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 데미안 [도서/문학]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중입니다.
글 입력 2021.05.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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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들어가며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아, 그 책. 읽기도 전에 유명한 구절을 먼저 알았을 정도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알게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가득한 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독문과인데 한 번쯤 <데미안>은 읽었을 법하지 않아?라고 묻는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늘 사색하기를 즐겨 하는 독문과 학생이었지만 그래서 더욱이나 책 한 권을 제대로 완독하기 힘들어했다. 역시나 <데미안>도 나의 별난 핑계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늘 읽고 싶은 생각은 가득했지만 매번 읽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아주 운이 좋게도 친구들과 매달 한 번씩 진행하는 독서토론을 계기로 처음 읽게 됐다.

 

미리 예고하자면, 내용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데미안>에 등장하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나와 참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며 - 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데미안>의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을 보면 부제가 쓰여있다.

 

 

데미안 초반본.jpg
2017.10.30 출판사 더 스토리 '데미안' 오리지날 초판본 커버 이미지

 

 

Demian - Die Geschichte einem Jugend von Emil Sinclair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

 

<데미안>은 부제 그대로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를 향하는 한 존재의 치열한 성장을 담은 기록이다.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삶에 대한 통찰의 과정을 성찰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독서 토론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책을 읽으며 특별히 공감되었던 구절과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때였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경험에 따라, 느낀 바에 따라 공감 갔던 부분이 모두 다 달랐다. 그리고 덧붙이는 이유에는 각자마다 사연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이 <데미안>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다. 책 자체는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내면과 삶을 통찰하고 그 시절의 감정과 단상을 내뱉었다. 각자의 이야기였고, 나의 이야기였다. 모두 각자의 내면 깊은 구석 어딘가에 '에밀 싱클레어'였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감상은 유독 천천히 곱씹고 머금었던 구절들에 나의 의미를 덧붙여 쓰는 것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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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문은 2017년 10월 30일 출판사 더 스토리에서 발매된 책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1. 그 시절,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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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천지를 모르는 것처럼 돌아다녔다. 마음속에선 언제나 폭풍이 몰아쳤고, 발걸음마다 위험에 차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모두 그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아득한 심연이 내 앞에 펼쳐진 것 외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본문 p.178 中

 

 

싱클레어가 말하는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한창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는가,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을 던지며 나 자신과 대화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난 싱클레어처럼 평화, 온실,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우리 집에서 단 하루도 온전히 잠들 수 없었다. 무언가에 겁먹고 고통받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지냈다.

 

온갖 불필요한 잡념에 시달리면서 이유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혔음에도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가장 크게 자리한 어떤 욕망 때문이었다. 바로 '생' 이었다. 지금껏 그 시절만큼 나의 존재 전체가 뿌리째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 자신을 놓고 치열하게 버텨본 적도 없었다. 극도로 파고드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그 때문에 마디마다 살아나는 육체적 고통도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 시절, 잠깐이라도 나 자신을 잊고 산 적이 없었다.

 

 

2. 감정을 느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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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고통스러운 양심의 가책에서 상당한 쾌감이 느껴졌다. 내 마음이 너무나 오랫동안 전적으로 무심하게 침묵하며 한구석에 비겁하게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자책이나 전율, 영혼의 추악한 감정들까지도 반가웠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뭐가 됐든 감정이라는 게 느껴지고, 의욕이 타오르고, 심장이 뛰니까. 나는 비참함 속에서 봄의 해방감 같은 무엇을 느끼고 혼란스러웠다.

 

본문 P.100 中

 

 

'지금껏 나의 마음은 너무나 오랫동안 전적으로 무심하게 침묵하며 한구석에 비겁하게 웅크리고 있었다.'라는 대목에 특히 공감한다. 이제껏 지금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도 언젠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전적으로 무심하게 침묵했고 외면해왔다. 나의 감정을 제대로 돌볼 길이 없었고, 사실 그 방법조차 몰랐다. 그저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어내기만 했다. 돌이켜 보면,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마음을 파고들어 제대로 짚는 일이다. 즉,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의미와도 같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느꼈다. 적어도 지금은 뭐가 됐든 감정이라는 게 느껴지니까, 살아있으니까, 이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마음을 제대로 돌보는 일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마음은 나를 제대로 서게 만드는 뿌리이고, 심장 같은 중심부라 그렇다. 마음이 단단해야 내가 설 수 있으니, 일단 마음을 보듬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혼란스러운 내면의 폭동 시기를 겪은 이후 본격적으로 데미안과의 대화를 통해, 떠오르는 단상을 종이 위 초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견고하게 다져간다. 물론 각자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때로는 글을 통해 때로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단적으로는 나의 감정을, 깊게는 나의 자아를 표출했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자가 치유 능력이 생겼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 감정, 생각, 자아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나 자신을 알게 됐다.


 

3.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은 어렵기만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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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돌이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나요?

 

본문 p.194 中

 

 

책에서 말하는 '태어남'은 일차적으로 '어미의 태(胎)로부터 세상에 나옴',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내면의 성장' 그리고 이후에 '새로운 자아로의 재탄생'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한 '깨어난 자아'인 동시에 '각성된 인간'이다.

 

'태어남'은 필연적으로 '인생의 분기점'을 거친다. 내 삶의 욕구가 주변 세계와 가장 극심하게 부딪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순간 말이다. 그럼으로써 내면에 변화가 일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나를 둘러싼 하나의 세상을 깨부수고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대목에서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힘겹고 어려웠다. 서럽기까지 했다. 물론 내가 인지하지 못한 순간에 찬란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감정임을 깨달았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 시절 내가 겪은 시간은 유일하기 때문이다. 당시 느꼈던 감정과 떠올렸던 생각을 지금 다시 겪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도 알고 있다. 그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쯤 내면이 성숙해지는 단계에서 꼭 겪어야 할 성장통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으로 '모든 혼란스러운 과정은 아름다운 고난이었다'라고 스스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문구이기도 한, '당신은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나요?'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답하지 못하겠다. 모르겠다. 내겐 쉬운 길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이 어려운 길을 택할 것이며,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지만 천천히 성장할 것이다.

 

 

 

책을 덮으며 - 나를 향해 가는 길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나'를 보았다. 존재 자체가 희미하던 과거부터 내면의 방황과 투쟁의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단단해지는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담겨있다. 그 모든 과정이 나의 과거와 너무도 닮아서 마치 나의 회고록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의 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언제 또다시 흔들릴지, 또 어떤 성장통을 겪을지 모른다. 다만, 이전보다는 덜 흔들리기 위해, 다음에는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로 태어나기 위해, 틈틈이 나에 대한 고찰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나를 둘러싼 세상과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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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주 우연히 이 말을 접했는데, 절대 잊지 못할 인상적인 말이었다.

 

우리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두 날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태어난 날이고,

두 번째는 그 이유를 알아낸 날이다.


나는 아직 태어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태어난 이유를 안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를 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아는 일이며,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일이다. 그것만큼은 치열하게 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찾으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본문 p.129 中

 

 

<데미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결국 인생을 사는 것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매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순간마다 홀로 나를 향해 걸어간다.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단단히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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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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