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영화에 바치는 러브레터 [전시]

글 입력 2021.05.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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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표지 The Grand Budapest Hotel Cover 2015 아카이벌 페이퍼에 지클리 프린트 Giclee print on archival paper 91.5 X 122 cm.jpg

The Grand Budapest Hotel Cover 2015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동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텔링과 감독 특유의 대칭적인 미장센으로 국내외 수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한 영화다. 특히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홍색, 보라색 등 건물과 의상의 색감은 2010년대 영화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몇 번이고 영화를 다시 보며 볼 때마다 새로운 요소를 발견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팬으로서, 이 영화의 아트북을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추가해둔 참이었다. 그래서 이 아트북의 제작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에게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4월 16일부터 7월 11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회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주제로 일러스트 작업을 이어온 맥스 달튼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SF영화, 80~90년대 장르 영화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일러스트 작품은 물론, 비틀즈를 비롯한 미국 팝 음악의 거장들을 그려낸 작품까지 총 22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마이아트뮤지엄의 커미션 신작인 <기생충>과 <반지의 제왕>의 포스터, 2021년 신작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절묘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2차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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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Things First

 

 

맥스 달튼은 영화의 주제, 캐릭터의 특성, 해당 장면의 맥락을 살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과 관람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가위손>의 경우 종이 인형 옷 입히기 놀이로, <킬 빌>은 주인공 브라이드의 결혼식 사진으로, <반지의 제왕>은 보드게임으로 재구성해 영화의 특성을 귀엽게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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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각각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킬 빌>이라는 잔혹한 복수극의 출발점이었던 브라이드의 결혼식에 영화 캐릭터들이 다 같이 모여 있고, 브라이드 혼자만 얼굴에 멍이 든 모습은 브라이드의 처절함을 더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아이디어가 돋보였다고 생각하는 <반지의 제왕> 보드게임은 스토리의 흐름을 보드게임 속 말을 옮기는 것처럼 만들었다. ‘간달프가 당신에게 샤이어를 떠나 친구 샘과 함께 출발하라고 합니다.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지세요’, ‘골룸을 잡아 모르도르로 가는 길잡이 삼기로 합니다. 4보 전진하세요.’ 등의 지시문은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떠오르게 한다.

 

 

 

애정과 존경이 가득 담긴 대중문화의 세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보드게임이나 사진 콘셉트로 영화를 재구성한 작품도 있었지만, 맥스 달튼이 자주 사용했던 것은 영화 속의 모든 등장인물을 마네킹처럼 모아 그리는 방법과 영화의 명장면들을 집의 단면도로 구현한 방법이다. 전시의 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에서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수많은 명작 속 공간을 다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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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주제로 한 작품을 예로 들면, 우선 영문 제목 PARASITE를 모스 부호로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1층에는 선물을 들고 주방에 들어가는 기택과 박사장의 모습이 보이고, 주방에는 연교와 충숙이 있다. 다송이의 자화상과 박사장네 가족의 사진, 정원으로 통하는 문도 있다. 2층 다혜의 방에는 다혜와 기우가 있고, 다송이의 방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티피, 추장 모자 등이 있고, 기정은 책상에 앉아 다송이를 가르치고 있다.

 

지하실 입구에서는 문광이 열리지 않는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방공호에는 근세가 1층 현관의 전구를 켜는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그의 책상 벽에는 박사장에 관한 기사가 잔뜩 붙어 있다. 이 밖에도 연교와 기택이 문광을 쫓아낼 계획을 세우던 사우나실도 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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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4부와 5부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80~90년대의 팝 음악 거장들의 LP를 디자인한 작품, 미술계의 거장들을 다룬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도 볼 수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폭넓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대중문화 전체에 하나의 사건이 되기도 했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LP 커버에는 뮤직비디오 속 다양한 좀비들의 모습을 그렸고, 영국 여왕에 대한 모욕적 표현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던 ‘God save the Queen’이 수록된 섹스 피스톨즈의 앨범에는 영국 여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는 총 8점으로, 작년 말 한국에서 전시회가 열렸던 바스키아의 작업실과 현재 전시 중인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그린 작품은 특히 반갑게 느껴졌다.

 

 

 

`외톨이 영화`에 바치는 헌사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된 시대에,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영화 속 이미지를 꺼내 볼 수 있는 시대에 영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가 이런 ‘레트로’한 주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를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다.

 

 

The Lonely Typewriter Copyright © 2010 by Peter Ackerman and Max Dalton..jpg

Copyright © 2010 by Peter Ackerman and Max Dalton.

 

 

4부에는 그가 일러스트를 그린 책 <외톨이 공중전화기>와 <외톨이 타자기>의 모든 페이지가 전시되어 있다. 공중전화기와 타자기(typewriter)는 모두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디지털 기기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며 희생한 가치들을 간직한 것이다.

 

<외톨이 공중전화기>는 뉴욕 도심에서 모바일 기기를 휴대하며 더는 이용하지 않게 된 공중전화기로 사람들이 다시금 소통하고 연대하는 이야기고, <외톨이 타자기>는 컴퓨터가 고장 나 과제를 할 수 없게 된 파블로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창고 속 할머니의 타자기로 숙제를 무사히 하는 이야기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공 제로 무스타파는 호텔의 전성기였으며, 아가사와 행복했던 한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경험하지도 못한 세계를 다룬 이 영화에 관객들이 깊이 공감하고 빠져든 이유는 단순히 ‘레트로’의 유행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를 미화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근원적인 편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 만병통치약처럼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발전이 가속화되는 최근에 와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제로 무스타파가 무슈 구스타브로부터 호텔과 명화,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에도 예전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로비 보이 시절 지내던 호텔의 가장 좁은 방에서 지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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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의 스튜디오

 

 

영화에 대한 접근성과 선택지는 늘어났지만, 오히려 너무 쉽게 볼 수 있게 되어 긴 콘텐츠를 집중하며 보기 어려워하고, 그에 따라 콘텐츠에서 오는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시대에 각 영화의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을 헤아리며, 영화를 여러 차례 관람하며 완성된 맥스 달튼의 작품은 기억 속에서 잊혔던 ‘외톨이 영화’를 다시 꺼내 선보이는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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