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서울의 지하철 속 나 [지하철 유랑기]

글 입력 2021.05.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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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이 지나쳐본 지하철역이지만 코로나 19로 1년 동안 제대로 가지 못한 익숙한 장소들에 대한 기억. 그래서 더욱 사적인 이야기. 지하철 유랑기.


이전 편

 

 


 

 

이번 역은 신도림. 신도림역입니다.


서울의 완전한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울을 뺑글 도는 2호선의 환승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 2호선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중에 있는 대학 하나라도 붙어서 서울 생활해 보자. 대학교명의 지하철역이 있는 대학의 학생이 된 후, 그 로망은 현실이 되어 깨져 사람들 사이에 낀 채로 2호선을 타고 다녔다. 신도림에서 우리 학교까지는 거의 2호선 절반 노선이다. 수많은 대학교와 번화가, 직장인들의 건물들을 지나 우리 학교까지 도착한다.

 

그 시작인 신도림역은 정말' 혼돈의 카오스'다. 처음 등교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내렸더니 사람들이 정말 한꺼번에 쏟아졌다. 난 사람들이 많은 걸 싫어하기에 좀 기다렸다가 환승하기 위해 나섰다. 그냥 생각 없이 지상으로 올라갔다. 환승 통로는 다 이어져 있는 줄 알고 올라갔다가 교통 카드 태그를 찍고서야 내가 잘못 왔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 길을 잘 찾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인 서울은 어려웠다. 그렇게 교통 요금을 2번 내고 다시 내려가 지하에 있는 2호선을 찾을 수 있었다. 2호선으로 가는 계단 입구도 얼마나 많던지 너무나 헷갈렸다.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나만의 루트가 정해져 익숙한 번호 칸에서 탄다. 아침 8시와 9시 사이 신도림역은 정말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과 피곤함이 공존한다.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수많은 직공과 직장인들이 째깍째깍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1호선 지하철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 싫은 감정이 물씬 풍긴다. 나도 그중에 일부가 되어 등굣길을 이어갔다. 2학년 때인가, 더는 신도림역의 사람 많은 복잡함을 견딜 수 없었다. 서울 지하철의 장점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활용해 나는 학교로 가는 다른 루트를 찾기 시작했다. 이는 확실히 나의 장장 40km를 오가는 서울과 인천 통학 생활에 활력을 주었다. 신도림은 이제 안녕이다.


 

이번 역은 영등포. 영등포역입니다.


KTX가 지나는 영등포. 영등포시장과 타임스퀘어. 영등포에서 내려 환승할 일은 거의 없었다. 내릴 일은 거의 타임스퀘어에 놀러 가는 것 그뿐이다.


 

이번 역은 노량진. 노량진역입니다.


노량진. 수산 시장과 고시원 동네가 생각난다. 사실 제대로 노량진을 둘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노량진 고시원 동네의 분위기가 느껴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각기 꿈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있는 그 기운에 아직 내가 못 미쳐서일까? 아직 나에겐 먼 동네이다.

 

언젠가 나도 고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노량진에 여러 학원과 동네에 가고 싶진 않다. 뭔가 이유 모를 무서움과 우중충한 분위기가 노량진역을 피하게 만든다. 집에 가는 밤에 이 노량진역에서 운동복을 입고 무언가 외울 노트를 들고 가방을 멘 사람들이 타는 걸 본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인데 유독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에게서 배울 점이라도 있는지. 삶의 자극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노량진은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가져다준다.


 

이번 역은 용산. 용산역입니다.


용산. 새로운 시작과 끝을 잇는 공간. 설렘과 그리움과 새로움과 오래됨이 공존한다. 전국 각지로 내려가는 열차들이 모여있다. 한편, 나는 서울 1호선 급행열차의 마지막 역에 도착한다. 졸다가 문득 잠이 깨면, 한강을 지나고 있다. 몇 번을 본 풍경이지만, 지겹지 않다. 화려한 고층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강을 지나가는 열차 속 한 명이라는 걸 창문 밖 한강을 보며 느낀다.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그리고 한국의 중심, 서울에 나의 일과 자리가 있고 내 역할이 있다는 약간의 설렘은 항상 마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렇게 한강을 바라보며 잠을 깨다 보면 이번 역은 용산, 용산입니다. 전국으로 가는 KTX, 새마을호 열차, 경의 중앙선으로 갈아타실 분들은 이번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모두 내려달라며 1호선 동인천발 급행의 종점임을 알린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임무를 다한 열차는 승객을 내리고 다시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한다. 나는 계단을 올라 다른 열차를 타러 빠져나간다.


