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퍼의 그림이 숨겨두었던 시간, 빛 혹은 그림자 [도서]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4.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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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긴장되기 시작한다. 그가 빛을 그리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존재했다.


빛과 어둠, 그림자의 공존이 그려진 그림의 색은 암울하다. 선과 악처럼 반대되지만 절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를 더욱 극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읽거나 대화를 나눈다. 혹은 무언가를 마시기도 하고, 그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그들만의 일상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그의 작품에서 암울함과 정적을 느끼는 것일까. 그곳에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어느새 그 긴장감은 척추를 타고 흘러 나를 꼿꼿이 세웠다. 정적과 고요함이 들렸다.


그러나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호퍼는 그림에 이야기를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그림에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빠르게 그림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존재했을 서사를 읽어내기 시작한다. 그곳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보물찾기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다가 점차 내 손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내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다만 호퍼의 그림 속에서 내가 읽어낸 이야기는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밝고 희망찬 이야기, 혹은 달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로런스 블록이 엮은 ‘빛 혹은 그림자’를 채워 적은 17명의 작가 또한 모두 다른 호퍼의 그림으로 글을 썼지만 명확하게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암울함. 실소는 존재해도 유쾌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담고 있는 긴장감이 다양한 작가들의 시선으로 읽혔고 작가들이 써 내린 잉크 속에서 호퍼의 그림은 시공간, 혹은 시점을 넘나들며 긴밀하게 존재했다. 호퍼의 그림은 그림 속 인물들의 과거가 되기도 했고, 혹은 타인의 숨겨뒀던 진실이 되기도 했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호퍼의 그림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모두 ‘고독함’과 연결되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빛 혹은 그림자’의 첫 번째 소설 ‘누드 쇼’에서도 그 사실이 극명히 드러난다. 호퍼의 작품은 주인공 폴린의 남편이 그린 작품이 되어있었다. 주인공 폴린은 수일째 남편의 누드모델을 해주고 있었다. 비록 고된 일이었으나 유일하게 남편과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기꺼이 그 시간을 즐겁게 여겼다. 그러나 폴린의 남편은 어느새 그녀 몰래 스트립쇼를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그리는 대신 스트립쇼하고 있는 다른 여성의 그림을 완성해낸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한 폴린은 그녀의 남편이 그린 ‘누드 쇼’를 분노와 함께 묘사한다. 객관적이지 않다. 전문적이지도 않다. 폴린이 바라본 '누드 쇼'는 어느새 자신 대신 스트립쇼의 여성이 그려졌다는 분노와 절망감에 점철되어 새롭게, 매우 주관적인 비난과 함께 묘사되었다.





“대체 이게 뭐지? 그녀는 생각한다. (…) 갈색 단발이 있던 자리에는 길고 숱많은 적갈색 머리칼이 있고, 가발처럼 뻣뻣하다. 분홍빛을 띤 크림색 몸은 희어졌고, 발과 다시는 스케치와 전혀 다르다. 가늘고, 막대 같고. 허리는 멍든 것 같다. 발목에 끈이 달린 중간 굽 구두를 신고 있는데 색깔은 여자의 스카프 색과 같은 파란색이다. 그녀가 자부심을 느끼는 커다낳고 단단한 젖가슴이 아니라, 여자의 젖가슴은 선반처럼 앞으로 돌출되었으며 서커스 광대의 고깔모자처럼 작은 원뿔 모양이고 젖꼭지는 야한 붉은빛이다. 하지만 그 얼굴. (…) 그것은 하나의 얼룩과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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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의 분노와 슬픔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도 모르게 그저 그림 속 여성을 마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스트립쇼 거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그림 속 주인공 '메이'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자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분노와 슬픔은 어느새 남편을 향한 오기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되어있었다. 혹은 남편을 향한 복수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메이와 친해진 폴린은 메이에게 부탁한다. "메이, 나 좀 도와줄래요?"


그녀가 묘사했던 '누드 쇼'의 그림대로 폴린은 자신의 얼굴과 젖꼭지에는 붉은 칠을 한다. 그리고선 얇은 천 쪼가리 같은 하의만 걸친 채 당당하게 무대를 걸어 나갔다. '자유'를 향한 희열감을 느꼈다. 본인도 모르게 몸을 흔들며 자신의 남편이 관객석에서 혼이 빠져나간 모습으로 무대 위 폴린을 바라보다가, 주변 다른 관객들과도 싸우고, 어느새 경호원들에게 쫓겨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누드 쇼'는 폴린이 남편의 스트립쇼 출입을 알게 해주는 핵심, 가정을 파탄 내고 폴린이 고독해지도록 만드는 매개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폴린이 자유로운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발점이 되어 그곳에서 존재했다.

 

누드 쇼와는 다르게 살인의 현장이 긴밀히 담겨있는 작품도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의 내부는 어째서인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절대 그곳의 물건들이 채도 낮은 색을 품고 있지 않음에도 묘하게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그곳에는 신문을 읽는 점잖아 보이는 남성과 붉은 원피스를 입고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는 여성이 있었다. 둘은 시시한 대화를 주고받거나 가벼운 사랑 이야기가 아무렇지 주고받는다. 애정 섞인 목소리, 사랑이 담긴 애칭 속에서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다른 부부들보다 더 사이좋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의 평범함과 기이함, 그사이의 괴리는 스멀거리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들의 얼굴에 짙게 깔린 그림자는 그 괴리 속에서 왔을 것이다.


그때 쯤, 그들의 목소리 사이로 알 수 없는 괴성이 함께 들려오기 시작한다. 부부가 등진 문 너머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음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짐승의 절규 같기도 하고, 혹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려는 어린 살덩이의 발버둥 소리 같기도 했다. 아마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의 목소리였으니까.

 

부부는 처음에는 애써 그 소리를 외면하는 듯싶었으나 남성의 괴성이 며칠째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점차 그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성의 절규에 대한 성가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문 한쪽에 적혀있는 만화 캐릭터에 대한 언급은 그 이후 들려오는 남성의 굶주림, 남성이 죽을 날짜에 대한 이야기의 심각성을 덮어 숨겼다. 부부는 만화 캐릭터의 못된 행동에 대해 비난하며 자신들이 남성의 지갑으로부터 꺼내 들었던 지폐의 무게에 대한 만족감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다 읊조리는 것이다. "우린 도둑이지 살인자는 아니야. (...) 우리 손님들은 단지 이 끔찍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그렇듯 식량이 부족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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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에서 호퍼의 작품은 17번 동안 과거, 현재, 미래가 되어 주인공의 시선, 타인의 시선, 제삼자의 시선으로 읽혔다. 작가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호퍼의 작품 속에서 그곳에 있는 불행을 찾아냈고, 그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연결 지었다. 그들은 같은 화가의 작품에서 함께 고독과 어둠을 읽었으나 그것을 전혀 다른 방식과 인물들로 다른 이야기를 풀었다. 그들이 호퍼에게서 찾아낸 불행은 과연 탈피될 것인가? 그저 불행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17명의 작가가 17번의 선택을 하며 단편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는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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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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