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글 입력 2021.05.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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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소인 초원사진관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시한부인 주인공의 남은 시간을 보는 영화. 그 속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갑자기 불쑥 다가오는 사랑. 이렇게 나열된 줄거리를 읽으면 내용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지는 듯하다. 그래서 처음에 관람하기 싫었다. 보기도 전에 이미 지겨워졌달까.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모습, 의사에게 거짓말이라며 울부짖는 가족 혹은 친구. 사랑하는 연인의 눈물로 슬픔 버튼 쿵! 하지만 이 영화에 그런 장면들이 전혀 없다. 그래서 어쩌면 몰입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죄다 빠져있다.

 

주인공의 주위 모두는 이미 병을 인지하고 있고 이에 따른 격정적인 감정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정말 미세한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정적이고 역설적이게도 더 현실적이다. 나조차도 눈물을 흘리기보다 오히려 더 깊숙하게 감정을 묵혀두었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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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정원)은 죽음을 죽음답지 않게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장면에서 그는 누워있는데, 방은 환하다. 어둠이 깔린 밤이 아니라 볕이 드는 낮이다. 이것이 영화에서 나타내는 그의 죽음이고 분위기다. 그는 여느 며칠과 다르지 않게 성실히 사진관을 운영하고 꾸준히 친절하다.

  

영화는 죽음을 종류별로 쓱쓱 훑어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가족의 장례식을 통해 과거의 죽음 한번, 곧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정원)의 죽음 두 번, 마지막으로 언제가 있을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여 곱게 한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할머니 손님을 통해 세 번.

 

모두 공통점이라면 담담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장례식장에서는 유족들에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는 말로. 마지막 할머니 손님은 곱게 입은 분홍색 한복과 사진기 앞에서 웃는 그 미소로 말이다. 당연한 명제처럼 귀결되는 어둡고 두려운 이미지가 아닌 평온과 평안한 준비가 보인다.

 

필요 이상으로 슬퍼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

 

 

 

여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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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악화한 자신의 몸 상태를 알게 되었을 때 사랑에 빠지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망설여질 것이다. 마치 며칠 동안 짐을 싸고 표를 발권받아 지금 막 역에서 떠날 채비를 마친 사람에게 사랑이 ‘여기에 재미있는 게 많아요. 떠나가지 말고 저랑 오래 같이 놀아요’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정원은 망설임 없이 아니 어쩌면 거절할 수 없게끔 잔잔히 스며들었다고 볼 만큼 자연스럽게 마음을 보여준다.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든다. 말로 하지 않아도 수줍어하는 행동과 표정으로 느껴지게 말이다.

 

또 하나의 사랑, 가족이다. 어느 스크린에서나 죽음이라는 슬픈 이미지를 극도로 이끄는 것이 가족이라는 캐릭터의 역할일 것이다. 천둥이 치는 날 정원은 잠에서 깨서 어린아이처럼 아버지 곁으로 간다. 아버지는 미동이 없이 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버지는 마른 침을 삼킨다. 그는 깨어있지만,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자는 척을 하는 것이다. 매사에 무심한듯한 그의 모습은 더 아리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이 참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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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친구들과 정원이 같이 사진을 남긴다. 동적이고 오래 활발할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을 정지된 사진 속에 남겨둔다. 그때 친구들의 표정이 저마다 알 수 없는 듯하다.

 

나는 내 친구가 곧 죽는걸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그들과 같을까 아니면 웃을 수 있을까. 친구를 쳐다볼 수는 있을까. 애매한 20대 중반의 나이에 서 있으면 죽음이라는 개념은 아득할 뿐이다. 지금이 꼭두새벽인데 미리 다음날 자정을 걱정하듯이 시간적으로도 이르고 그저 아주 머나먼 단어다.

 

영화 속 정원의 나이도 그렇다. 30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얼마나 적절한 숫자인가.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꽃다운 나이에 시들어야 하는 친구를 본다면, 뭐가 그리 아쉬워서 먼저 가냐는 표적 없는 원망으로 채우다가 결국은 묵묵히 그들처럼 옆을 지키겠거니 한다.

 

아마 정원의 친구들도 스크린에서는 안보일 뿐 많이 울고 울어서 그의 옆에서는 눈물을 감출 수 있었을 것이다. 감정이 닳고 닳아서 표정에 드러나지 않은 거겠지. 화면 너머에서도 충분히 느껴진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죽음을 통해 지금 당장 살아있음을 가장 처절하게 알게 되는 그 시간을 삐뚤삐뚤 모가 나지 않게끔 채워갈 수 있을까. 세상 모두에게 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채우는데 정답은 없다. 정원처럼 담담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삶을 살아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젊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그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평범함이 주는 가치이다.

 

그는 분명히 살고 싶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8월에 선물처럼 찾아온 사랑을 오래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시간이 얼마나 배당되어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나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미래를 그리고 모든 일상을 평범하다고 퉁친다. 하지만 담담하게 저린 그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평범이라는 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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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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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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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현미
    •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다음글도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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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미
    • 봤던 영화인데, 다시한번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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