보통 용산역에서 학교에 가기 위해 경의 중앙선으로 환승하거나, 시간이 안 맞으면 1호선 일반행 열차를 탄다. 나는 경의·중앙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사람도 적은 경의 중앙선이 좋다. 이 지하철 노선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배차 간격이 넓고, 강원도로 가는 열차와 같은 레일을 써서 ITX 청춘 열차가 들어서기라도 한다면 배차 간격은 20분이 넘게 된다.

 

하지만 이 단점은 충분히 배차 간격과 환승 시간을 생각하고 집에서 출발하면 극복할 수 있다. 10시 30분 수업이나 오후 1시 수업에 가기 위한 등굣길에서는 딱 2분 차이로 1호선과 경의 중앙선이 용산역에 도착한다. 그래서 용산역에서 내리자마자 경의·중앙선을 타기 위해 달린다.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가 다시 8번 홈 경중선으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딱 맞을 때의 쾌감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레일에서 전국 각지로 내려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열차들을 보면, 나도 일상에서 벗어나 갑자기 표를 끊어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는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지금 코로나가 터져 서울도 가지 못하니 그때 한번 용기를 내서 혼자 어디로든 내려가 볼걸.. 하는 후회가 엄청나게 밀려온다. 다음번엔 꼭 한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열차 탑승을 하고 싶다. 나에겐 그런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역은 이촌. 이촌역입니다.


경의·중앙선은 느리게 흘러간다. 한동안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 밖이 보이지 않는 지하철을 주구장창 타고 학교에 갔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어도 경의 중앙선을 타는 이유는 한가지다. 이 경중선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기 때문이다.

 

경중선은 지하로 들어가지 않고 지상에서 달린다. 다른 열차보다 유독 느리게 달린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사이에 한강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들, 옆 허름한 건물들과 멀리 보이는 달동네가 네모난 창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여유로움이 너무 좋다. 그냥 깜깜한 지하를 쏘다니는 2호선에선 느낄 수 없는 서울의 매력이 경중선을 타며 피부에 와닿는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아도, 하루의 절반을 넘게 있으면서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매력 중 하나다.


나도 모르게 안정감을 느끼다 보면 다음 역에 도착하는 경의·중앙선이다. 내가 가는 길엔 사람들이 사는 건물뿐만 아니라 국립 한글 박물관이나 공원도 보인다. 한번은 들려봐야지 했던 다짐들이 또 한 번 지나가 이루지 못하고 4년이 흘렀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맘대로 쉽게 갈 수 없는 곳들이 되었다.

 

 

이번 역은 한남. 한남역입니다.


경의 중앙선을 타고 그저 창밖을 보다 보면 스르륵 어느새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기에 크게 특징이 나타난다고 하는 역은 없다. 하지만 '한남'이라는 단어를 보면, 한남더힐과 같은 최고급 주택과 부자, 상류사회가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내릴 것 같은 오래된 건물들과 저 멀리 보이는 고급 주택들. 베란다에 놓여진 물건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저 고급 아파트 단지엔 누가 살까 싶으면서, 오래된 건물일지라도 우리 집보다 훨씬 비싸겠지. 그저 그런 아무 생각이 흘러간다.


가깝지만 내 능력으론 가까워질 수 없는 저 동네에 살아보는 상상조차 하지 않으며 그냥 흘러가는 내 일상을 이런저런 단상들로 채워나간다.

 

 

이번 역은 왕십리. 왕십리역입니다.

 

경의 중앙선이 가는 가장 복잡한 역이다. 2호선, 5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이렇게 4개의 지하철이 왕십리에서 만난다. 그만큼 위아래로 엄청나다. 나 또한 여기서 지상에서의 풍경과 헤어지고 다시 지하로 들어가기 위해 내린다. 역시나 가장 많은 사람이 오르내린다. 내가 자주 가는 환승역 중에 가장 크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많아서 흠칫 놀라기도 한다. 서울의 위아래로, 경기도로 각자 뻗어 나가는 수 십 대의 열차와 수많은 레일이 어떨 때는 차갑게 다가온다.

 

환승하러 가다 보면 각종 아이돌과 배우의 생일 축하 전광판을 보게 된다.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저들은 저렇게 큰 사랑을 받으며 이미 성공한 스타가 되었으니 그들의 미소에 부러운 마음이 살짝 든다. 그러나 그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미 그들과 같은 외모나 연예계 재능은 어릴 때부터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의 아름다움과홈마의 보정 실력에 감탄하며 몰랐던 아이돌들도 알게 되고 생년월일을 보고 오늘이 몇 달인지 새삼 깨닫기도 한다.


학교 바로 옆 지하철역이지만, 왕십리역을 제대로 다 둘러본 적은 없다. 워낙 대형 몰과 영화관이 합쳐져 있는 대규모 멀티공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그저 2호선과 경의 중앙선을 갈아탈 수 있는 지하철역이다. 나중에 날씨가 좋아지면, 왕십리역 지상에 올라가 마장동과 가까운 쪽으로 걸어가 보고 싶다. 왕십리역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가서 내 대학 생활 동네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이번 역은 한양대. 한양대 역입니다.


