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노력 없는 결과

계단은 싫지만 위로는 올라가고 싶은 나
글 입력 2021.05.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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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노력도 없이 그럴듯한 결과만 얻고 싶다. 나만이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다시 한 번 일반화를 시켜본다. 무언가에 시간을 쏟고 힘을 들이기는 싫은데 그것이 모여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과실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멍청한 생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내가 노력 없이 얻고 싶은 결과를 몇 개 떠올려봤다.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거나 영어에 어떠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진 않지만 영어 실력은 얻고 싶다. 당장 내게 필요한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영어로 된 영화를 볼 때 자막이 없어 좌절하지 않고, 영어로 자유로운 회화가 가능한 단계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또,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험은 잘 보고 싶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꾸준히 복습과 예습을 하며 필요한 부분을 따로 찾아보고 싶지는 않지만, 학기말에 보이는 성적표에는 A+ 라는 그럴듯한 알파벳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쏟고 최선을 다해 운동하고 싶지는 않지만, 건강한 체력과 튼튼한 몸을 가지고 싶다.


생각해보면 이 것들은 전부 과정이 힘들고 귀찮다. 이런 과정은 내게 어떤 행복이나 즐거움을 주지 않고, 이 과정들을 모두 겪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결과만이 그나마의 기쁨을 줄 뿐이다. 심지어 이제 누가 다그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지도 않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꾸역꾸역 과정을 미루며 허공에 대고 결과만을 바랄 뿐이다. 로또도 사지 않고 당첨이 되기를 바라는 꼴이다.


반면에 건너뛰기를 바라지 않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소설을 읽을 때면 한 줄씩 읽어내려갈 때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짜릿한 즐거움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서사가 있고 줄거리가 있다.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 어떻게 될지 사건이 궁금하고 등장인물이 궁금하다. 그들의 얽히게 된 경위와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이 전부 즐겁다. 그러니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볼 때는 그것을 보는 과정을 건너뛰고 줄거리와 결말만 알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청소나 정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굉장히 귀찮아하고 미루는 동시에 막상 날을 잡고 시작하고 나면 정리를 좋아한다. 내가 세운 규칙에 맞춰 내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는 게 좋다. 물건 하나하나를 보며 버릴지 살릴지 고민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쓸지 각을 맞추는 과정이 즐겁다. 만약 내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깨끗한 방을 갖게 된다고 해도,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모른다면 내가 바라는 정리정돈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뻔한 결론이 나온다. 과정이 즐거워야한다. 내가 한 단계씩 밟아나가는 과정을 즐겨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부지런해지고 똑똑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나는 번개를 맞고, 혹은 사고를 당한 후 그 전까지는 배운 적 없는 수학이나 언어 분야에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낸다는 해외 토픽을 들으면 실없이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가만, 나는 그런 번개를 맞을 일 없나,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과정을 즐길 수 있을까. 침대에 뒹굴 거리며 졸리면 자고, 휴대폰으로 의미 없는 웹서핑을 끊임없이 하는 이상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단계를 거쳐 도약하는 것은 퍽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원인을 파악한 것이 대견하다고 해주자.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건지 엄격한 건지 모르겠다. 관대하다면 그렇게 살벌하게 자신을 욕할 수는 없을 거고, 엄격하다면 이렇게 늘어져 살지는 못 할 거다. 게으르게 살면서 그런 자신을 질색하는, 모순에 빠져있는 자가당착의 상태라고나 할까.


그래도 우린 끊임없이 내일을 살아내야 한다.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너무 이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시작해보자.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물론 많이 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나는 아예 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삶의 과정을 한 방울까지 전부 즐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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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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