회사>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그림 속에 담았으며, 'Bad Dads'라는 제목으로 웨스 앤더슨 영화를 테마로 한 아트 그룹전에 매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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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년 웨스 앤더슨이 휴고 기네스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름다운 미장센과 눈을 즐겁게 하는 판타지 동화와 같은 연출을 보여준다. 벨 에포크에 활동했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영화는 소설의 첫 단락과 액자식 구성을 인용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로, 2014년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이자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제87회 아카데미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영화는 총 3개의 시대가 나오는데, 감독은 이러한 시기를 구분하기 위해 카메라와 화면 비율을 각각 다르게 만들었다. 노년의 작가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개하는 1980년대와 현재를 배경으로 할 때는 1.85:1 / 젊었던 작가가 노년의 무스타파를 만난 1960년대는 2.35:1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성기이자 무스타파가 로비 보이로 활동했던 1930년대는 1.37 :1로 각 시대에 유행했던 촬영 비율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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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은 각각 다른 시대에서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작품 속에 다양한 장치로 표현했다. 먼저 해당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화려한 장식으로 둘러싸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름답고 웅장한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밤하늘의 별처럼 객실도 밝게 빛나는 호텔은 수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보인다. 그 속에는 창문가 근처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그려져 있다. 중앙에서 아래쪽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드미트리, 왼쪽으로 아가사, 위에는 조플링이 보인다. 호텔 2층에는 구스타브와 마담 D, 제로가 한 방에 있고, 그 아래 호텔 밖에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지나가는 세 명은 구스타브와 함께 탈옥한 죄수들이다.

 

정우철 도슨트에 따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작품 배치에서 맥스 달튼의 손길이 들어갔다고 한다. 전성기의 호텔 작품 양옆으로 등장인물들이 3×3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인물을 어디에 둘 것인지 작가가 직접 설정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인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비슷한 표정과 모양으로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의 눈짓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호텔의 로비 보이 ‘제로’로 옆의 아가사를 좋아하고 있어 그 방향으로 눈이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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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전성기가 지나간 1960년대 호텔의 모습 또한 그려져 있는데, 전성기 호텔과 딱 마주 보고 있는 위치에 작품이 걸려있다. 오전인지 낮인지 혹은 해가 질 무렵인지 정확하지 않은 시간대에 그려진 호텔은 객실의 불이 꺼져있어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객실의 창가에는 젊은 작가가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스타파는 왼쪽 하단 창가에 서 있다. 호텔의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물은 호텔의 콘시어지 무슈 장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요 색감과 호텔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로 꾸며진 공간은 가히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미묘하게 그려내는 영화는 동화와 같은 느낌으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를 맥스 달튼의 일러스트와 함께 공간 속에 매우 적절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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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폰테>

 

 

맥스 달튼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횡단면을 뽑을 수 있다. 앞서 기생충을 설명할 때 잠깐 언급하기도 했는데, 물체의 단면을 횡으로 나누어 그 속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와 장면을 그려 넣기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기법이다. 맥스 달튼에 의하면 이러한 횡단면의 묘사 기법은 웨스 앤더슨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과 어린이 동화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웨스 앤더슨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을 연출할 때 영상의 색감과 가상의 바다생물 그리고 선박의 외관을 특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이 중에서 맥스 달튼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세 번째로, 선박의 외관을 촬영할 때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지소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네드에게 벨라폰테호를 자랑스레 소개하는 장면은 실제 함선을 반으로 자른 후 그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맥스 달튼은 이 장면을 캡처한 듯한 벨라폰테의 단면과 해양 생물들을 작품에 담았고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횡단면이 자주 사용되었다.

 

또한, 맥스 달튼은 어려서부터 동화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이야기로 밝은 색채가 가득한 어린이 동화책의 내러티브 구조가 거대한 이야기를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에서 맥스 달튼이 그린 동화 일러스트를 스토리와 함께 읽을 수 있으니 한 번 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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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을 굉장히 많이 쏟았다는 게 전시 곳곳에서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개인전을 위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을 비롯해 전시 구성까지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섬세한 감각이 돋보였다. 또한, ‘웨이브’ ‘지니’와의 협업 그리고 전시관 내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인 ‘당신을 위한 영화 취향 테스트(MvTI, Movie Type Indicator)’는 관람자가 전시를 한층 풍요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여기에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정우철 도슨트의 전시 해설은 맥스 달튼이라는 작가를 한정된 전시 공간 속에서 작품세계로 확장해 더욱 폭넓은 시각으로 작가와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작품의 소재였던 영화에 있어 그의 해설과 더불어 도록은 영화의 내용을 위주로 설명하면서 그 속에 있는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본다. 작가가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만 보아도 영화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지만, 꼼꼼한 설명 덕분에 처음 본 영화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평면적인 회화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와 만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나타났다. 작품 속 영화의 장면은 하나의 이야기로 관람객에게 다가와 영화를 재발견하게 하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했다. 그렇기에 다리가 저릴 정도로 오랜 시간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고 있어도 흥미로웠다. 작품의 모티프로 사용된 영화의 내용과 등장인물, 작가는 어느 장면을 어떻게 포착하여 묘사했는지 하나씩 짚어보다 보면 이야기할 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원작의 영화와 작가의 디테일이 만나 이러한 시너지가 생긴 것 같다. 실제로 맥스 달튼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모든 영화를 보았으며, 한 화면에 담기 위해 하나의 순간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그림은 영화의 전체적 내러티브를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들에게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재미를 주었다. 그래서인지 분명 전시를 보러 왔는데 영화 몇 편을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작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작품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앞서 언급했던 <기생충> <반지의 제왕>은 영화 명대사와 게임 보드, 작업 과정이 담긴 영상이 설치되어 있으니 전시장 내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최초로 선보이는 <화가 작업실> 시리즈는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 걸려있는데, 영화를 소재로 그렸던 맥스 달튼의 새로운 시도로서 미술사의 유명한 화가들과 그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그렸다. 피카소,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프리다 칼로, 클로드 모네 등 총 여덟 명의 모습과 작업실을 맥스 달튼의 일러스트로 볼 수 있었다.

 

전시가 인상 깊었던 만큼 다소 장황한 설명으로 리뷰가 길어진 것 같다. 압축적으로 포인트만 짚어서 써보려고도 했으나, 작가가 보여준 것처럼 나 또한 작품의 요소를 하나하나 느꼈기에 되도록 이러한 감상을 놓치지 않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리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쓰게 되었다. 길어도 그만큼 디테일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이니 작품과 함께 숨은그림찾기 하듯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작품은 영화를 보지 않고도 볼 수 있었으며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원작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한 화면의 영화였다.

 

 

 

[참고 자료]

마이아트뮤지엄 홈페이지

<맥스 달튼> 전시 팸플릿, 도록

정우철 전시 도슨트의 해설, 전시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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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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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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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
    • 맥스 달튼의 영화 속 세계에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설명해주신 디테일을 직접 보러 가고 싶어졌어요. 좋은 전시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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