지하철 2호선에서 왕십리 바로 하나 옆에 있는 역이다. 내 학교다. 학교에 큰 정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공부하는 학생 신분으로, 지각해본 적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착실히는 다녔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렇게 큰 소속감으로 학교를 다녔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도 모르게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거쳐 가는 내 학교에 대한 뿌듯함을 가지고 있다. 인천에서부터 과잠을 입고 등교하는 게 너무나 대놓고 티 내는 것 같아서 제대로 잘 입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학교 본관을 볼 수 있는 게 내심 좋았다. 그 마음으로 이 긴 여정의 통학 생활을 힘들면서도 계속해서 해왔던 것 같다. 지금은 온라인 수업이 되어 지난 1년간 등교하지 못해 통학길의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이번 역은 한양대, 한양대역입니다. 하고 방송이 나오고 왕십리 2-3에서 탔던 그대로 내리면, 바로 앞 계단이 있기에 빨리 올라갈 수 있다. 사람들과 우르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사람들 모두 나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구나... 새삼 왠지 모를 자랑스러움을 약간 느낀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삑- 하고 교통카드를 대면 추가 요금 600원이 붙는다. 오늘도 약 40km를 무사히 달려왔다는 안도감과 이제야 일과를 시작한다는 약간의 피로감이 함께 든다.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최소 2시간은 먼저 시작한 등교에 있어서 나의 근면성실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며 수업을 들으러 향한다.

 

*


내 눈앞에서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열차에 속상한 마음으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면, 어떨 때는 연착으로 더 미워진다. 그리고 의외의 연착으로 가까스로 열차에 탑승하는 경우엔 딱 맞아떨어졌다는 희열로 가득 찬다. 문이 닫혀있다가 갑자기 열릴 때는 오늘의 행운으로 기분 좋은 하루의 타이밍이 된다. 나는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기 위해 하루 3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그 사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특이한 모습들, 네모난 창의 풍경들, 나의 졸음과의 사투, 허리 통증까지 많은 걸 경험한다. 차곡차곡 쌓여 나의 서울 생활이 되었다.

 

창밖 풍경은 나에게 계절이 변하고 있다고 가장 먼저 알려준다. 내 눈에 보이는 한강에서 오늘의 미세먼지를 실감한다. 지하철 1호선 일반행 24개 역을 앉아가면서, 운동 부족으로 건강에 비상등이 켜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졸다가 이쯤 되면 내려야 할 것 같은 직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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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통해 나는더 많은 세상에 눈을 떴다. 인천에만 갇혀 살 것 같았던 내가 지하철을 통해 서울로 나갈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며 서울 곳곳을 가봤다.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지만, 모쪼록 서울의 모든 지하철역을 지나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껏 한번 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펴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정말 익숙한 곳만 좋아하고 내가 의도한 방식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에, 갑자기 도중에 상황이 바뀌어 버리는 '하차'를 시도하지 못했다. 시간이 많아도 여유가 있어도 그런 일탈은 나에게 그리 반갑기보다는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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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려서 지하철 역사로 올라가 보자. 그게 지하철의 장점 아닐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릴 수도, 탈 수도 있다. 기사님에게 내가 내린다는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내려도 된다. 그런 지하철이 좋다. 창밖 풍경으로 지친 나를 심심하게 잔잔히 위로해주는 지하철이 좋다. 일상에 꼭 필요한 대중교통, 도구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내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지하철이 내 일상의 공간이 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르다. 다른 곳으로 가게 이어주는 플랫폼으로 나는 새로움을 맛볼 수 있었고 오랫동안 서울을 즐길 수도 있었다. 무슨 존재가 왕복 80km가 넘는 거리를 5천 원도 안되는 가격에 나를 데려다줄 수 있을까? 그것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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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지하철을 통해 익숙하고도 신선한 역을 지나 나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지하철에서 앉아 시간을 보내며 단상들이 떠오르고, 이에 피식 웃고 넘어가며 자연스럽게 하루의 마음 정리를 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기사님의 따뜻한 메시지, 반짝이는 건물들의 하모니, 따듯한 이불같이 날 감싸주는 한강의 물결, 귓가에 울리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 여러가지 것들을 마음으로 느끼다 보면 어느새 환승역을 거쳐 마지막으로 내릴 역에 도착한다.

 

난 대기 시간 거의 없이 환승을 완벽하게 하고 특급행 열차까지 타고 집에 도착하는 희열에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기도 하고, 와중에 만난 의외의 인물들에 웃음을 짓고, 익숙한 모습 속 생겨난 새로움에 신기해하며 지하철에서의 유랑을 이어가고 있다. 당신의 지하철 유랑은 어떤가?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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